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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구봉산으로 오르며, 좋은나무 산악회.
지난 겨울 구봉산으로 오르며, 좋은나무 산악회. ⓒ 박철
그래서 훌라후프를 받아들었는데 무슨 훌라후프가 그렇게 크고 무거운지 이래서 여자들이 가는데 마다 운동 삼아 훌라후프를 돌리는구나 싶었습니다. 훌라후프가 허리에서 몇 번 도는 것 같더니 역시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일행들이 재밌다고 박수를 치며 웃어댑니다. 웃거나 말거나 재차 훌라후프를 돌렸는데 먼저보다 훨씬 양호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훌라후프를 돌렸는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훌라후프가 내 허리에서 내려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나의 훌라후프 돌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허리에 벌겋게 멍이 들었습니다. 그 무거운 것을 돌리니 허리에 멍이 들 수밖에요. 저녁밥을 일찍 먹고 아내와 헤드렌턴을 머리에 달고 야간산행을 했습니다. 공터에 도착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기하게 훌라후프는 내 허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허리에 멍이 들어 통증이 왔지만 꾹 참고 1천 번을 넘게 돌렸습니다. 나 자신도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훌라후프를 잘 돌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훌라후프 돌리기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기 좋습니다. 다리를 바닥에 고정하고 허리만 살짝살짝 돌리면 되는데, 그렇게 한참 돌리다보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뱃살도 뺄 수 있고, 허리의 유연성도 키울 수 있고, 참으로 좋은 운동입니다. 그런데 훤한 대낮에는 사람들 시선이 있어서 훌라후프를 돌리면 왠지 쑥스럽다는 것입니다. 훌라후프는 주로 여자들이 돌리는데 눈 딱 감고 미친척하고 돌리자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닙니다.

내가 단골로 올라가는 구봉산 약수터 근처에는 공터가 있고 여러 가지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침 산행 길에 사람이 없다 싶으면 얼른 훌라후프를 돌립니다. 왼쪽 1천 번, 오른 쪽으로 1천 번, 완전 훌라후프 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돌리기를 멈추고 딴청을 합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처럼 인생을 풍미하며 살 수 없을까?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처럼 인생을 풍미하며 살 수 없을까? ⓒ 박철
오늘 아침 산행 길에 문득 '훌라후프를 꼭 여자만 돌리라는 법이 있는가? 남자가 돌리면 안 되는가? 훌라후프 돌리기가 뭐가 창피하다고 숨어서 돌린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다니던 산마루 중턱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히 맨손체조를 하고 성큼성큼 훌라후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떤 여자 분이 열심히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더군요. 내가 헛기침을 하고 눈인사를 한다음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공터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나에게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슬쩍 웃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 약간 화끈거렸습니다. '멈출까 말까? 계속 돌리자' 하나, 둘…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을 세는 것도 그렇고 이 참에 기도를 드리자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모으고 집중하여 기도에 몰입하기로 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한 분 한 분 생각하면서 묵상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더니 뱃속이 따뜻해졌습니다. 소나무 등걸에 매달아 둔 시계를 보니 25분을 경과했습니다. 훌라후프 돌리기를 멈췄습니다.

드디어 숨어서 몰래 훌라후프를 돌리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자유, 자유가 찾아온 것입니다. 나이 쉰이 넘어서 훌라후프에 입문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나는 아침 산행마다 훌라후프를 돌릴 것이고, 사람이 있고 없건, 누가 흉을 보건 말건, 의식하지 않고 훌라후프를 돌릴 것입니다.

어느 때는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내가 올랐던 산들을 추억할 것이고, 내 살아오는 동안 사랑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더욱 단단하고 옹골지게 나를 무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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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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