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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이 이루어진 북한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위치.
핵실험이 이루어진 북한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위치. ⓒ 오마이뉴스 고정미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지난 8월, 북한 민화협 관계자를 만나 선군정치와 핵 억지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론을 들었고, 토론 과정에서 7월 미사일 실험 발사에 이어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암시를 받았다. 선군정치의 위력을 강조하면 할수록, 평화가 멀어진다는 진리를 모르는 그들에 대해 답답함을 누르기 힘들었다.

핵실험 후 신문·방송에서는 연일 핵실험 관련 보도가 톱뉴스로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 의지는 너무도 단호하여 한 발의 양보가 없을 기세이며 곧 이어 미국은 유엔에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 구상(PSI)도 관철시키는 데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분위기이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한국에서는 PSI에 대해 한국 정부도 참여해야 한다, 안 된다는 설전이 여야 간, 진보-보수세력 간에 이전투구식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인민을 굶기는 정권은 사실상 붕괴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북한 정권 교체설을 주장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미국의 추가적 대북 제재 방식은 어떨 것이며, 북한의 붕괴 방식은 어떨 것인가 하는 얘기들이 무성하고, 포스트 김정일체제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다.

이 모든 입장이나 주장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부시와 김정일, 유엔이나 정치인들의 목소리들만 있지, 한반도 구성원의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며 해결하려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거나 있더라도 부족하다.

대북 경제제재는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경제제재이다. 돌아보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1991년에 이은 2003년의 대이라크 미국 침공이었지만, 구조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1991년 한 달만에 전쟁이 끝난 후 가해진 7년 간의 경제제재이다.

1991년 한 달 간의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30여만 명인데, 7년간 유엔결의의 완화된 경제제재를 통하여 대략 150만 명의 이라크 민중이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데 극도의 영양결핍 상태에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과거에는 별로 눈에 없었던 암환자가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나 여성들 사이에서 급증한 것이다. 소위 'Gulf Syndrome'이 열화우라늄탄의 방사성물질의 누출에 따라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계 제2의 석유보유국인 이라크는 석유나 돈은 있어도 항생제 한 알, 계란 한 알 수입하기 어려웠다. 생활필수품이라고 할지라도 '전쟁물자'가 아님을 입증해야 수입이 가능했다. 전면 봉쇄가 아닌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 시기 1990년대 북한은 이와 유사한 상태에 빠졌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련이 해체된 데다가 중국마저 등 돌렸을 때, 수십만 명이 굶주림과 영양결핍에 의해 사망사태를 맞게 되었다.

한편 2005년 9월 19일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염원, 즉 평화 정착의 염원이 이루어질 실마리가 6자회담에서 마련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깐, 증거도 불충분한 북한의 위폐문제가 불거져 나오더니,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선포했다.

그로 인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빚어졌다. 한 예로 금융권 송금을 봉쇄 당함으로써, 석유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석유 대금을 은행을 통하여 송금하지 못한 채, 북한의 관료들이 직접 현금뭉치를 들고 다녀야 한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북한이 그러한 국제 경제제재에 의한 참혹한 결과를 모른 채, 또는 최악의 시나리오(미국의 선제공격)를 도외시한 채, 이번 핵실험을 했으며, 일련의 강경한 발언을 할 리는 없다.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을 자처하는 김명철 박사의 주장대로 "외부와의 연락 없이도" "6년 정도"는 버티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1990년대 북한식 '고난의 행군' 당시 처참했던 북한 주민의 고통과 아비규환의 목소리가 들려, 그러한 시나리오나 주장들에 대해 참을 수가 없다. 북한 민중도 우리의 동족이고 더 크게는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누가 그들에게 굶어죽을 자유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인권 개선을 위한 실천 없는 미국의 인권 의식

북한 핵실험 소식을 알리는 호외가 9일 오후 서울역앞에 배포되고 있다.
북한 핵실험 소식을 알리는 호외가 9일 오후 서울역앞에 배포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동안 부시 대통령은 틈만 나면 북한의 인권을 염려하고 북한 민중의 생존권을 걱정해왔다. 급기야 2004년 10월에는 '북한인권법'까지 제정하였다. 그 덕분(?)인지 2005년 북한에는 풍년이 들었고, 오랜만에 식량배급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북한인권법에서 북한의 인권을 실제로 향상시키는 내용은 거의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격이다. 오히려 북한인권법의 진정성은 북한체제 교체에 있거나 붕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북한의 1990년대 식량난, 에너지난, 경제난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할 수 있고, 그동안 많은 주장이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서 북한의 천재지변과 함께 북한 계획경제의 내부적 모순이 사회주의권 해체와 동요라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폭발한 결과로서 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 풍족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민중들이 아껴 먹으면 그럭저럭 나눠먹었던 북한이 1990년대 들어 혹독한 경제난을 맞게 된 원인을 북한 내부적인 데에서만 찾기는 어려울 터이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외부요인을 배제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이 붕괴되리라고 상정하며 미국은 1994년의 '북미 기본합의서'를 북한과 체결하였으나 그것을 불이행함으로써 북한 민중에게 식량과 의료품, 전기와 비료를 앗아가는 데 치명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북한은 그러한 과정에서 선군정치를 앞세웠던 군사적 자주권만이 민족의 생존권이라는 입장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의 하나는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발사한 소위 '광명성1호'였다.

부시 정권은 출범 이래로, 북미간의 긴장과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켰고 급기야 북한으로 하여금 2000년말 미사일개발 동결의 가능성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1998년 페리보고서 체제를 완전히 뒤엎기 시작했다.

그 빌미로 사용한 것 중 하나가 북한의 인권문제였다. 탈북자 지원단체가 미국의 NED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본격화하던 2002년 무렵,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의 인권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탈북자에 대한 강제북송사건들이 발생했던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다. 2002년 겨울에는 그나마 지급하였던 중유마저 끊고, 경수로 건설도 중단하고 말았다.

과연 부시 정권은 목조르기식 대북제재를 통하여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대북제재를 하는 원인이 김정일 정권의 존재이기 때문에 북한의 민중들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유엔인권협약의 절반밖에 조인하지 않은 미국에게는 정치적 인권, 종교선교의 인권만 중요하고 생존권적 인권은 도외시되어도 된단 말인가?

세계 제1의 대량살상무기 보유국이자 최대의 무기 수출국인 미국은 혹시 세계 민중을 볼모로 잡고 패권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빈 밥그릇 놓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말하지 말라

"빈 밥그릇 놓고 사회주의(체제) 우월성을 말하지 말라."

이 말은 다름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4년에 했던 말이다. 실제 1990년대 북한은 밥과 광명성1호를 바꾸었다. 이제 몇 년간의 경제적 성과, 그것도 포용정책에 따른 전폭적인 남한의 인도적 지원으로 이룬 성과를 이제 다시 핵무장에 의해 줄어들 대로 줄어든 북한 민중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은 실로 범죄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일시적으로 핵실험에 대하여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에 대한 쾌거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대로 대북 경제제재가 1, 2년이 넘어 장기화된다면, 생명권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더 이상 민중적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채, 민족 자주권의 근본은 온전할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 또한 민중을 담보로 하여 미국과 한 판의 핵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일시적인 승리감에 취하는 동안 결과적으로 민심도 완전히 떠날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외세가 '압살책동'을 벌이지 않더라도 그 정권은 내파되는 길로 가고 말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플루토늄과 민중의 밥을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민중이 있고, 한반도 평화도 있고, 통일도 있다. 북한 정권은 민중의 생명권을 담보로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포용정책의 진정성을 퇴색시키지 말라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의 출발은 햇볕정책에 있다. 그리고 햇볕정책의 진정성은 정경분리 정책에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 또는 사회문화적 논리를 분리하여 남북의 긴장을 해소하고 화해를 이루어나가겠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취지와 정신이 남북의 신뢰를 이 정도로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정치적 수준에서 본다면 신뢰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으나, 시민사회 수준에서 본다면 신뢰 형성에는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

1995년 처음 대북 지원할 때만 해도 북한은 자존심을 내세울 줄만 알았지, 지원을 해도 고마움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고마워하고, 부끄러워도 한다. 그리고 남한의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배우려고도 한다.

느린 걸음이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가져온 데에는 햇볕정책이 결정적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정책은 북미간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햇볕정책 자체가 북미 화해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햇볕정책은 직접적인 연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민족 내부의 정책이라는 성격이 분명하다.

10월 9일, 북한이 예고했던 핵실험을 했을 때, 설마 설마 했던 우리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당국에서는 당장에라도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철회한다는 등, 완전한 포기는 아니라는 등 갈팡질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포기한다거나 부분 철수를 한다는 것은 여지껏의 햇볕정책의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이 바라보는 북한 민중과 우리가 바라보는 북한 민중은 성격이 다르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미국이 정작 후세인 정권을 해체하고 나자 민중의 생명에 대해서는 모로쇠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에게 민중이나, 민중의 인권은 수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령 미국에게는 민중이 '수사'에 불과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그들은 끊어 낼래야 끊을 수 없는 동족인 것이다. 미국에게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면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될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절반의 동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나아가 핵선제공격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한반도 전체의 비극적 종말이다.

이제 한반도 민중, 전체 구성원의 입장에서 북핵 사태를 바라보고, 그 처방을 가져와야 한다. 국제 사회에 대하여 대화와 외교만이 한반도 안녕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길임을 설득하는데 우리 정부는 신명을 다해야 한다. 평화의 수단으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세계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그러한 노력만이 핵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김귀옥 기자는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입니다.

이 원고는 <국정브리핑>에 2006. 10. 13일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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