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천 교수는 9대에 걸친 진도의 세습단골 집안 출신이다.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의 예능 보유자이며 진도민속놀이진흥회 이사,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악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영암 대불대학교 연희학과 석좌교수 및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지난 1999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서훈받았다.
박 교수는 아들, 며느리, 대불대 연희학과 염현주 교수와 학생 두명과 함께 강의실에 나타났다. 연세에 비해 목소리는 상당히 맑았고, 강의를 얼마나 구성지게 잘하시던지 몰입해서 듣게 되었다.
진도씻김굿은 무당이 하는 제사 중 하나로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고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며 원한을 씻어준다 해서 씻김굿이라 부른다.
초상이 났을 때 시체 옆에서 직접하는 곽머리 씻김굿과 죽은 지 1년 되는 날 밤에 하는 소상씻김굿, 죽은 지 2년 되는 날 밤에 하는 대상 씻김굿, 집안에 병자가 있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 벌이는 날받이씻김굿, 임시로 무덤을 만든 후 묘를 만들 때 하는 초분이장 때 하는 씻김굿, 집안의 경사에 대해 조상의 은혜를 기리며 하는 영화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넋건지기굿, 총각이나 처녀로 죽은 사람들끼리 혼인을 시켜주는 저승혼사굿 등이 있다.
무당은 흰색 옷에 다홍색 띠를 걸치는 정도의 소박한 옷차림으로 불교 성격이 짙은 승복과 비슷하며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지전춤을 춘다.
필자는 어릴적 굿판에 앉아서 날을 샌 적이 있다. 그 때의 강한 기억이 생생하다. 집안 아이가 동네 저수지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난 뒤에 하는 위로굿이었다. 당시 어른들은 잠자는 나와 동생들을 깨워서 그 자리에 앉혀두고 밤새 했다. 졸리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5년 전쯤 할머니 산소에서 다시 한번 굿을 봤다. 아직도 시골은 집안에 병환이 잦으면 산소에서 굿을 한다. 할머니 무당이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를 내며 내게 "왜 동생들은 안 데리고 왔냐?" "내가 좋아하는 식혜는 왜 안했냐?" 는 등 실제 할머니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그런지 씻김굿을 재현하는 자리에서 할머니 생각에 울먹였다.
박병천 교수는 시나위, 비나리, 무장단, 살풀이, 연신굿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실연을 해보였다. 뱃노래는 직접 따라 배우기도 했다. 또 효란 부모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박 교수는 우리문화 상실에 대해서도 다양한 각도로 말씀해 주셨다. 또 굿은 남을 잘되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마지막으로 다음의 말씀을 하시며 끝맺음을 하셨다.
"단골문화를 예쁘고 귀중하게 봐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제사에는 예인의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없어져가는 문화를 관심있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은 진심어린 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광주민속박물관 교재인 <우리 소리 p160~161쪽>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