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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씨와 박은옥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태춘씨와 박은옥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이진선
편지는 잘 받았어. 고마워.

나도 요즘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니 힘들었는데 오빠의 편지를 받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어. 그리고 바로 27일 금요일 저녁 7시, 종로 보신각 앞으로 향했지. 주말을 앞두고 있어서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보신각 앞으로 내딛는 내 발걸음은 왠지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과 다른 느낌이었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쳐 있지만 그들과 만나면 무엇인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꿈을 꿔야지, 그리고 함께 가야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란 행사가 벌써 15일째로 접어들었다고 하더라. 그동안 어느 새 나도 대추리를 잊어가고 있었나봐. 이번 공연을 보면서 나 또한 스스로 돌아보고, 대추리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리고 '평화'를 생각했지.

이번 공연에도 어김없이 정태춘씨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어. 아내 박은옥씨와 함께.

우리는 긴긴 철교 위를 달리는 쏜살같은 전철에 지친 몸을 싣고, 우리는 그 강물에 빛나던 노을도 진 아- 어두운 한강을 건너 집으로 집으로 졸며, 우리들 인생의 소중한 또 하루를 이 강을 건너 다시 지하로 숨어드는 전철에 흔들리며 그저 내맡긴 몸뚱아리로 또 하루를 지우며 가는가.

창백한 그 불빛 아래 겹겹이 서로 몸 부대끼며 사람의 슬픔이라는 것이 다른 그 무엇이 아니구나. 열차가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찬란한 햇빛 세상으로 거기 사람들 얼굴마다 삶의 기쁨과 긍지가 충만한 살 만한 인생 그 아름다운 사람들. 열차와 함께 이 어둔 터널을 박차고 나아가야지 거기까지 우리는 꿈을 꿔야지 함께 가야지 우리는….


첫 곡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의 가사는 나의 심금을 울렸지.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아. 어떤 큰 문제가 있으면 잠시 그것에 관심을 갖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겐 그 무엇보다 '무관심'이 가장 무섭고 가혹한 것일 텐데….

1시간 반 정도 공연을 했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더라. 다들 약속이 있고 일도 있어서 물론 바쁘겠지. '바쁜 현대인들'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노래도 부르고 있고, 조명도 켜져 있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일까?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매정해 보이던지. 이 사람들의 '외침'이 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 걸까?

나도 외치고 싶었어.

"그대들이여 대추리를 잊었는가. 우리는 그들과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가야 한다."

그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주자

이삼헌씨가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이삼헌씨가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 이진선
이 날 대추리 주민들을 직접 그리는 화가 이종구 선생, 시를 낭송한 서수찬, 김은경씨. 그리고 멋진 춤을 선보여준 이삼헌씨도 만날 수 있었어.

행사가 펼쳐질 30일 동안 30명의 대추리 주민들을 그리는 손길과 대추리 주민들이 쓴 시를 읽는 시인들의 울림,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는 몸짓을 보며 문화예술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어. 그 자리에 있으니,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다 이해하겠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그날 저녁,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지.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만든 이 행사가 작지만 그 의미만큼은 크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아직 대추리 문제가 남아 있구나.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작은 관심을 가져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그 관심들이 조금씩 모아지고, 대추리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 작은 '희망'은 바로 우리들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될 텐데 말야.

내가 그들로부터 받았던 온기를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어. 그 온기는 함께 할수록 더 따뜻해진다는 것을. 우리 저녁 7시 종로 보신각 앞에서 '대추리의 평화'를 외쳐보자!

기금 마련을 위해 판화와 CD를 판매하고 있다.
기금 마련을 위해 판화와 CD를 판매하고 있다. ⓒ 이진선
거리예술제가 진행되고 있는 곳 한 켠에서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한 기금사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류연복, 이윤엽씨의 판화와 정태춘씨의 CD등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들사람들'의 한 활동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는 대신 '들사람들의 활동가'라 칭했다.

- 거리예술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거리 예술제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다. 요즘 대추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핵 문제 등 여러 사안들로 대추리 문제가 잊혀 갔다. 그러나 이번 이 행사를 통해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다가도 대추리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민들이 많아진 것 같다."

- 거리예술제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은데?
"행사의 홍보가 잘 안 됐다. 몇 언론을 제외하고는 이번 행사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주류 언론은 더 무관심하다. 앞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3~4명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소리가 안 들려도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조금씩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이라 믿고 있다."

- 이번 행사를 통해 느낀 점과 바라는 점은?
"이번 행사는 정태춘씨를 비롯해 많은 예술인들이 '마음'을 보여주는 행사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행사인 만큼 시민들도 그것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도 우리들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믿었기 때문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후 대추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시민들과 함께' 보여준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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