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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 지음. 김은영 그림. <정혜이모와 요술가방>
정길연 지음. 김은영 그림. <정혜이모와 요술가방> ⓒ 아이들판
작은 샘물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목을 축여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잡티와 먼지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가면서 그 아픔을 안고 있지만 샘물처럼 누구에겐가 사랑의 향기, 마음의 향기를 전해주는 아들이 있다.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웃에게 말없이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봄날의 햇살처럼 미소 짓는 사람이 있다.

정길연의 가슴 따뜻한 동화 <정혜이모와 요술가방>에 나오는 정혜이모가 그런 사람이다. 정혜이모는 언제나 맑은 미소를 띠고 아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녀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게 들어 있다. 아이들은 그 가방을 '요술가방'이라고 부른다. 초콜릿, 풍선, 색종이, 손 반창고, 머리끈, 가위 등 필요한 것은 다 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가 없다. 첫 아이를 사산한 후론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러나 글속엔 그 아픔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동화의 화자로 등장하는 초등학교 1학년인 '불휘'를 통해 짧게 언급될 뿐이다. 다만 아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정혜이모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도 그녀를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그녀는 천사와 같다.

아이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나 친구 간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를 찾는 대신 정혜이모를 찾는다. 정혜이모는 찾아온 아이들을 꼭 안아주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요란하게 울던 아이도 정혜이모의 손에 가면 이내 울음을 그치고 방글방글 웃는다. 물론 그때 요술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동원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정혜이모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요술가방의 물건들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녀의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녀를 좋아하게 한다.

어른들의 생각을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는다. 이러한 마음을 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다 다치면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러면 그녀는 치료를 해주고, "수술 끝! 이제 다시 신나게 노는 거야"하며 놀이터로 보낸다.

머리가 헝클어진 여자아이에겐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은 다음 머리를 단정히 빚어주고 예쁜 방울이 달린 머리끈을 꺼내 묶어준다. 그리곤 요술가방에서 색색의 색종이를 꺼내 무언가 만들어 하늘에 날려 보내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엔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정혜이모의 손은 요술 손, 손끝에서 파랑새가 포르르 날아올라요. 보랏빛 나팔꽃이 우산처럼 활짝 펼쳐져요. 자동차나 비행기는 막 공장에서 뽑아져 나온 것처럼 은빛 금빛으로 반짝거리지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꿈과 웃음과 행복을 주던 정혜이모는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늘 함께 했던 사람, 언제나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면 처음엔 궁금해 하다가 나중엔 허전함과 아쉬움, 그리움을 동반하게 된다. 아이들도 그랬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을까? 불휘의 말을 들어보자.

"댁은 누구세욧!" 정혜이모는 어리둥절해서 소리를 지른 여자와 주미라고 불린 애를 번갈아 쳐다보았지요. 아무 대답도 못한 채로요. "엄마가 말했지?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고!" 주미가 자기 엄마 곁에 붙어 서더래요. 그제서야 무서운 생각이 든 듯,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서요. 그 순간 정혜이모는 '따라가서는 안 될' '아무나'가 되어버린 거였어요.

졸지에 파출소까지 끌려간 그녀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까지 추궁당하며 유괴범으로 몰렸던 것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 마트에 들어가 맛있는 걸 사주려는 마음이 주미의 엄마에겐 유괴범처럼 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상심한 정혜이모는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안 보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말한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묻거나 같이 가서 알려달라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특히 먹을 거 사준다고 하면 무조건 거절하라고.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작가는 정혜이모를 통해 살짝 보여준다.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정혜이모는 아주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나타난 정혜이모의 품엔 요술가방 대신 아기가 안겨 있다.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그런데 정혜이모는 아이를 요술가방에서 나온 것이라 말하며 웃는다. 아이를 안고 나팔꽃처럼 활짝 웃는 정혜이모를 바라보면서 불휘도 활짝 웃는다.

<정혜이모와 요술가방>은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가벼운 터치로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생각의 틈을 그어놓고 있다. 가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동화를 읽다보면 훈훈한 미소가 절로 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인색하다 할지라도 작지만 따스한 내 손을 내밀면 우리가 사는 공간은 조금이라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혜이모의 손길과 미소처럼 말이다.

정혜이모와 요술가방

정길연 지음, 김은영 그림, 아이들판(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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