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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개최한 제6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 대한민국'의 가성문 감독,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전공 중인 3학년 학생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개최한 제6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 대한민국'의 가성문 감독,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전공 중인 3학년 학생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알란 파커 감독을 좋아합니다. <더 월(The Wall)>이란 작품 보셨습니까?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라는 앨범을 뮤직비디오로 찍은 것이고, <에비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데이비드 게일>을 만들었습니다. 영국 감독인데,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영상으로 잘 표현하고…."

'좋아하는 영화 감독은 누구냐'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이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왕십리의 비디오 가게에 만날 앉아있었다"는 그는 '할리우드 키드'임에 틀림없었다.

가성문(19·안양예고 연극영화과)씨는 그저 영화 보기만을 즐기며 막연하게 영화 감독을 꿈꾸는 10대는 아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든 것이 이미 세 번째다.

그는 세 번째 작품 '아! 대한민국'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주최한 '제6회 퍼블릭액세스 시민영상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가씨는 자신이 만든 영화들에 대해 "작품이라기보다 습작"이라고 깎아 내렸지만, 지난 8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일곱색깔 무지개를 품은 영화감독 지망생

26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10대답게 여러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고등학생이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에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면 세상을 넓게 볼 수 없다"며 북핵을 이야기할 때는 나이든 교장선생님 같았고, "정태춘씨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탄식했다"는 말에 장발의 복학생 남자 선배가 떠올랐다.

말하는 문장마다 '다, 나, 까'로 끝맺을 때는 군기가 잔뜩 잡힌 이등병 같았고, "상금은 학교 발전을 위해 학교에 기부했다, 돈이 생기면 쓸 생각만 하고 헤이해진다"고 말할 때는 법정스님이 와계신가 했다.

"아까 오던 길에 나눠주던 전단지를 못 받았다,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 궁금하다"고 말할 때는 산만하고 엉뚱한 남동생의 모습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자랑 하나 해도 되느냐"면서 수시 모집 1차에서 2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귀띔했다. 최종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둔 그는 "대학 들어가면 '캠퍼스 라이프'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며 고등학교 3학년생의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가성문 감독이 말하는 나의 영화

가씨에게 2회 연속 대상을 안겨준 작품은 '아! 대한민국'이라는 20분짜리 영화. 뇌물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한 건설사 하청업자에게서 출발한 돈 봉투가 시청 공무원-교사-경찰-원조교제로 돈을 버는 여고생을 거쳐 결국 하청업자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암울한 영화다. '영화가 왜 이렇게 어둡냐'는 지적에 가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왜 청소년이 꿈과 희망을 갖지 않느냐',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왜 청소년이 그런 이야기만 해야 하나. 청소년은 무조건 꿈과 희망, 따뜻한 짝사랑, 첫 느낌 같은 것만 다뤄야 하나. TV를 틀면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고 느낀 그대로 담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시니컬(냉소적)한 성격은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럴듯해 보이려고 만들어낸 답변"이라고 웃으며 "세상을 비판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뇌물을 주고받아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모두가 희생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모티브는 조세희씨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첫 장의 제목인 '뫼비우스의 띠'에서 얻었단다. 공무원 비리, 원조교제, 촌지 수수 등의 소재는 TV나 신문의 뉴스에서 본 것들이다.

시나리오는 지난해 6월 완성했다. 겨울방학이 시작하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가씨를 포함해 그의 친구와 후배 등 5명이 한 달간 영화를 찍었고, 개학 이후 짬짬이 편집해 지난 5월 작업을 끝냈다.

촬영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해 12월의 추위와 싸워야 했고, 어린 학생들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는지 배경이 되는 건물의 경비원은 느닷없이 공문을 떼오라고 주문했다. 밤 촬영 때는 체격 좋은 '조폭' 아저씨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다.

가씨의 민언련 시민영상제 출품은 올해로 두 번째다. 지난해 청소년들의 자살을 주제로 다룬 영화 '행복주식회사'를 출품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1년간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그는 "이번에는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했다"며 막바지 작업에서 컷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음향에 신경 쓰느라 4개월을 보냈다.

"친구같은 아버지"

가씨가 "영화는 내 인생"이라고 말할 만큼 영화에 빠지게 된 이유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친구같이 지낸다"는 그의 아버지는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헐리우드 극장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과 함께 들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는 아버지를 "별에 별 것 다 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장발의 다방 DJ, 신춘문예에 당선될 실력의 소설가, 영화 매니아 등의 이력을 가진 아버지는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드는 아들과 꼭 닮았다.

예고에 입학할 당시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미래에 대해 갈팡질팡할 때 다양한 경험을 한 아버지는 아들의 든든한 '지식인'이 돼주었다. 이번 영화의 제작비용도 부친의 도움으로 해결됐다.

입시에 정신 없지만 가씨는 이미 차기작을 구상중이다. "탈북자들을 보고 느낀건데, 한 쪽에서는 한민족이라고 아끼다가 북핵이 터지니까 태도를 바꿔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아이러니컬한 것을 느꼈다"며 북한 동포에 대해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단다.

지금은 20분짜리 단편 영화를 만드는 그가 2시간짜리 장편 영화를 만들 때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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