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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새로 장만한 휴대폰입니다. 할부로 샀는데 다달이 아내에게 돈을 타내야 합니다.
덕분에 새로 장만한 휴대폰입니다. 할부로 샀는데 다달이 아내에게 돈을 타내야 합니다. ⓒ 강충민
그래서 고민 끝에 번호이동을 하고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습니다. 그것도 최신형 슬림형으로…. 번호이동을 하니 생각보다 부담하는 금액은 크지 않았습니다. 덜컥 새로 휴대폰을 장만하니 나중에 휴대폰비용을 어떻게 아내에게 타낼까 하는 걱정도 앞섰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이 들더군요.

이렇게 새로 장만한 휴대폰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항에서 고객을 맞고 무사히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분실한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던 전화번호였습니다. 행사를 끝내고 한숨 돌려 새로 구입한 대리점에 갔습니다. 전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새 휴대폰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다시 찾기 전까지는 말이죠.

책상 속에 발견한 10년 넘은 전화번호 수첩입니다. 이 속에 있는 연락처의 사람들과는 지금 전화하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책상 속에 발견한 10년 넘은 전화번호 수첩입니다. 이 속에 있는 연락처의 사람들과는 지금 전화하고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 강충민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은 지금껏 딱 세 번(새로 산 것 포함해서) 구입하면서 기계의 특성이나 외양, 기능 이런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냥 걸고 받는 것만 되면 되었으니까요.

그마저도 그 전에 한 번 바꿀 때도 워낙에 낡아 아내에게 이끌려 가서 어떻게 바꾸는지도 신경 쓰지 않았고요. 그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화번호 입력이라는 기능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전화번호를 적는 작은 수첩을 멀리하게 되었고요. 이 수첩은 휴대폰이 보편화 되지 않을 때부터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것이었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간직한 것 같습니다.

짝잃은 배터리와 충전기입니다. 충전기는 새로 사지 않아도 사용가능했습니다.
짝잃은 배터리와 충전기입니다. 충전기는 새로 사지 않아도 사용가능했습니다. ⓒ 강충민
전 사실 워낙에 "최신" 혹은 "기능"이라는 것에 손사래를 치는 편이라 휴대폰분실후의 불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저도 어느새 그 편리함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퇴근 무렵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를 헤아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족부터… 당연히 아내의 전화번호는 알고, 집 전화. 회사전화, 누나, 동생의 집전화는 알고…. 그 다음 그들의 휴대폰 번호는….

참 미안하게도 큰누나의 휴대폰번호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도 더 통화하는데…. 내친김에 친한 친구, 후배, 선배들의 번호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병순, 석훈, 경보, 형진, 진형, 동현 그리고 태욱, 성준, 허교수님, 태희 등등등…. 이렇게 쭈욱 이름을 써보는데 전화번호가 정확히 기억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끝번호가 생각이 나면 중간 번호를 모르겠고 011인지, 018인지, 010인지 그것도 헷갈립니다. 사실 제가 사소한 것도 기억을 잘 하는데 번호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이게 다 어느새 기계문명에 길들여진 제 탓입니다. 이제 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진 제가 걸 수 있는 번호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문방구에서 새로 전화번호수첩을 샀습니다.
문방구에서 새로 전화번호수첩을 샀습니다. ⓒ 강충민
퇴근 길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어가는데 생맥주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며 지금은 조합하지 못하는 그들의 전화번호를 눌러 "야. 튀김닭에 생맥주 한 잔 하자!"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불쑥불쑥 그들의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전화를 해댔던 것 같습니다. 우정 혹은 친하다는 명목으로 한밤중 그들의 단잠을 깨우며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라고 하며 위안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김없이 밤 열한 시가 되면 휴대폰 전원을 끄고 혹시 모르는 그들의 애달픔을 들어주지도 않았고요.

집 앞에 거의 다다를 즈음 문방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근 십 년만에 전화번호 수첩을 다시 샀습니다. 혹여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휴대폰 분실에 대비하기보다는 저의 필체로 다시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며 그들을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면….

10년 넘은 전화번호수첩, 새로 산 휴대폰, 새로 산 전화번호수첩.. 이렇게 나란히 놓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새로 산 수첩에 빽빽하게 소중한 사람들의 번호를 적을 작정입니다.
10년 넘은 전화번호수첩, 새로 산 휴대폰, 새로 산 전화번호수첩.. 이렇게 나란히 놓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새로 산 수첩에 빽빽하게 소중한 사람들의 번호를 적을 작정입니다. ⓒ 강충민
외칩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 전화 좀 해주세요… 앞으로 잘 할게요.

덧붙이는 글 | 오랫만에 사는 이야기 기사 올립니다. 시덥잖은 글에 따뜻한 격려 주시는 분들게 이 기회를 통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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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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