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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가 땅값을 올리고 투기를 막으면 모든 부동산문제가 해결된다는 지극히 놀라운 가설을 우리는 당연시하고 있다. 우리는 투기를 막기 위해 신축아파트 분양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부동산의 투기적 단기보유에 대해선 중과세하고 일세대일주택처럼 투기가 아니라 판정하면 비과세하거나 경과세한다. 공무원이 부동산을 보유하면 투기를 했느니 안 했느니 따지고 있다.

그러나 투기는 투기대상이 원래 갖게 될 가격수준을 장기적으로 변경시킬 수는 없다. 투기는 단지 투기대상의 가격변동경로에만 어떤 단기적인 효과를 갖는다고 이해되고 있다. 부동산투기가 부동산가격을 높인다면 정책방향은 투기를 장려하는 것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투기로 부동산가격을 엄청나게 올려 우리 땅 일부를 외국인에게 팔고 외국부동산을 전부 사면 외국의 사유지를 우리 국민이 모두 보유하게 된다. 우리 국민이 세계의 사유지를 독점할 수도 있게 하는 투기란 것을 왜 억제해야 하는가?

우리가 그토록 증오하는 투기는 과연 그렇게 악질적인 것인가? 투기에 대한 혐오에 기초한 수많은 대책들은 토지문제와 주택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했는가?

땅값은 땅으로부터의 수익에 의해 결정된다. 땅으로부터의 수익은 현재 그 땅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앞으로 오를 땅값의 예상이익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땅값이 올랐다는 것은 땅의 현재의 생산성이나 기대되는 땅값 상승분이 상승되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땅의 생산성을 현재의 생산성으로 높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우리들이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여 GDP가 높아졌으므로 일정한 면적당 생산이 늘어나 땅값이 오른 것이다. 또한 앞으로 땅값이 오르리라 예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역시 우리들이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여 GDP가 높아질 것이라 예상되므로 땅값이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다.

결국 땅값을 올린 사람들은 우리들 자신이다. 즉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땅값을 올린 것이다. GDP의 증가에 책임 있는 그리고 GDP의 증가예상에 책임 있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땅값의 상승에 책임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를 성장시킨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땅값을 올린 주범이다.

투기가 있어 땅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그 오르는 만큼의 이익을 얻기 위해 투기가 생기는 것일 뿐이다. 투기는 투기대상의 가격변동폭을 크게 할 수는 있어도 투기대상이 원래 갖게 될 가격수준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개발이 예정된 지역은 그 땅을 누가 소유하든 땅값은 오른다. 투기꾼이 소유하든 원주민이 소유하든 땅값은 오른다. 시장경제에서 투기는 아주 당연하며 많은 경우 바람직한 경제행위이다.

또 땅에 대한 수요를 투기와 비투기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산의 보유 내지 수요는 실제의 이용목적과 시장가격의 변동에 따라 이익을 취하려는 투기적 목적을 함께 갖기 때문이다.

땅값이 오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땅값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생산이 증가했다는 또는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아주 기분 좋은 사실일 뿐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땅값은 세계최고라는데 그럼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GDP가 세계최고라는 말인가?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단위면적당 GDP가 큰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땅값보다 낮은 경우가 무척 많다. 그것은 땅에 대한 조세의 차이에 기인하는 현상일 뿐이다.

시장에서의 땅값은 단위면적당의 GDP에서 정부가 조세로 흡수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땅에 대한 조세가 경미하므로 땅주인이 갖는 몫이 커 땅값이 높을 뿐이다. 문제는 투기가 아니라 땅값 상승으로 인한 소득에 대한 조세가 경미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보유에서 투기딱지만 떼버리면 가격상승으로 인한 소득은 거의 과세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투기가 문제라고 잘못 생각하게 되었을까? 땅부자들은 땅값상승분에 대한 비과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자기가 올린 땅값의 일부도 가져갈 수 없는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인 비과세 대신에 희생시킬 속죄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투기이다.

투기에 대한 혐오감을 강화시키기 위해 복부인을 등장시켰다. 투기와 복부인은 죄 없는 속죄양일 뿐이다. 땅값이 오른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의 지주들이 우리 정치와 언론계를 지배하여 왔기 때문에, 수도권에 집 한 칸 가지고 있는 사람들(소위 중산층)도 눈앞의 몇 푼(일세대일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을 지키기 위해 땅부자들에게 동조하여 왔기 때문에 이런 거짓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땅값은 투기가 올리지 않았다. 땅값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올렸다. 유능한 경영인과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올렸다. 사무실의 화이트칼러와 공장의 블루칼러가 함께 올렸다. 폐병으로 죽었던 공장 노동자와 사고로 죽었던 막노동자가 올렸다. 초롱초롱 눈망울의 공부하는 아이들이 올리고 있다.

투기라는 것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어떤 명목의 토지소유이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 토지보유의 목적이 실수요이든 실수요 할아버지이든 투기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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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생 서울대 공법학과 83학번 OSU (Oregon State University) 박사과정 수료(학위 취득 못함) 조세문제 토지문제 등 경제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기사로 작성하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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