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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환야>
히가시노 게이고 <환야> ⓒ 랜덤하우스
일본을 가리켜서 추리소설의 천국이라고 한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추리소설뿐 아니라 온갖 장르 문학이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추리소설이 그렇다. 번역 소개된 외국 작품들도 많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추리작가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추리문학이 발달한 이유가 무얼까. 일본은 범죄율이 낮은 나라라서 사람들이 추리소설을 통해서 범죄의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분석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서 장르문학이 융성 하는 일본의 문화적인 풍토가 한국보다 다채로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특징이라면 탄탄한 구성과 다양한 소재를 들 수 있다. 탄탄한 구성이라는 것은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할 미덕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를 일본 추리소설만의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소재 속에서 그런 구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일본 추리소설만의 장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일본 추리작가의 상당수는 미스터리 소설의 무대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영역에서 소재를 찾아서 작품을 구성해 나간다.

'유키토 아야츠지' 같은 본격파 추리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이런 점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 '요코야마 히데오' 같은 작가의 작품은 본격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갖춘 사회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흔히 '사회 추리소설'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작품들을 읽다보면 당시 일본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재미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물론 본격 추리소설의 관점에서 사회 추리소설을 본다면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하다. 사회 추리소설 중에서도 특히 '추리'보다는 '사회'에 비중을 둔 작품들이 그렇다. 치밀한 분석과 꼼꼼한 추론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고, 어딘지 맥빠진 듯한 결말로 끝을 맺을 때도 있다. 범인이 탐정을 속인다기 보다는 작가가 독자에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와 '추리'의 두 영역을 넘나드는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어떨까? <환야>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에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에도 일본추리작가협회 상, 나오키 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대표적인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TV 드라마 또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사회성을 많이 담고 있다는 일례가 될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환야>는 1995년 일본을 강타했던 고베 대지진으로 시작한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마을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지진의 폐허더미 속에 묻어두고 새 출발을 위해서 도쿄로 함께 떠난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변이 낮처럼 밝더라도 그건 가짜야. 그런 건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어."

한 주인공의 말처럼 이 작품의 분위기는 어둡다. 두 주인공 중에서 한 명은 작품 내내 거의 웃는 일이 없고, 다른 한 명은 자주 웃지만 그건 가식이다. 독자들은 둘 중에서 누구에게라도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느냐에 따라서 결말을 맞이하는 느낌도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를 택하더라도 읽는 동안에는 작품에 빠져들 것이다.

빠른 전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과 시점의 전환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두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의 등장 인물과 이들을 추적하는 형사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쌓아간다. 하지만 그 시선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물줄기 여러 개가 모여서 커다란 강을 만들듯이 그 시선들은 모이고 합쳐져서 마지막 대결로 치닫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20년 넘게 작품 생활을 하면서 수 십 편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 작품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접해 본 몇 편의 작품을 보더라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는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입시문제를 다루더니 <레몬> <변신>에서는 첨단과학과 그에 따른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툭 던져놓았다. 그리고 <백야행> <환야>로 이어지는 '밤' 시리즈에서는 개성이 너무도 강한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도 사회 추리소설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하기에는 이 작가의 작품들이 너무 다채롭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을 이어올 때마다 '사회'와 '추리'의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교묘한 줄타기를 해왔다. <환야>는 분명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온 작품이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줄타기를 보여줄까.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에 하나다.

덧붙이는 글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랜덤하우스 출간.


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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