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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동생이 전화를 했다.
“작은누나, 요번 주에 감 딸 건데 주소 보내도고.”
“그래? 요번 주에 감 딸끼가? 그라마 내가 주소 보내주꾸마. 팩스로 보내마 되제?”
내 고향 마을은 지금 감 따느라 한창 바쁘다.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가 내 고향이다. 안 봐도 그림이 다 그려진다. 목을 뒤로 한껏 젖혀서 감나무를 쳐다보며 감을 딸 어른들이 그려진다.
우리가 과일을 그냥 먹을 때는 모른다. 그 과일이 우리 손까지 오는데 걸린 노역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과일을 거둬들이기까지에는 숱한 손이 오가야 된다.
감도 마찬가지다. 감은 다른 과일과 달리 농약을 안 쳐도 되니 그거 하나는 일이 줄었다. 감은 저절로 달리고 저절로 익어간다. 감을 딸 때까지는 손이 안 간다. 하지만 가을이 되고 감이 익어 가면 바빠진다. 감나무 쳐다보며 감 따느라 목이 부러질 듯 아프다.
우리 친정 집에도 감 밭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서 거둘 수 없어서 작은집에서 대신 농사 짓는다. 우리 친정 집은 집 울타리 안에 있는 감나무만 거둔다.
청도의 집들은 대부분 다 집 울타리 안에 감나무가 몇 그루씩 있다. 마당 여기저기 귀퉁이마다 감나무가 있다. 우리 친정집 안에도 감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그 감을 이번 주 일요일(22일)에 다 딸 거라고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이번 주 일요일에 다 따서 부쳐주마고 했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나는 감장사가 된다. 여기저기 아는 분들에게 감 사라고 권한다. 10㎏ 한 박스에 만 몇 천 원밖에 안 하니 이보다 더 싼 먹거리가 있겠냐며 권한다. 더구나 감은 농약도 안 치는 무공해 과일이다.
올해는 감이 약 40상자 정도 나올 거라고 했다.
“누나야, 주문을 딱 그만큼만 받으레이. 40 박스 정도밖에 안 나온데이.”
“그래, 그런나? 감이 모자라면 다른 집 꺼로 대주면 되지 뭘 그러노? 우리 꺼 다 팔고나마 작은 집꺼도 팔아주마 되제. 걱정 말고 니는 감이나 따라.”
친정 집 아버지는 혼자 계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서 사신다. 아버지 혼자 사셔도 들어갈 돈은 다 들어가야 된다. 전기요금에 전화요금, 그리고 케이블 티브이며 겨울이면 기름 값까지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우리 형제가 조금씩 용돈을 부쳐 드리지만 그 돈으로는 늘 빠듯하게 사실 거 같다. 그래서 우리는 감 나는 철이면 감을 따서 아버지 용돈을 마련해 드린다. 감 따는 일은 동생들이 맡아서 하고 판매는 내가 알아서 다 한다.
다행히 주변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감 파는 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감 따는 게 힘들 것 같다. 감 딸 때가 되면 동생이 하루 짬을 내 집에 와서 감을 딴다.
주말 하루는 쉬라고 있는 건데 쉬지도 못하고 종일 일하다가 돌아갈 동생과 동생댁이 그려진다. 내가 남의 집 며느리가 되고 보니 내 동생댁에게 너무 고맙고 늘 미안한 마음이다. 넉넉한 집으로 시집을 갔으면 돈 걱정, 시어른 걱정 안하고 살텐데 빠듯한 집으로 시집을 와서 짐이 너무 많은 거 같아서 늘 동생댁에게 미안하다.
“작은누나야, 아부지는 괜찮으시니 걱정하지 마라. 누나야, 항상 고맙다.”
“무슨 소리하노? 내가 니한테 오히려 고맙구마는 니는 무슨 소리하노? 누나가 힘도 못 돼주고 미안타.”
“아이다. 내가 좀 더 잘 났으면 아부지 편케 모실낀데 내가 변변치 못해서 아부지 편히 모시지도 몬하고… 누나야, 미안타.”
3살 아래 내 동생은 늘 누나야 고맙다 그런다. 나는 그런 동생이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멀리 사는 누나가 행여 걱정할까봐 어지간한 일은 다 괜찮다며 걱정 말라는 내 동생. 어릴 때 싸우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서로를 많이 챙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감을 딴다 했으니 다음 주 화요일쯤이면 내 아는 분들은 다 청도 감을 한 상자씩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발간 감홍시가 가득 들어 있는 감 상자를 받고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