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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연합니다. 어머니가 쓰던 좁고 긴 새우젓독이 생각납니다
싱싱하고 연합니다. 어머니가 쓰던 좁고 긴 새우젓독이 생각납니다 ⓒ 김관숙
풋고추를 한 관이나 샀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1kg 정도를 사서 소금물에 노랗게 삭혔다가 동치미 담글 때만 넣고는 했는데 올해는 남편이 집에서 심심하게 담근 풋고추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한 관을 샀습니다.

실은 조금 더 있다가 끝물 풋고추가 나오면 그때 사서 삭힌 것을 쓰는 것이 동치미나 풋고추장아찌에도 제격입니다. 끝물 풋고추는 맵고 억세 보일 정도로 껍질이 두껍습니다. 그래도 소금물에 한 달 정도 잘 삭히면 밭에서 갓 딴 풋고추처럼 톡 쏘는 맛을 내면서 아삭거립니다. 그런 걸 알면서도 시장에 간 김에 연해 보이면서도 껍질이 두꺼운 요즘 나오는 풋고추를 그냥 사가지고 왔습니다.

벌레 먹은 거라든지 상처가 난 것이 있나 없나 하고 풋고추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는데 문득 그 옛날에 어머니가 고추 삭힐 때 사용하고는 하던 그 좁고 긴 새우젓독이 떠올랐습니다.

가을만 되면 어머니는 끝물 풋고추를 사서 폭이 좁고 긴 새우젓독에다 가득 넣고 굵은 호렴을 물에 풀어, 부어 삭히고는 했습니다. 새우젓독은 폭이 좁아 맨 위에 노란 짚 한 뭉치를 펴 넣고 납작한 돌 하나를 놓고는 했습니다. 그런 뒤 한 달 동안 들여다보지 않아도 됩니다. 풋고추가 비집고 떠오를만한 틈도 없지만 촘촘한 베보자기를 씌우고 나서 검은 고무줄로 챙챙 두 번이나 감아서 골마지나 다른 뭐 같은 것이 생길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약 같은 걸 뿌리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랬던지 어머니는 구루마에 싣고 다니며 파는 단골 채소장사꾼에게 산, 무명 자루에 든 끝물 풋고추 한 자루를 씻지도 않고 그대로 새우젓독에다 쏟아 넣고는 했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에 무명 자루 속에 풋고추들은 밭에서 정성껏 깔끔하게 작업을 한 냄새가 났고 이물질 하나 들어있지를 않았었습니다.

지금은 몇 번을 씻어서 아무리 정갈하게 배추김치를 담가도 먹다보면 이파리나 줄기가 꼭 얼은 것 같이 무른 것이 나오고는 합니다. 오이지도 그렇고 풋고추 절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배추김치든 풋고추 절임이든 간에 무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전차길이 내다보이는 골목길에 된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어느 날 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까 어머니가 그 새우젓독을 가만히 기우려 요술쟁이가 요술을 피우기라도 한 듯이 노란색으로 삭혀진 고추들을 아주 큰 질자배기에 걸쳐 놓은 대 소쿠리에다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맵싸한 냄새가 기가 막혔습니다. 막 집어먹고 싶은 걸 꾹 참았습니다. 어머니도 아직 맛을 안 본 눈치였던 것입니다.

쪼르르 쪼르르 소금물이 빠지는 소리, 그 노래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소금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서 책가방을 던져놓고 쪼그리고 앉아 소금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한창 유행이던 파마머리입니다. 빨리 풀릴까봐 아주 가뜬하게 뽀글 파마를 했습니다.

소금물이 다 빠지자 어머니는 수돗물을 딱 세 바가지를 떠서 위에다 골고루 끼얹었습니다. 삭힌 고추들을 동이물에 넣고 씻어 건지거나 더 많이 물을 끼얹거나 하면 제 맛이 빠져나가서 맛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맛스럽게 삭혀진 시원한 냄새를 맡았던지 나와 동갑내기인 남자친구 빼빼가 얄밉게도 양은 양재기를 든 어머니와 같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뚱뚱한 빼빼 어머니 역시 뽀글 파마머리 입니다. 그런데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지 파마머리가 꼭 풍선처럼 불어났습니다.

"어디 간이 지대로 뱄나 보자."

빼빼어머니는 얻으러 와서 군말까지 하며 널름 한 개를 집어 먹습니다. 어머니도 아직 먹어보지 않은 것을 아삭 아삭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한 얼굴입니다. 빼빼가 침을 꼴깍하면서 내 눈치를 봅니다. 나는 입술을 꼭 물고 눈을 하얗게 흘겨줍니다.

"야 맛 지대로 들었네. 그냥 반찬으루 먹어두 되겄네."

빼빼 어머니 말에 어머니는 그제야 한 개를 집어 먹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빼빼어머니가 내민 양은 양재기 가득히 노란색이 찬란한 고추들을 소복하게 담아 줍니다. 참다못한 나는 어른들 모르게, 여전히 내 눈치를 슬슬 보고만 있는 빼빼의 검정고무신 발등을 콱 밟고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예상대로 빼빼는 짹 소리도 못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학교 가는 길입니다. 빼빼가 골목 어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야, 지난 번 너 네 새우젓 우리 아버지가 사다 준 거 잊어먹었니?"

해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독채로 파는 새우젓을 한 독씩 사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일 년을 먹고는 했는데, 너 나 없이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라 살이 통통 오른, 갖은 양념에 무친 육젓은 훌륭한 밥반찬이었습니다.

육젓을 독채로 사서 들여놓는 집도 별로 없던 그 어려운 시절, 빼빼아버지 친구가 마포 새우젓나루에서 새우젓이며 소금 장사를 하고 있어서 우리 집은 가을이면 빼빼아버지 덕에 시중보다 조금 싼 값에 그것도 가만히 앉아서 빼빼아버지가 힘들게 리어카에 싣고 온 새우젓을 독채로 사고는 했습니다.

"돈 내고 산거잖아?"

내가 한껏 콧대를 세우는데 저만치 고만고만한 왜식 목조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그 한 가운데 쯤에 있는 빼빼네 현관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빼빼어머니가 벼락을 치는 듯한 소리로 빼빼를 불러댔습니다.

"야아 벤또 가져 가야지이---"
"싫어, 싫다구우---"

"오늘은 새우젓무침 아니구우 고추무침이야---"

빼빼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순간 나는 쿡 하고 웃었습니다. 빼빼어머니가 바람같이 쫓아와서는 풀이 죽을 대로 죽은 빼빼머리에 알밤을 콩 먹이고 검정 보자기에 싼 '벤또'를 가방에 쑤셔 넣어줍니다. 그런 뒤 뽀글 파마를 한 그 큰 얼굴로 나를 보았습니다.

"너도 오늘은 송송 썬 고추무침이지? 거 내가 무쳤다. 맛있게 먹어라."

빼빼의 눈이 반짝 했습니다. 나는 창피해서 얼른 돌아섭니다. 뒤쳐져서 오던 빼빼가 갑자기 걸음을 빨리해 나를 앞질러 나가면서 슬쩍 내 어깨를 밀쳤습니다. 그 바람에 나는 넘어질 번 하다가 말았습니다.

"야! 너 왜 그래?"
"넌 왜 그랬는데?"

그때 빼빼와 나는 한동안 말을 안 하고 지냈습니다. 어머니들끼리는 무척 친했습니다.

그때는 삭힌 고추를 송송 썰어서 식초와 굵은 고춧가루만 조금 넣고 무쳐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별로 짜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공해를 타지 않은 햇볕과 바람이 건조시키는 염전에서 생산된 호렴이 천하일품이었던 것입니다.

송송 썰어서 무친 고추무침 한가지만을 보리밥에 넣고 쓱쓱 비벼도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모릅니다. 지금은 설탕 참기름 깨 등 갖은 양념을 넣고 고추무침을 해도 그때의 그 맛만큼 맛이 나지를 않습니다. 입안 가득히 돌아 퍼지던 감칠맛은 하나도 안 나고 그냥 짠맛만이 납니다.

씻어 건진 풋고추들을 항아리에 빈틈없게 담고 작은 대발을 포옥 덮었습니다. 그런 뒤 그 위에 알맞은 접시를 덮고 나서 돌을 얹었습니다. 미리 타 놓은 호렴 물을 가만히 부었습니다. 삐져나오는 풋고추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입니다. 고대로 예쁘게 잘 삭을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가 삭힌 것처럼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야 할 텐데.

나는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에 어머니가 오이, 깻잎 풋고추 마늘쫑 따위들을 한 자루씩 사서 좁고 긴 새우젓독에 담고 호렴을 푼 물을 부어 정성껏 저장해 두었다가는 꺼내어 음식을 만들어 밥상에 올리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것이 하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웰빙 바람이 불어 짠 음식은 나부터 잘 먹지를 않습니다. 저장음식이 먹고 싶으면 그때그때 조금씩 마트에 가서 사다가 먹고는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양은 양재기로 호렴을 눈대중 손대중으로 떠서 물에 풀고는 했습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그 신기한 눈대중 손대중이 당시 우리 가족의 건강이었고 입맛이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깊이 사랑하고 아끼셨습니다.

남편이 집에서 심심하게 담근 풋고추장아찌를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장모님이 생전에 해 준 감칠 맛 나는 풋고추장아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늘그막에도 장모님의 그 깊은 사랑이 못내 아쉽고 그리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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