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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에 올랐다. 울긋불긋 천연색 단풍잎들이 제 맵시를 자랑한다. 빨간 연지곤지를 찍어 바른 듯 새색시 자태가 물씬 풍긴다. 노란 색 꽃신을 신은 듯 꽃 처녀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저 멀리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시샘이라도 하듯 졸졸 시냇물에 풍덩 담긴다.
그렇지만 가을 산이 아름답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가을 산에는 그만큼 눈물겨운 겸손한 사연이 담겨 있다. 보기에는 그저 울긋불긋 형형색색을 이루지만 나무들은 제 각기 힘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록 엽록소들을 하나 둘 떨어내는 게 그것이다. 그토록 자신을 비워내는 힘겨운 일들이 화려한 가을 산 속에 아무도 몰래 진행되고 있다.
가을산은 어쩌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더 닮은 듯하다. 어른들이야 제 힘껏 낙엽을 밟고 다니지만 아이들은 제 몸을 아끼듯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 어른들이야 멋지고 화려한 곳만을 찾아 오르고 또 오르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향한다. 가장 낮은 자리인 생명의 밑뿌리에 그 눈을 두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이든 화려하고 멋진 속도전보다 오히려 생명의 본질이 더 귀중한 법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하기 마련이다. 육중한 육체미의 아름다움도 늙음과 함께 덧없음을 알게 된다. 형형색색의 단풍잎들도 겨울이 되면 빛바랜 퇴적물이 될 뿐이다. 아이들을 닮은 가을 산은 그래서 생명의 본질을 깨닫게 해 준다.
가을 산에 올라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있다. 제 줄기가 아닌 다른 줄기의 이파리들이 큰 나무의 등허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늙은 나무들이 제 기운을 붙잡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어쩌면 그 큰 나무들은 제 생명보다 그만큼 가녀린 것들을 위한 충분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가을 산은 그만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제 나무의 줄기가 아니어도 마음껏 등허리를 내어주는 가을 나무는 이미 그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제 살갗이 아니면 부대끼는 것조차 싫어하는 우리네 사람들과는 달리 가을 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가을, 가을 산에 다들 올라가 보라. 가을 산에 오르되 멋지고 화려한 단풍잎들만 보려고 하지는 말라. 형형색색의 단풍잎들은 시간과 함께 언젠가 빛바랜 퇴적물이 될 것들이다. 찰나가 주는 아름다움보다 영원이 주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것은 곧 자신을 비워내는 겸손함이요, 아이들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생명의 본질이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가을 산에 올라 겸손과 생명의 본질과, 남을 배려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