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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으로 위기에 빠진 한반도 정세만큼이나 민주노동당의 위기도 심상치 않다. 이른바 NL(민족해방·자주파)-PD(민중민주·평등파) 정파 갈등의 오랜 골이 북핵 사태를 맞아 치명상을 내고 있다.

지난 15일 열린 중앙위원회의에서 보여진 '진보정당'의 모습은 참혹했다. 논란이 된 안건은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민주노동당 특별 결의문'(이하 반전평화 결의문)이었다.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예민하다. 북핵에 대해 어떤 수준의 입장을 표명할 것인가이다.

북핵은 어떤 이유에서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명확히 '반대'를 표시해야 한다는 측(PD)과 자위권 측면에서 북핵을 용인해야 한다는 측(NL)은 미국 책임이 먼저이라는 입장이었다.

당초 최고위원회가 올린 원안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반영해 "민주노동당의 기본입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전제로 "어떤 종류의 핵 사용에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며 "따라서 북의 핵실험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강하게 북핵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측의 요구로 '유감'→'반대'로 수정안이 제출되었지만 부결되었다. 다수파인 NL측의 반대 탓. 그리고 이를 다시 수정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북미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북의 핵실험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안이 가결되었다. 미국 책임론을 강조할 뿐,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비껴간 것이다.

북핵 입장 '당론' 없이 방북하는 지도부

▲ 이용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자정을 넘기며 토론은 계속되었지만 가결된 수정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최종수정안에 대해 상당수 중앙위원들이 "제출된 원안보다 더 후퇴됐다"며 항의 표시로 퇴장한 것.

장태수 중앙위원은 "한반도 비핵화가 민주노동당의 기본입장이라면, 그 기본입장과 배치되는 북한의 핵실험은 '반대'해야 할 사안"이라며 "'유감'이라는 표현은 '북한의 핵실험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나아가 '북한의 핵실험은 자위적 수단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항의의 표시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최현숙 중앙위원(당 소수자위원장)은 그 과정에서 "이게 진보정당이야, 이 개××들아!"라고 거친 욕설을 쏟아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당원 게시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원 김호철씨는 "자기와 의견이 다른 당원은 개만도 못한 사람으로 비치는가 보다"라며 "분노와 증오는 의견이 다른 '동지와 민중'이 아니라, '계급의 적'에게 향해할 할, 화살과 같은 것"이라고 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반면 '민중시대'라는 아이디의 당원은 "'언제 정신 차릴거냐'는 물음의 마지막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며 "어린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모험주의적 북조선의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고 최 위원장의 행동을 옹호했다.

최 위원장은 게시판에 다시 글을 올려 "개들에게 미안할 뿐"이라며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욕설을 담은 퇴장'이라는 방법을 이용한 자위권이어서 핵을 이용한 자위권보다 훨씬 평화적인 자위권"이라며 "폭력적 다수결의 결정에 '퇴장'이라는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인식을 보였다.

지도부 분열상 "자위적 수단" vs "반대는 당연"

▲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갈등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최고위원회 일원인 김선동 사무총장과 이용대 정책위원장이 최종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당초 최고위원회가 올린 원안을 스스로 배반하는 등 지도부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9일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난 직후, 긴급회의를 소집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하며 "핵의 자위적 수단을 비롯한 핵무기 정책에 반대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에 근거해 민주노동당의 논평이나 브리핑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서 맞춰졌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일관되지 않았다. 홍승하 최고위원은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진영 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무원칙한 입장과 태도에 우려를 표명"하며 "주요 지도부 등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핵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질타했다.

이용대 정책위원장은 최근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북미간 정치군사적 대결 국면인데 북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느냐"며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당내 논란이 되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이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노 의원은 17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위를 위해 개발했기 때문에 용인해야 한다고 한다면 일본의 핵 개발도 용인해야 하고 우리가 전술핵 배치에 반대했던 이유도 부정해야 한다"며 "북한 핵실험에 대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방북을 놓고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오는 31일 북한 조선사회민주당 초청으로 방북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중앙위원회의가 성원미달로 유회되는 바람에 북한을 방문해 전달할 당의 북핵 입장과 안건이 다뤄지지 못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대표가 당의 유감과 우려, 그리고 당 밖의 반대 분위기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성현 대표가 '개인적' 차원에서 '핵 반대' 입장을 전달하는 선에서 절충된 것이다.

하지만 김기수 최고위원 등은 "북핵에 대한 당의 명확한 반대 의사가 전달되어야 한다"며 지도부의 방북에 대해 반대, 지도부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은 최고위원회가 절충한 '유감' 표명에 대해서도 "지도부가 우회적으로 자위적 수단으로서 핵을 용인하는 상황"이라며 "최고위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밝혔다.

당의 한 관계자는 "당대표가 당론을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에 갈 이유와 효과가 사라졌다"며 "북핵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정파 갈등도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중권의 오래된 힐난 "진보는 대체 어느 세월에..."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는 차라리 "따로따로 가자"고 제안(?)했다. 김 후보는 "북의 핵실험 사태는 미국의 강경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냈다"며 "미국 책임론을 주장할 수 있는 호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김 전 후보는 "미국의 방식대로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핵에 대한 반대를 선언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들이 우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전 후보는 "북핵에 대해 단일한 슬로건으로 갈 수 없다면 미국을 규탄하는 쪽과 동아시아 핵무장을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서라도 진보진영이 의제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핵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어정쩡한 입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북의 미사일 발사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고 반핵 결의안은 논란 끝에 무산되었다. 이 같은 민주노동당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해온 진중권씨는 2003년에도 이런 글을 썼었다.

"도대체 전세계의 어느 진보세력이 핵 개발에 찬성합니까? 원전 폐기물 처리장에도 그 난리를 치는 마당에, 아예 핵폭탄을 만들겠다는 데에 명색이 진보라는 넘들이 그걸 잘 하는 짓이라고 정당화를 합니까? … 도대체 진보정당이라는 곳에서 기껏 핵 개발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해야 합니까? … 진보는 대체 어느 세월에 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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