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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조금 만들어 본 고추 부각을 잘 거두지 못해서 곰팡이가 피었네요.
미리 조금 만들어 본 고추 부각을 잘 거두지 못해서 곰팡이가 피었네요. ⓒ 이승숙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닭장으로 가는데, 마당 끄트머리에 있는 야외탁자 위에 얹혀 있는 대나무 소쿠리가 보였다. 고추를 찹쌀가루에 묻혀서 찐 다음에 대나무 소쿠리에 널어놓고 말리고 있었는데, 그게 여태 그대로 있었다.

'어, 저거 고추부각이잖아. 저거 다 말랐을 텐데 왜 그대로 두었지?' 속으로 이리 생각하며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애써 말려 두었던 고추부각들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아이고, 이거 이슬 다 맞혔구나. 저녁 때 좀 거둬들이지. 이 아까운 걸 다 썩혔네.'

내가 집을 나설 때 꾸들꾸들하게 말라가던 고추부각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아침에 내어서 널어놨다가 저녁에 거둬들여야 하는데, 남편이 미처 챙기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이슬을 맞았고, 축축하게 마르다 젖었다 하며 곰팡이가 피어 버렸나 보다.

우리 집엔 텃밭이 있지만 우리는 그 텃밭에 그리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 콩이며 깨, 고추장이며 된장까지 다 시어머님이 보내주셔서 우리는 별로 아쉬운 게 없고, 그래서 텃밭은 대충 농사짓는 흉내나 내는 곳으로 남아 있다.

고춧잎을 데쳐서 무쳐 먹으면 맛이 괜찮아요. 고춧잎에는 비타민C가 많다고 그러네요.
고춧잎을 데쳐서 무쳐 먹으면 맛이 괜찮아요. 고춧잎에는 비타민C가 많다고 그러네요. ⓒ 이승숙
그래서 봄에 고추 모종 낼 때도 남편에게 부러 그랬다. "여보, 고추 쪼매만 심자. 풋고추 따 묵을 꺼만 있으면 되니까 쪼매만 심자."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서 자란 남편은 조금 심는다면서 50포기는 되게 심었다. 붉은 고추 따서 말릴 필요도 없는데 무슨 고추를 그렇게 많이 심었는지….

풋고추 따 먹을 때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고추가 벌겋게 익어가자 고추 딸 일이 은근히 걱정이었다. 따도 말릴 재간이 없는데 어떻게 한다지? 우리는 붉은 고추를 대충 따서 말리고는 그냥 놔둬 버렸다.

가을이 깊어가자 은근히 욕심나는 게 생겼다. 붉은 고추에는 욕심이 안 갔는데 고춧잎엔 욕심이 생겼다. 고춧잎을 데쳐서 된장 조금 넣고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상에 올리면 남편이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서리가 내리기 전에 고춧잎을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따리라 마음먹었다.

"여보, 서리 언제쯤 내릴까?" 뜬금없이 내가 그리 묻자 남편이 잠시 궁리를 한다. "서리 그거 11월 중순이나 돼야 안 내리겠나. 서리는 왜?" "응, 서리 내리기 전에 고춧잎 다 따놓으려고 그러지." "그래, 고춧잎 그거 데쳐서 냉동해 두자. 그러면 한겨울에도 먹을 수 있잖아."
"냉동 대신 난 말릴 거야. 고춧잎 말린 거랑 무말랭이랑 같이 무쳐서 겨울 밑반찬 해놓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나 그거 할 거야."

고추를 반으로 쪼개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주고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서 쪄낸 다음에 말리면 고추 부각이 됩니다.
고추를 반으로 쪼개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주고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서 쪄낸 다음에 말리면 고추 부각이 됩니다. ⓒ 이승숙
우리 집 텃밭은 그야말로 완전 무공해 밭이다. 우리가 이사 온 후 7년간 비료 한 번, 농약 한 번 치지 않으니 땅이 살아나고 각종 곤충들이 살아간다. 지렁이도 많고 두더지도 있다. 거미며 땅강아지며 무당벌레도 있고 그 외 이름 모를 온갖 벌레들이 같이 살아간다.

무공해 밭에서 나는 무공해 고춧잎을 서리 맞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농약 친 밭의 고춧잎은 먹기가 좀 그렇겠지만 무농약 고춧잎은 그 자체로 보약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고춧잎에 욕심을 낸다.

"여보, 고춧잎도 고춧잎이지만 고추 부각 좀 많이 하자." 고추에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서 찐 다음에 잘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겨내는 고추 부각을 남편은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고추부각을 좀 많이 했으면 했다.

안 매운 고추는 애들이랑 내가, 매운 고추는 그 사람이 먹는 식으로 구분해서 고추 부각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조금 따서 말려 두었는데 내가 집 비운 이틀 사이에 돌봐주지 않아서 곰팡이가 다 쓸어버렸다. 특별히 신경 써서 찹쌀가루를 묻혀서 해놓았는데 좀 아까웠다.

아침에 밖에 내놓았다가 저녁이면 거둬들이는 식으로 이틀 정도만 말려주면 고춧잎도, 고추부각도 다 마른다. 밤이슬을 맞히면 애써 말린 게 다 젖어버리므로 저녁 무렵이면 거둬들이거나 아니면 뭘 덮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남편이 그걸 까먹고 그냥 두었던 모양이다.

다 말린 고추 부각은 양파망 같은 곳에 담아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다 보관해 둡니다.
다 말린 고추 부각은 양파망 같은 곳에 담아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다 보관해 둡니다. ⓒ 이승숙
다시 고춧잎과 고추를 따기 시작했다.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을 욕심에 고춧대를 아예 뽑아 와서 안마당에 널어놓고 하나하나 따기 시작했다. 병이 들었는지 썩은 고추가 많았다.

다 딴 고춧잎을 데쳐서 바로 널었다. 무쳐 먹을 거는 잘 헹군 다음에 꼭 짜서 한 번 먹을 분량으로 뭉쳐서 냉동해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말렸다.

고추는 덜 매워 보이는 것으로만 골라서 쪼개고 갈라서 깨끗한 물에 한 번 씻어줬다. 물기가 있는 고추에다 약간의 소금과 밀가루를 넣고 잘 섞어준 다음에 채반에 얹고 쪘다. 한 김이 오르면 불을 끄고 찐 고추를 채반에 널어준다. 그렇게 한 이틀 말리면 고추 부각용 고추가 된다.

섬이라서 그런지 강화도엔 안개가 자주 낀다. 우리 집은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너른 들을 앞에 두고 있어서 안개가 더 많이 낀다. 아침 먹고 한참이 지나도 안개가 걷히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뭘 말려도 잘 마르지 않는다. 애써 말린 것도 보관을 잘못하면 곰팡이가 금세 피어 버린다.

그래서 궁리한 방법이 비닐하우스 안에 말리는 거였다. 차고로 쓰는 비닐하우스 안에 평상을 가져다 놓고 고추와 고춧잎을 펼쳐놓았다. 그랬더니 저녁이 되어도 걷어 들일 필요도 없고 아주 편했다. 한 이틀 지나니까 대충 다 말랐다. 그래도 하루 더 말려서 오늘(5일) 걷어 들였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많이 찾듯 내 몸을 조금 부지런히 놀리면 온 식구들 입이 즐거워진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생각 하나로 내 몸을 부지런히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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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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