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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포시 사우동에 위치한 '김포시노인복지회관'. 이른 아침부터 곱게 단장한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무엇이 그리 좋으신지 얼굴엔 연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르신들의 그 환한 웃음이 마치 쏟아져 내리는 가을볕과 닮은 듯하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곱게 내려앉은 가을볕.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할아버지. 뭐가 그리 좋으세요?"
"오늘 장수사진 찍는 날이잖아. 기분 좋게 찍어야지. 안 그래?"
"서운하지는 않으세요?"
"서운하기는 왜 서운해. 한 평생 잘 살았으니 마지막 가는 길, 자손들과 웃는 낯으로 이별해야지."


영정사진이라 함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셔놓은 자리의 맨 앞에 모시는 사진이다. 그렇기에 영정사진이라는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하얀 서리꽃이 내려앉은 것 마냥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건만, 정작 사진을 찍을 어르신들의 얼굴은 그저 밝기만 하다.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는 그 원초적인 진리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 평생 잘 살았으니 애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어. 그러니 먼 길 떠날 때도 훌훌 털고 웃으며 가야지."

어르신들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박힌다. 그렇다고 정말 애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을까. 차마 다 드러내지 못하시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가슴 속 켜켜이 박혀 있을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은 얼마나 가슴 저릴까. 깊은 골 주름 고랑마다 심어져 있을 삶에 대한 애연은 또 얼마나 가슴 에일까. 다만, 회한이건 애연이건 그것 또한 인생이었기에 당신들 허허로운 가슴팍에 무심하게 삭이는 것이지 싶다.

▲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근사한 양복에 고운 옥색 치마저고리에 한껏 멋을 내신 모습이다.
ⓒ 김정혜
'김포시노인복지회관'에서 이루어진 장수사진 무료촬영행사는 한국가스공사의 청연봉사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청연봉사단은 한국가스공사가 전방위로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한 조직이다. 그들은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환경정화활동, 사회복지, 문화예술, 자원봉사, 자매결연, 청소년 보호육성 등 매우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번 행사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 '청연봉사단' 단원들의 활동 모습. 행사 내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김정혜
장수사진무료촬영행사는 200여분의 사전접수로 이미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행사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됐으며, 행사장은 속속 모여드는 어르신들과 어르신들을 모시는 청연봉사단의 바쁜 손길로 매우 분주했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양복이 왠지 어색하시다는 할아버지, 옥색 치마저고리에 수줍은 미소가 마치 새색시 같은 할머니. 그래도 뭔가 부족하신 듯 화장대 앞에 앉으셔서 꽃단장에 여념이 없으신 모습이 어찌 그리 고와 보이는지….

▲ "사진 근사하게 나오도록 화장 좀 잘해 줘"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봉사단들이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다.
ⓒ 김정혜
촬영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옷매무새를 고치고 또 고치는 어르신들이나 곁에서 아들처럼 딸처럼 자상하게 보살펴 주는 봉사단 단원들이나 한결같이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촬영실에 들어가 막상 자리를 잡고 앉자 어르신들은 매우 긴장하시는 듯했고, 그 곁에서 긴장을 풀어 주느라 여념이 없는 봉사단들의 분주한 몸짓에 촬영장은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 한국가스공사 홍보부 정상유 사진작가. 촬영 전, 한 분 한 분 꼼꼼하게 매만져 드리는 손길엔 정성이 담뿍 깃들어 있었다.
ⓒ 김정혜
그 중 이마에 구슬땀을 매달고서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촬영에 열심인 한국가스공사 홍보팀 정상유 사진작가가 눈에 띄었다. 그의 열정이 왠지 남달라 보인다.

"군복무 시절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이 없었어요. 할 수 없이 부모님 결혼사진에서 아버님 사진만 확대해서 영정사진으로 썼어요. 그 일이 두고두고 제 가슴에 옹이로 박혀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어르신들 장수사진을 촬영하는 날이면 아버님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곤 해요. 그래서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찍어 드리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데 그래도 뭔가 모르게 늘 부족한 것 같아요. 사진 찍고, 인화하고, 일일이 액자 만들고 또 어르신들께 직접 전해 드리기까지 힘 드는 거야 이루 말로 할 수 없죠. 그러나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요. 아버님께 대한 불효를 이렇게라도 갚아드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할아버지. 이제 찍습니다." "그려. 근사하게 찍어 줘."
ⓒ 김정혜
점심시간. 잠시 틈을 내 그의 열정 뒤에 숨겨진 아픈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아픔이 그에겐 곧 힘이라고 한다. 아버님에 대한 그런 애틋함이 있기에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장수사진 무료촬영 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 후 다시 촬영이 이어지고 봉사단들의 발걸음은 다시 재빨라졌다. 그들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꽃이 피어 나고, 사진을 찍고 나오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역시나 함박꽃이 활짝 피었다. 봉사단들은 혹여 어르신들이 쓸쓸해 하지는 않으실까, 혹여 영정사진이란 것에 서글픔을 느끼지는 않으실까 매우 세심한 배려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 발 마사지를 하며 촬영 순서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
ⓒ 김정혜
그들에게 있어 봉사란 것은 늘 아쉽고 모자라는 것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이렇듯 어르신들을 모시는 자리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염려는 기우인 듯하다. 영전사진, 아니 장수사진을 찍는 행사가 이렇듯 화기애애하고 유쾌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어르신들에게 온전히 따스하게 스며든 듯하니 말이다.

장수사진. 지켜보는 내내 그 말이 참 적절한 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굳이 영정사진으로 그 용도를 정할 것이 아니라, 장수하기 위한 부적쯤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진이 그리 서글플 것도 그리 서운할 것도 없지 싶다.

어르신들은 그 사진에 대해 이미 장수하기 위한 부적으로 일찌감치 생각하시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을 찍고 나오시면서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이제 장수 사진 찍었으니, 분명 장수할 거야."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의 등 뒤로 가을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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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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