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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실험 이후 한미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9일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19일 서울에서 잇달아 열리는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가장 민감한 의제는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참여 문제이다. 이 문제는 국내적으로 여야간, 당정간 갈등과 맞물리면서 논의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안이한 공직자는 책임을 추궁하겠다"라는 이례적 경고까지 동원하며 PSI 참여반대 방침을 밝혔으나, 정부 쪽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형성해가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17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고 필요한 수준에서 참가 폭을 조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참여확대를 시사한 데 이어, 이규형 외교부 제2차관도 18일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이같이 북한 핵실험을 전후로 PSI가 민감한 현안으로 부상한 이유는 한국의 참여가 곧 북한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김 의장이 "(PSI 참여확대는) 군사적 충돌의 뇌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군사적 충돌 위험은 대북 제재국면으로 들어간 지금의 정세 자체가 만드는 것이지, PSI 참여와 직접적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북한 핵실험 이후 더욱 절실해진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PSI 참여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례적으로 정부에 '경고' 메시지까지 던지며 PSI 참여확대를 반대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동맹 강화인가, 무력 충돌인가

이렇게 논란이 분분한 이유는 아마도 PSI가 일반적인 국제 기구나 조약과는 성격이 달라서 그 내용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기구나 조약이라면 국가간 합의와 비준 과정을 거치지만 PSI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주도와 이에 동의하는 국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며, 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서구정상회의에서 대량살상무기 및 그 운반수단의 전 세계적 확산을 세계평화의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강제로 차단하기 위해 PSI를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러시아·호주·일본·싱가포르 등 15개국이 핵심 멤버를 구성하고 있으며, 현재 7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냉전시대 주요 수출통제 대상이었던 러시아가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PSI는 4개월 후 주요 참가국들이 '차단원칙'에 관한 합의문을 공동 발의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방주의+자발적 참여... 타국 선박 검색은 영해에서만 가능

'PSI 차단원칙'에 따르면 참가국들은 ▲확산 우려가 있는 국가나 단체들간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물품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 강구 ▲의심 가는 확산 움직임에 대한 정보 수집과 교환을 촉진하기 위한 체제정비 ▲관련된 국내법규 정비▲국내외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확산 차단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

또 '차단'을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①대량살상무기의 운송을 하지 않으며, 자국의 권한이 미치는 어떠한 개인도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 것 ②대량살상무기 거래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자국 소속 선박에 대해 자체적 판단이나 타국이 요청이 있을 경우 영해 및 여타 해상에서 이를 검문·검색하고 관련 물품을 압수할 것 ③대량살상무기 수송 의혹이 있는 자국 소속 선박에 대해 타국이 검문, 검색, 압수수색을 요청할 경우 허용을 심각히 고려할 것 ④대량살상무기 거래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해 자국의 영해 내에서 이를 검문, 검색, 압수수색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것 ⑤자국의 영공을 통과하는 의심되는 항공기에 대해 검색과 압수를 위한 착륙을 요구하거나 사전에 영공통과를 허용하지 말 것 ⑥자국의 항구나 공항, 여타 시설이 대량살상무기의 중간 기점으로 이용될 경우 여기에 관련된 선박이나 항공기 에 대해 검색, 압수할 것을 참가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같이 구체적 원칙과 조항을 놓고 보면 무력충돌을 부를 것이 뻔한 '해상봉쇄'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공해상에서 마구잡이로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나름의 요건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국의 선박과 조직에 대해 자발적으로 단속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타국 선박에 대한 검색은 자국 영해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참여의 방법과 수준도 각국이 국내법체계와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아무리 더 강하게 단속을 하고 싶어도 국제법의 근거를 넘어서는 행동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7일 서울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차관보가 "국가들이 PSI에 참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의에 따른 것이며, 왜 그것이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한 것은 한국이 PSI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 표출로 해석된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은 16일 동북아 순방을 앞두고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의 PSI 참여 확대를 촉구했다.
ⓒ 미 국무부(State Department photo by Michael Gross)
4년 전, 서산호 사건의 기억

PSI 참여가 공해상에서 북한과의 충돌을 연상시키게 된 것은 2002년 발생했던 '서산호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부시 대통령이 PSI를 발표하기 직전이다.

사건은 2002년 12월9일 미국의 정보를 받은 스페인 특수부대가 아라비아해 근해에서 북한 선박 서산호를 나포하면서 시작됐다. 수색결과 시멘트를 실은 화물선으로 위장된 배에 스커드미사일 15기와 추가로 8기를 조립할 수 있는 부품과 로켓연료가 발견됐다. 행선지는 예멘이었다.

당시 서산호의 처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다음날 '주권 침해'라는 예멘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결국 서산호의 무사 통과를 허용했다.

미국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선 이유는 예멘 정부에게 수입한 미사일을 다른 나라에 양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공해상에서 미사일 수송을 막을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근본적 문제에 봉착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현행 유엔해양법협약은 공해상을 운항하는 선박에 대해 검색을 실시할 수 있는 조건으로 ▲노예운반 ▲해적행위 ▲무국적선 ▲국기 무게양 ▲무단 방송 등 5가지 경우만을 허용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운반은 공해상 검색의 요건에 들어있지 않다.

당시 서산호는 국기를 게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공해상에서 검색을 실시한 것은 적법한 행위로 간주됐다. 그러나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무기수송 북한선박 제재, 이미 근거가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PSI 활동의 법적 근거를 2004년 4월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540호에서 찾았다. 결의안 1540호는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원칙적 반대입장만 담고 있을 뿐,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북한 핵실험 이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 1718호는 PSI 활동의 새로운 법적 근거가 된다. 이번 결의안에서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와 사치품도 들여오지 못하도록 모든 유엔회원국이 효율적인 차단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8항 f조에 '모든 회원국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북한으로부터의 화물 검색 등 필요한 협력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한다'고 규정,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의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여기에도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기본적으로 각 국이 국내법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치를 취하게 되며, 국제법을 뛰어넘는 공해상에서의 선박 검색이나 봉쇄는 불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한국이 현재 '참관' 단계인 PSI 참여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한다고 해도 새로운 의무가 발생하지는 않으며, 특히 공해상에서 미국 등과 함께 북한 선박을 검색하는 상황에 맞닥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실 PSI나 안보리 결의안 1718호가 각 국에 요구하고 있는 수준의 대북 감시활동은 이미 남북간 2004년 5월 채택된 '해운합의서'에 담겨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남북해운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는 2조 6항에 '남과 북이 상대측 해역을 항행할 때 하지 말아야 할 행위' 10가지 중 하나로 '무기 또는 무기부품의 수송'을 규정하고 있다.

또 2조8항에는 '상대측 선박이 6항의 규정을 위반, 통신검색에 응하지 않거나, 위법행위 후 도주 등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해당 선박을 정지시켜 승선, 검색하여 위반행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무기 수송 혐의가 있는 북한 선박에 대한 감시와 제재 조치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 강요하는 버시바우 주한미대사 규탄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앞에서 통일연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이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는 기준

그럼에도 PSI 문제가 한·미간, 그리고 국내정치적으로 이렇게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북한이 PSI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현실과, 이의 대응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북한은 서산호 사건 이후 미국의 PSI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며 무력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밝혀왔다.

정부는 이런 북한의 입장을 의식,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PSI와 일정한 거리를 둬온 것이다. PSI 참여를 선언해도 새롭게 취할 조치는 거의 없으면서도, 그런 선언 자체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과 이에 따른 안보리 결의안 1718호 채택을 PSI의 완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한쪽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참여는 PSI 추진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SI는 궁극적으로 향후 미국의 동맹과 적대국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북한 핵실험 이후 새롭게 정립해야 할 남북관계의 원칙과 함께 한미동맹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그 해답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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