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연속강연회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상과 향후과제`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장집 교수(정치학)와 조희연 교수(사회학)가 만났다. 29일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세미나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상과 향후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대담 자리에서다.

조 교수는 모두에 "70, 80%는 (최 교수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운을 뗐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입장부터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강조점 등 20, 30%의 갭은 적지 않은 비중을 지닌 것이었다.

민주주의 경로로서 '정당'을 강조하는 최 교수와 달리 조 교수는 직접 민주주의 활로로서 '시민운동'에 착목해 왔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 있어, 환경적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 교수와 달리 최 교수는 실행 주체로서 노 대통령의 책임을 통렬하게 비판해왔다.

"우선, 노무현 정부와 386 사회세력이 위기의 원인이다. 하지만 위기는 훨씬 복합적이다. 백낙청 교수의 지적처럼 분단체제가 규정하는 어떤 제약성도 있지 않나. 그 부분을 전부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 부재로 돌리는 것 아닌가."

조희연 "보수세력이 의회·정부 포위"

이 같은 조희연 교수의 질문에 최 교수는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다른 곳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며 특히 보수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환경적인 제약 요소보다 민주주의를 실제로 움직이는 행위자들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는 범위와 능력의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 왜 제대로 못하느냐?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가령 분단 체제라는 것이 우리의 제약이라고 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여러 제약들이 있지 않나. 우리가 정도가 심하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의 괴리가 크다.

노무현 정부는 매일 같이 안 된다고 하면서 '조중동' 책임으로 돌린다. 나는 이게 매우 싫다. 문제의 책임을 조중동에 돌리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사실 조중동이 강하지도 않다. 조중동은 안좋은 민주주의의의 결과일 뿐, 독립변수로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얼마나 강한데, 정부의 정책적 방법을 통해 비합리적인 논조가 주는 역할은 축소될 수 있다."


조 교수가 되물었다. "정당정치의 강화로 해결책을 찾는 방식"에 대한 지적이다. 가령 지난 4·15 총선의 결과로 민주노동당까지 합치면 개혁, 진보세력의 정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질척거리고 있지 않냐는 것. 조 교수는 "민주정부의 무능력도 문제지만 보수세력, 보수언론에 의회와 정부가 포위된 형국"이라며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를 '변형주의' 이론으로 설명했다.

"한국사회는 미국보다 다이나믹하고 매우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가 안 되는 게 제일 문제다. 정당체제가 한국사회의 삶을 대변하지 못한다. 미국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에 캠페인을 보수적으로 하고, 대통령이 됐을 때는 진보적으로 통치한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다. 진보적으로 캠페인하고 보수적으로 통치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정당이나 국회, 정부를 차지하고 나면 달라진다. 19세기말∼20세기초, 이탈리아의 '변형주의' 모델로 설명된다. 기존의 헤게모니 틀에 들어가면 그 틀에 따라서 사람들의 행태가 변형된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민주화 이후 최초의 사례"라며 "김영삼, 김대중 정권보다 상황이 좋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데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법안' 처리 과정에서의 무능을 지적했다.

"앞선 민주정부들은 여소야대 상황과 씨름하느라 정책을 만드는데 제약이 많았다. 그런데 노 정부는 4대 개혁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했다. 좋은 조건임에도 왜 못하느냐. 조중동이나 사회의 보수화에 돌릴 문제가 아니다. 그 요소를 모두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공간을 엄청 열어뒀는데, 힘과 제도적으로 부여된 것들을 활용하지 않았다. (4대 법안 처리 당시) 의회가 뭔가를 하려해도 대통령이 중간에 엉뚱한 소리를 해서 힘이 다 풀어진 거 아닌가."

최장집 "87년 이후 운동권이 정당, 정치그룹으로 발전하지 못해"

▲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연속강연회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상과 향후과제`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역당 구조가 여전한 정당 체제, 정치인들의 변형, 리더십의 부재 등에 대한 최 교수의 문제의식은 "87년이 이후 운동권이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에 닿아 있다. 최 교수는 "운동세력이 독자 정당을 형성하거나 최소한 그룹을 형성해 기성 정치권에 들어가 리더십을 만들고 공통의 정책방향이나 이념을 구체화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사회적 이슈를 대변하고 공약을 개발, 조직할 수 있는 중간, 왼쪽의 공간은 여전히 비어 있다. 또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미미하다.

최 교수는 '386 정치인'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저런 이들이 운동을 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존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운동세력에 의해 민주화가 달성된 뒤, 그 유산으로서 '권력화된 386'의 문제를 꼽았다.

그는 "열린우리당에 당장 운동의 지도부였던 386 의원들이 있지 않냐"며 "그런데 이들이 지금 뭘 하는지 책임을 묻고 싶다, 더 빨리 기성 질서에 적응하고 엘리트로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젊은 학생들이 민주주의 인식이나 이후 사태에 대해 대처할 지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운동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담의 마무리는 대안 담론의 창출과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으로 모아졌다. 조희연 교수는 "지속 가능한 대안적 사회경제 정책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세계화 시대,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을 먹고살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정부를 강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동조하면서도 최 교수는 "지적 리더십과 정치적 리더십이 결합"된 인적 역량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원을 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과 능력에 대한 불만이 있다. 민주정부를 만들어 놓고도 경제장관 하나 갖지 못하고, 기존 관료에서 나왔다. 상당히 허무하다. 민주화 세력 내에서 '지적 리더십'이 나와야 하고, 정치적 리더십과 결합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적리더십을 시민사회에서 형성하고 공론의 장을 확대하려는 조 교수의 방식에는 비관적이다. 교육 제도와 교육 내용을 바꾸는 건 정부의 몫이다. 민주정부에서 왜 그런 교육부장관이 안나오나. 옛날과 달라진 게 없다."

최장집 교수와 조희연 교수의 대담은 2시간 가량, 30명 가량의 청중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렸다.

▲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연속강연회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상과 향후과제`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오른쪽 끝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