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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로 14일째를 맞은 '30일간의 거리예술제'.
26일로 14일째를 맞은 '30일간의 거리예술제'. ⓒ 선대식
J에게

요즘 통 연락이 없던데,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난 세상이란 무대를 열심히 뛰고 있단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세우게 되는 날들이 돌아왔어. 이젠 저녁 거리를 걸을 때면 따뜻한 차가 생각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 여름 거리를 같이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빠른 시간 속에서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새에 잊혀져가는 것 같아. 그 중 하나가 대추리가 아닐까 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던 대추 초등학교의 벽화는 얼마 전 강제철거 때 무너져 내렸지. 그와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대추리가 지워진 것 같아.

가을 하늘 아래 종로 네거리의 보신각 앞에선 "아직 대추리는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과 함께 노래 소리가 들려와. 내가 종로네거리를 찾은 26일 저녁에도 그들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어. 어느덧 쌀쌀해진 그 거리에서 평화로운 노래를 들으며 오랜만에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

잔잔하지만 소중한 평화의 울림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10월 13일부터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과 함께 거리 예술제를 진행하고 있어. 이 예술제는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는 이름으로 11월 11일까지 30일 동안 매일 저녁 7시 종로 네거리 보신각 앞에서 펼쳐져. 무대 옆 거리 한편에서는 평택 대추리 평화 기금 마련을 위한 류연복·이윤엽 작가의 판화 전시와 판매가 이뤄지고 있지.

이날 많은 사람들이 종로 네거리를 오갔지만, 노래는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나봐. 저녁 7시에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이 시작됐을 때, 시민 9명만이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어.

"안녕하십니까. 거리를 걷는 시민 여러분. 거리 예술제가 14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가수 우위영씨의 인사말로 이 날의 예술제가 시작됐어. 노순택 사진작가의 사진 슬라이드 영상이 이어졌지. 흑백의 사진들은 평택의 시간을 되돌리려는 듯, 그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어. 대추리가 파괴되던 그 날 말이야.

26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30일간의 거리 예술제'에서 가수 정태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26일 보신각 앞에서 열린 '30일간의 거리 예술제'에서 가수 정태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선대식
영상이 끝나고 가수 김가영씨가 <마주보기> <날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시> 등의 노래를 불렀어. 때론 조용하게 때론 힘차게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길을 걷던 시민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어. 바쁘게 발을 옮기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췄고, 몇몇은 자리에 앉았지. 김가영씨는 "우리 엄마 아빠의 소박한 꿈을 지켜내자"는 말과 함께 무대를 가수 정태춘씨에게 넘겼어.

<촛불> <떠나가는 배> <일어나라 열사여> 등 정태춘씨의 노래가 이어졌어. 그는 "우리들의 추억은 지워지고, 추억으로서의 땅·농지·고향은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어. 그의 고향이 평택 도두리이기 때문일까, 그의 노래는 쓸쓸한 가을 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어.

이날의 공연은 "자유의 땅, 우리가 찾아갑시다"고 말했던 박향미씨의 노래로 끝을 맺었어. 이날 저녁 7시에 시작한 공연은 8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어. 잔잔하지만 소중한 평화의 울림은 오늘도 이어 진거지.

저녁 7시, 종로 네거리에서 만나자

이날 노래 공연이 끝나고 대추리 주민인 김택균씨가 찾아와 자리를 빛냈어. 김택균씨는 팽성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이야.

"철조망 바깥에 10여만평에서 벼 수확을 마쳤습니다. 대추리와 평화를 사랑하고 아픔을 같이 해준 분들 때문에 가을 작업을 끝냈습니다. 앞으로도 평화를 지키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작업을 할 겁니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은 한결같이 "대추리는 끝나지 않았다"고 외쳤어. 많은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 평택을 지우고 그들의 노래를 지나치고 있지만, 대추리에선 가을걷이가 이뤄지고 있지.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보신각 앞에서 걸음을 멈췄으면 좋겠어. "우리의 바람은 딱 하나, 평화"라는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이 헛되지 않도록 말이야. 내일은 너와 같이 종로 네거리를 찾고 싶어. 추운 날씨니 옷 따뜻하게 입고와. 연락 기다릴게.

저녁 7시, 종로 네거리 보신각 앞에서 보자.

"대추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터뷰] '거리 예술제' 신현욱 기획연출단장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과 함께하는 '30일간의 거리 예술제'는 갈수록 그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1000명의 문화예술인들이 '거리 예술제'를 만들어 갑니다. 그 중심에는 신현욱씨가 있습니다.

그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와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행동- 들 사람들' 기획연출단장입니다. 그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만드는 문화예술기획사 대표이기도 합니다. 26일 공연이 끝나고 그와 만났습니다.

- 거리 예술제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시인·가수·화가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2003년부터 대추리에서 문예행동을 했어요. 황새울 마을잔치를 열거나 3000평 들판에 지푸라기 예술품을 만들었죠. 2006년엔 대추리 현지에서 벽화 작업, 비닐하우스 콘서트를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문예행동을 하는 건 평화가 짓밟히고 있는 대추리를 알리기 위한 거죠. 거리에 나서서 종로의, 전국의 시민들에게 '대추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 거리 예술제를 하면서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가장 힘든 것은 '평택은 끝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반응이었죠. 그와 함께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힘든 점입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는 시민들이 공연을 구경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공연을 일주일 한 후 계속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내부의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추리가 잊혀진다'는 생각에 힘을 냈습니다."

- 거리 예술제는 대추리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얼마 전, 대추리 관련 영화를 상영하려고 했지만 경찰 때문에 그러지 못했죠. 시민들은 현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어서 주민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어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대추리 주민들은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문화 예술인들은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대추리를 피상적으로 느꼈어요. 하지만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문예활동을 하면서 대추리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죠. 예술인들은 자기각성을 하며 예술 활동으로 대추리 문제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 시민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좀더 많은 예술인들, 특히 '크라잉 넛'과 같이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출연하게 될 거예요. 공연을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 홍보를 통해 널리 알리려고 해요. 그리고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평화마을 조성과 같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 시민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거리 예술제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정치적 구호를 배제했어요. 앞으로는 촛불집회와 결합할 겁니다. 이 곳 보신각은 장소가 좋고 조명도 예쁜 곳이라, 예술을 보고 듣고 느끼며 공연을 보면 좋을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참여 못하시는 분들은 카페(cafe.daum.net/hwangsaewool)에 방문하세요. 공연의 모든 내용을 볼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선대식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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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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