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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조용학

"휴~."

같은 공기라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논산역에서 한숨부터 토했다. 본의 아니게 2번이나 가게 된 육군훈련소. 지난 27일,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서 4주 간 기초군사훈련을 드디어 마쳤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남들은 28일 동안 하는 훈련을 나는 52일 동안 받았다. 건강문제로 퇴영한 경험 때문이다. 2번째 입소라는 특별한 경우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도 잘 갔다. 유별나게 좋지 않은 내 건강을 우려한 훈련소 측의 배려 덕에 무사히 퇴소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때 그 담배 한 모금, 초코파이 한 입

'훈련병'이라는 특별한 신분은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떤 계획으로 어른이 될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허비했던 많은 시간들, 담배 한 모금의 처절함, 입 속에서 오물거리던 초코파이의 눈물겨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출발을 앞둔 시점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내는 현역병들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4주와 2년,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표하는 경의다.

52일 동안 겪은 일들에서 느낀 것들을 서너 편 분량의 기사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전국에서 다양한 20대 청년들이 모이는 만큼 자연스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람'에 관한 일, 훈련소에서 엿볼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은 일상의 우리에게는 추억일수도 있고 새로움일 수도 있다.

여성 독자를 배려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부터 약속하며(훈련병은 축구를 할 수도 없다), 가능한 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할 생각이다.

▲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중대의 명물, M군의 내공

한달 간 있었던 육군훈련소 27연대 6교육중대. 그 곳에는 M모군이 있었다. 소대가 달라 마주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나는 다소 아름답지 못한 일로 인연을 맺고 그의 엄청난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M군의 일을 이야기하자면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 한다. 담배의 유혹을 참지 못한 나는 악마의 속삭임을 이기지 못하고 관물대 어딘가에 담배를 숨겼다. 잘 숨겨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명당'을 물색하기 위해 이곳저곳 훑어보던 중, 명당의 발치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다. '소지품 검사'였다.

중대 강의실에 중대원 193명을 전부 모아놓고, 분대장(일명 '조교', 현역 기간병들이다)들이 내무실 곳곳을 확인하며 내무실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찾아냈다. 결국 필자는 일이 커지기 전에 '자수'할 수밖에 없었다.

자수해서 광명을 찾고자 한 이는 나를 포함해 총 4명. 그 중에 M군이 있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M군은 중대원 전원을 경악시킨 한 마디를 남긴다. 평생 잊기 어려운 한 마디가 될 듯 하다.

"중대장님, 제가 라이터를 숨겼는데 어디에 숨겼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경악, 또 경악. 경악 그 자체였다. 훈련소 내 흡연행위는 군기교육이며, 군기교육이란 완전군장 상태에서 연병장을 도는 엄한 벌이다. 그런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찾아달라"는 말을 공개된 공간에서 터뜨리는 M군의 배포를 느껴보시라. 그것도 대위 계급장을 다신 중대장님께 말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자수'를 했다는 점 덕분에 군기교육을 피하고 반성문 작성과 봉사활동이라는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M군의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야간 사격? 적외선 레이더를 주십시오"

M군은 이후에도 몇 가지 '대박'을 터뜨린다. M군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혹은 몹시 심각한 얼굴로 한다는 점이 매력만점인 친구였다. 같은 훈련병들로서는 그의 엉뚱한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훈련병들을 훈육하고 관리해야 하는 분대장 이상 간부들에게는 꽤 골치아픈 친구로 인식됐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온다.

4주 훈련 중 가장 중요한 훈련은 당연히 사격훈련이며, 영점사격과 기록사격 훈련 때는 K-2 자동소총으로 실탄을 격발하는 짜릿한 순간을 경험한다.

사실 약간의 수전증 탓에 무거운 물건을 오래 들지 못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훈련이었지만, 담당분대장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마친 훈련으로 기억에 남았다. 꽤 많은 영발(표적을 한 개도 맞추지 못하는 일)자들도 있었지만, 필자는 영발을 피하는 영광도 누렸다.

훈련병들은 보통 기록사격 훈련날 저녁에 야간사격까지 한다. 이 때 M군은 불멸의 한마디를 남긴다.

"깜깜한 밤에 어떻게 표적을 맞출 수 있습니까? 적외선 레이저를 주십시오."

▲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제식훈련을 받던 훈련병들이 조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조용학
김성모의 만화 <대털>에서 '적외선 굴절기'라는 엄청난 물건을 확인한 후, '적외선'이 나를 웃기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하지 못할 그 발상에 웃지 않을 수 있는 훈련병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성모는 '적외선 굴절기'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파격으로 끝맺음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M군의 인정을 모르는 한 마디는 분대장의 골치를 썩이면서 우리에게는 웃음을 줬다.

육군훈련소는 M군의 강력한 건의를 신중하게 반영해 볼 필요가 있다. 적외선 레이저를 이용해 표적을 더욱 확실하게 맞추고 큰 목소리로 "백발백중"을 외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뿌듯하지 않은가?

사실 그 이전에 M군은 거리가 먼 훈련장을 오가는 일을 꽤 많이 고민했음을 느끼게 했다.

M군은 4주 훈련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무려 6개월이나 헬스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에 물집이 생겨 자신은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그 물집을 확인해보니 보는 사람을 당황시킬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군인들 특유의 국방색 양말을 벗겨보니 사제 양말까지 겹쳐 신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압수됐다는 점이다.

M군의 이 열정, 누가 이길 수 있을까? 누가 4주 훈련을 위해 6개월 넘는 시간과 정열을 바쳐 헬스를 할 것인가? 아마도 M군 말고는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M군, 앞으로도 그가 그리울 것 같다. 특히 무료한 날에는 더더욱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들이 M군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우리가 4주 동안 느꼈을 재치와 웃음을 상상해보시라.

'정신교육'의 소중함, 누가 알까

"아~, 빨리 정신교육 받고 싶다."

나의 전우조였던 박모(22)군. 그가 문득 남긴 한마디에 필자는 실소를 흘렸다. 물론 별 말은 아니지만, 의외로 역설적인 한 마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감이 썩 좋지만은 않은 '정신교육'이라는 한 마디와 '빨리 받고 싶다'는 간절함의 만남. 사회에서 누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식의 눈초리도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도 이유는 있었다.

9월 28일에 4주 훈련을 시작한 훈련병들은 훈련기간에 추석연휴를 맞이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굉장히 촘촘해졌는데, 2~3주차에는 특히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주의 단 하루는 총검술 훈련만 2시간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정신교육'이라는 이름의 강의교육이었다. 대대장 정신교육, 연대장 정신교육 시간에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큰 강당에서 교육한다.

박군은 그것을 노렸다. 피곤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잠깐의 졸음과 단잠. 대나무꽃 계급장을 단 지위 높은 장교들의 교육인만큼 분대장 이상의 간부들은 제발 졸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천하장사도 못 이긴다는 눈꺼풀을 어떻게 강제로 제어할 수 있을까?

잠은 그렇게 스르륵 찾아온다. 한 명이 졸면 어느덧 두 명, 세 명이 돼 있고, 그러다 보면 구석의 한쪽은 전멸(?)하는 일도 빈번하다(필자는 그 풍경을 보며 올드 게임 '세균전'을 떠올렸다. '수면 바이러스'와 의지의 한판 대결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육군훈련소에서 고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군은 확실히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곤함이 다소 풀린 얼굴이었으며, 교육을 마치고 나온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몹시 밝았다. 정신교육은 정말 소중했다. 빨리 받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낄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살아있는 유머, 4주간의 활력소

▲ 내무반에서 병사들이 동기들과 내무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 곳에는 컴퓨터나 인터넷은커녕, TV와 스포츠신문도 없다. 세상 소식과 접할 수 있는 통로는 <국방일보>라는 이름의 제한된 신문뿐이다. 그러니 훈련병들은 이야기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하루하루의 활력소로 삼는다.

꼼꼼히 관찰해본 결과, 우리가 4주 동안 받은 그 많고 많은 '얼차려'의 대부분은 일명 '노가리'로 통하는 '떠들기' 탓이었다. 한 마디로 떠들다가 걸려서 '얼차려'를 받은 것이다. 부모님들은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은 밤에도 가끔씩 겪는다. 취침시간인 밤 10시가 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잠이 드는 것은 아니다. 침구류를 펴고 잠이 들기 전,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때로는 그것이 과해져 그 소리가 밖으로 퍼져, 누워 있다 일어나서 얼차려를 받는 일도 가끔씩 있다.

내는 불침번 근무를 서다가 내무실에 분대장인 척 하고 갑자기 들어가 장난쳤던 적도 있다. "떠든 사람 다 일어납니다. 취침군기 불량으로 얼차려 20회 부여합니다." 물론 연기와 발음, 톤이 어설펐던 탓에 효과가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되고 제한된 공간이라지만, 어쨌든 그 곳도 사람 사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다툼도 있고 갈등도 있고, 그 곳만의 유머와 특색이 있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와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것만큼은 지적해야겠다 싶은 지나친 불합리도 있다.

앞으로 쓸 경험담은 그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질 것 같다. 여유 있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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