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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불이라 불리는 비로자나불과 후불탱화(통도사 대광명전)
법신불이라 불리는 비로자나불과 후불탱화(통도사 대광명전) ⓒ 김성후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인식 변화

대승불교에 따르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은 많은 가상의 부처들이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그곳에서 대중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 같은 부처는 실제로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태어나지 않았지만 우주의 서쪽과 동쪽이라는 공간을 주재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처는 초월적 존재로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시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가상의 많은 부처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와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또한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어 가르친 45년 정도의 기간과 아주 많은 가상의 부처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발생하였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와 이후 사상이 발전함에 따라 나타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부처와 보살들이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승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줄여서 <법화경>이라 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는 출가 후 몇 년에 걸친 짧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전에 이미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 때부터 계속 가르침을 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초월적이며 영원한 존재인 부처가 마야부인의 아들 석가모니로 태어나서 출가하고 깨달음을 얻고 가르친 까닭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법화경>은 초월적이며 영원한 부처가 이렇게 계속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일은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라는 부처도 사실은 초월적이며 영원한 부처가 사람의 몸으로 자신을 드러낸 무수히 많은 현현(顯現)의 하나입니다. 초월적이며 영원한 부처가 사람의 몸을 지닌 부처로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게 되므로 석가모니라는 사람의 몸을 지닌 부처와 이론적인 관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제 부처라는 이름은 석가모니라는 위대한 인물을 지칭할 뿐 아니라 초월적이며 영원한,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존재를 상징하게 됩니다.

삼신불(三身佛)

초월적이며 영원한 부처라는 관념이 들어서자 석가모니 부처의 존재는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치열했던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주던 강렬한 의미조차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처에게 그 자리를 넘겨줍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자리에 들어선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부처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라는 세 개의 몸(三身)을 지닌 존재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부처의 세 가지 몸이라는 삼신(三身) 중 가장 으뜸인 법신불(法身佛)은 사람의 몸과 전혀 상관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본질이자 진리라고 합니다. 몸을 가지고 태어난 부처는 죽으면 사라지는데 반해, 영원한 본질인 법신은 죽거나 사라짐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 법신불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과 '동서남북 상하'라는 공간 속 어느 곳이든 나타나는 모든 부처의 본래 모습이기도 합니다. 즉,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공간 속에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며 존재하는 모든 부처들의 본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추상적이며 영원한 본질인 법신불은 그 형상이 없지만 사람들은 글과 그림으로 이를 최대한 묘사하고 설명하려 합니다. 묘사한 내용을 보면 법신불은 보편적이고, 순수하며, 온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으며, 끝없이 평온하고 영원하며, 어떠한 정해진 요소도 없는 존재로서 한계도 없으며, 정해진 거처도 없지만, 모든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삼신불의 두 번째 부처는 보신불(報身佛)입니다. 보신불은 초월적이며 영원한 존재인 법신불이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양을 나타낸 부처라고 합니다. 보신불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원(願)을 세우고, 한량없는 덕행(德行)을 쌓고, 이름을 보여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구제하는 부처입니다.

보신불의 몸은 오랫동안 여러 생을 거듭하면서 수행한 공덕의 결과 빛과 소리로 만들어졌으며 부처의 완전한 위엄과 덕망과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어 최소한 보살이 되어야 이 몸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보신불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모든 물건을 태워 그칠 줄 모르는 불처럼 사람들의 모든 번뇌(煩惱)의 숲을 태워버리며, 모든 티끌을 불어서 날려 버리는 바람과 같이 모든 사람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쉬도록 하는 존재라고.

마지막으로 화신불(化身佛)이 있는데 화신불은 석가모니처럼 인간 세상에 나타난 부처를 말합니다. 영원한 존재로서 그 형태를 묘사할 수조차 없는 법신불이 고통 받는 중생들이 불쌍해서 잠시 사람의 몸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화신불 중 한 분이며 법신불이 아주 짧은 시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서 생활하다가 가르침을 펼친 다음 열반에 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법신불은 보신불과 화신불은 그 등급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보신불이나 화신불은 형체를 지닌 존재로 우주 속에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법신불은 모든 부처의 유일하고 진정한 본체이며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실재인데 반해, 법신불이 잠시 형체를 가지고 나타난 보신불이나 화신불은 법신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수메다 동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장면(해인사 대적광전 벽화 중)
수메다 동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장면(해인사 대적광전 벽화 중) ⓒ 김성후
삼세불・삼계불(三世佛・三界佛)

각기 다른 세 가지 몸을 지닌 부처를 삼신불(三身佛)이라 부른다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삼세불과 삼계불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절에 세 분의 부처를 모실 경우 세 명의 존귀한 부처라는 뜻으로 삼존불(三尊佛)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이렇게 분류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에 따라 등장하는 부처인 삼세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현재를 상징하는 부처는 당연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난 석가모니입니다. 석가모니가 언제 태어나고 죽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뒤로 하고,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부처가 아닌 까닭에 석가모니는 언제나 현재를 상징하는 부처입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석가모니를 포함하여 과거에 나타나신 부처가 일곱이나 계신다고 하여 과거칠불(過去七佛)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 이전의 여섯 부처가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을 더 우아하고 그럴듯하게 꾸며주기 위해 연등불이라는 과거 부처가 새로이 등장합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가 장차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과거라는 시간을 대표하는 부처가 됩니다.

연등불과 석가모니의 이야기는 <본생담(本生譚)>이라는 경전에 주로 담겨있습니다. <본생담>은 연등불 시대 석가모니의 전생인 수메다(善慧) 동자가 쌓은 공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메다가 어느 날 람마 마을에 오시는 연등불을 위해 길을 메우고 있는데, 예상외로 빨리 연등불께서 그 길을 지나가게 됩니다. 수메다는 연등불께서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도록 자신의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 밟고 지나가도록 합니다. 이에 연등불이 수메다에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한편 석가모니 부처도 자신이 연등불에게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듯이, 자신도 미륵에게 56억 년 뒤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립니다. 그래서 미륵은 도솔천에서 열심히 수행 중이라고 합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은 '연등불-석가모니불-미륵불'이라는 세 부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세 부처를 삼세불이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부처가 계신다면 특정한 공간을 나타내는 부처 또한 계실 것입니다. 공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동서남북을 떠올리듯, 불교에서는 당연히 동서남북에 각각 부처가 계신다고 합니다. 몇몇 경전에 의하면 '동-남-서-북'에 따라 '보당불-개부화왕불-아미타불-천고뇌음불'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선 동남서북이라는 사방에 대한 부처보다는 '동쪽-중앙-서쪽'이라는 세 방위를 상징하는 부처를 더 많이 모셨습니다.

석가모니불이 시간 중 현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공간에서는 바로 이곳이자 중앙을 상징합니다. 지금 여기서 동쪽으로 아주 멀리 가면 유리광 세계가 있는데 그곳에 약사여래가 계신다고 하며, 또 서쪽으로 아주 멀리 가면 극락세계가 있고 그곳에는 아미타불이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쪽-중앙-서쪽'을 상징하는 세 분의 부처는 '약사여래-석가모니불-아미타불'을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부처를 삼계불이라 칭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바로 석가모니불의 종교적인 상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인 존재로서 부처는 석가모니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은 시간적으로 현재이자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뜻하며, 공간적으로 중앙이자 바로 이곳을 상징합니다.

25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석가모니는 이론적인 가공의 부처가 아니라 사람의 몸을 지닌 부처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재와 가운데이자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 계신 부처의 의미를 갖고 계신 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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