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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부터 대학입시가 달라진다. 지금껏 수능과 내신 성적을 석차로 표기하여 한 줄로 세웠는데 이제 등급으로만 표시된다. 이에 많은 동점자가 나타날 수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귀를 세워 왔다.

지난 8일, 서울대는 정시모집에서 학생부를 50%(교과 40%, 비교과 10%), 논술 30%, 면접 20%로 하는 입시 요강을 발표했다. 이에 논술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본고사 부활이나 다름이 없으며 이로 인해 사교육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했음인지 15일, 서울 7개의 사립대학교 입학처장 모임에서 현선해 성균관대 입학관리처장은 "2008학년도 입시에서 학생부 반영 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적용키로 했다"며 "따라서 2008 입시에서는 학생부가 상당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논술의 경우 반영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부나 수능에 비해 비율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동점자를 변별하는 보조적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여론이 형성되자, 서울대 입학관리본부는 17일 "2006학년도 지원자를 대상으로 점수 분포를 통한 전형 요소별 영향력 평가를 실시한 결과 학생부 성적이 논술보다 2배 이상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며 논술보다 학생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힘입어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모집 정원의 일부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중심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신설하거나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논술을 폐지한다고 발표한 대학은 없다.

이러한 발표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지럽다. 해괴한 말장난으로 우리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희롱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락에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논술을 무엇 때문에 치르고자 하는가?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수험생을 왜 괴롭히고자 하는가? 지금 수험생들이 논술에 돈과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왜 논술인가

대학이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다. 왜 대학에서 논술을 들고 나왔는가? 단순히 변별력 때문이라 보지 않는다.

옛날에는 10년만 공부하면 되었는데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논술이라 생각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멀티플레이어가 요구되며 여기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 논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의 단순한 글쓰기와 다르게 논술의 형태도 통합적 사고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비판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논술의 변별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논술 형태에 대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어떤 유형의 논술로 통합적 사고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비판력을 물을 것인가?

먼저 학교 현장 교육과정과 연계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 내어야 한다. 몇 몇 대학의 논술 지문은 지나치게 현학적이다. 그리고 현재 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준에서 벗어나 지문을 읽어내고 논제에 맞춰 논술하기가 어렵다. 논술 문제가 이렇게 출제되는 것은 위험하다. 논술 시험의 목적이 사라지고 단순한 지식 축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논술 참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소설도 줄거리만, 철학, 과학, 사회 분야의 서적도 핵심만 요약하여 놓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암기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논술은 족집게로 전락한다. 지금껏 학생들과 함께 논술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논술 형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바람직한 논술의 형태는

먼저 통합적인 사고력을 묻기 위해서 다양한 자료를 주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하여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논술 형태가 바람직하다. 아래의 논술 문제는 모대학에서 논술대비 첨삭서비스에 나온 문제이다.

2003년 3-4월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전쟁 파견과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국익론에 기초한 파병찬성론과 평화론에 기초한 파병반대론이 팽팽하게 대립하였다. 제시문 (가), (나), (다)를 참조하여, 국군의 이라크 전쟁 파병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설득 논리를 1,200자 내외로 전개하시오.

(가)의 지문은 국제연합 헌장 2, 33, 41, 41, 51조에서, (나)지문은 고등학교 <정치>교과서에서, (다)는 대한민국 헌법 5, 10조에서 가져왔다. 그러므로 수험생은 견해를 펼치기 위해서 지문에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근거나 파병에서 안 될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 흔히 이라크 파병에 대해 찬반을 묻고 있지만 이러한 근거를 밑바탕으로 깊이 있게 묻고 있는 문제는 보지 못하였기에 논술 문제로서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에서 이러한 논술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고전과 현대, 인문과 자연, 동양과 서양을 한데 묶도록 하는 문제 또는 여러 자료를 주고 그것을 분석하여 자기의 견해를 밝히도록 하는 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논술로 학생들의 통합적 사고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지식정보화 시대에 우리 교육이 마땅히 할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영어나 수학, 과학에 기대어야만 지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논술은 안 된다.

그리고 논리력과 창의력을 함께 길러주기 위한 논술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 형태는 다양하게 출제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학교 교육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뒷부분 이어쓰기(이야기의 한 부분을 주고 뒷부분을 이어가도록 한다), 갈래 바꾸기(백석의 <여승> 같은 시를 이야기로 바꿔 보게 한다), 가운데 부분 메워 넣기(처음과 끝 부분을 주고 가운데 부분을 메워 넣도록 하거나, 첫 문장과 끝 문장이 모순된 문장을 주고 가운데 부분을 만들어 넣도록 한다) 등이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 보았다.

다음 글을 바탕으로 전생에서 '중 - 곰 - 이'의 관계를 이야기로 만들어 보시오.

옛적에 어느 재상가에 사기장수가 하룻밤을 묵어갔더라네. 그런데 다음날 사기장수 가 떠난 뒤 재상 부인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지. 사기장수를 따라 도망을 친 거지. 재상은 망신스럽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궁리를 해봤으나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재상가 부인이 사기장수를 따라간 연유를 알 길이 없었더란다. 그래서 재상은 벼슬을 내어놓고 부인을 찾아 그 연유나 알아보아야겠다고 팔도 방랑길을 떠났는데, 어느 날 깊은 산골에 이르러 해는 떨어지고 길은 더 갈 수 없고 해서 마침 외딴 수숫대 움막집을 찾아 들어갔더란다.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아낙 하나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데 이게 웬일일까? 바로 그 아낙이 재상의 부인이 아니었겠나? 하도 기가 차서 재상이 부인 고개를 드오, 나를 모르겠소? 하고 말하니까 부인은 얼굴을 숙인 채 알면 뭐하고 모르면 뭐하겠느냐, 다 인연이 한 짓이라 아무 말씀 마시고 돌아가달라고 대답을 하더란다.

그래 수숫대 움막집을 하직하고 나선 재상은 그 곱던 손이 갈구리가 되고 옷은 살만 가렸다뿐이지 남루하기가 거렁뱅이 꼴이요 재상댁에서는 말도 못 먹는 험한 음식을 마다 않고 화전을 일구어서 사는 부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는데 재상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부인의 팔자, 인연을 되새겨 생각해 보았더란다. 집에 돌아온 재상은 전생록을 펼쳐보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데 전생록에 재상은 중이었고 사기장수는 곰이었고 부인은 이더라네. (박경리의 <토지>에서)


이 논제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가 중을 떠나 곰에게로 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거쳐야 하므로 논리적 사고력이 요구된다.

① 중과 이가 서로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②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는 중에게 만족하지 못 한다.
③ 이가 중을 떠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까닭을 마련한다.
④ 이가 중을 떠나 곰에게로 간다.

또 그 과정에 따른 내용을 채우기 위해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 형태는 논리력과 창의력이 한데 어울려져 좋은 답안을 이루는 것이므로 논술에서 의도하는 목적을 살릴 수 있다. 서울대학(2004학년도 재외국민 전형 문제)에서도 가톨릭대학(2003학년도 수시2학기 자기추천자전형 인문계열 공통문제)에서도 이러한 유형은 이미 출제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계속 발전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논술은 필요하다

논술은 필요하다. 21세기 교육은 기성세대가 받았던 산업시대 교육과 달라야 한다. 논술은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춰 가장 먼저 나온 교육의 변화로 보아야 한다. 단지 대학이 논술에 대하여 치열한 고민을 그리고 고등학교가 이에 대한 준비를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논술을 준비할 것인가에 문제 초점을 맞춰어야지 아예 논술을 없애는 쪽으로 논의를 모아서는 안 된다. 논술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단순한 변별력이 아니라 지식정보화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의 한 방법으로 다가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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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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