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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는 남궁동호씨의 표정이 밝다.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는 남궁동호씨의 표정이 밝다. ⓒ 김혜원
"오후 3시에 집에 들어가서 6시간 정도 자고, 저녁 9시경에 일어납니다. 보통 밤 10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물건을 하려면 뛰어다녀도 시간이 빠듯합니다. 어떤 때는 담배 피우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요.

그렇게 걷고 뛰고 하면서 마련한 물건을 여기서(동대문) 보내기도 하구요. 부산처럼 먼 곳이나, 배송 버스가 오지 않는 곳에는 (물건을) 강남터미널에 가서 보내주어야 하는데, 그 작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면 거의 아침 여섯 시가 되는 겁니다."


밤을 낮처럼 산다는 사람인 동대문 시장의 '나까마(사입자)' 남궁동호씨를 만난 시간은 지난 15일 밤 11시. 주택가와 아파트촌에 불이 꺼지고 도로변에 차들의 운행도 적어지는 시간,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그 시간, 서울 동대문시장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휘황한 불을 밝히고 있다.

아는 사람이 이쪽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입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던 차에 남궁동호씨를 만나게 됐다.

밤이 되면 동대문 운동장 주변은 좌판과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밤이 되면 동대문 운동장 주변은 좌판과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 김혜원
동대문운동장을 돌아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교통정리 하는 경찰관들의 호루라기 소리, 쇼핑몰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 소리와 흥정하는 사람들의 소리….

대한민국 국민이 입은 옷의 대부분이 판매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의류의 메카 동대문시장은 세상이 모두 잠이든 밤 11시경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자정을 넘어서면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이야기하기도 힘듭니다. 거의 전쟁통이지요. 상가마다 들어찬 인파들이 마치 출퇴근시간 지하철 속 같거든요. 사람들 속을 떠밀려 다닌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심야시각 동대문시장에 가면 사람만 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두세 개씩 메고 도매상가의 계단과 계단 사이, 층과 층 사이를 나르듯 누비는 젊은 남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옷가게(소매점)를 하는 젊은 남성들이 저렇게 많은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바로 '나까마'라고 불리는 사입자들이다.

"사입자는 물건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입니다. 지방 상인들이 서울에 매번 올라오려면 시간이나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소매점의 사활은 물건이 얼마나 다양하며 신상품으로 교체가 얼마나 자주 되느냐에 달렸거든요. 그런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에 맞추려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도매시장을 돌아야 하는데, 낮에 장사하고 밤에 여길 돌아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자정 무렵의 동대문 시장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자정 무렵의 동대문 시장 ⓒ 김혜원
'구매 대행' 외에도 사입자를 찾게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신용거래(외상)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년간 동대문에서 사입자 일을 한 경험과 인맥으로 외상거래가 가능하다. 사입자를 고용하고 있는 소매점주는 자신의 유동비용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가져갈 수 있고, 또 때맞추어 반품과 교환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소매업주는 하루에 100만원을 들고 와도 쓸 돈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동대문 시장입니다. 한 시간밖에 안 돌았는데 돈은 벌써 다 써버리고 없다는 분들이 많거든요. 웬만한 사람들은 외상거래가 되기 않기 때문에 탐나는 옷을 다 사다 보면 늘 그런 문제가 생기지요.

저희 같은 나까마들에게 물건을 맡기는 상인들은 오히려 편하다고 하세요. 옷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유능한 사입자만 만나면 충분히 소매할 수 있습니다. 유행에 맞는 옷을 고르는 일부터 소매 가격표를 다는 일(택작업), 반품과 교환까지 다 해드리거든요. 소매점주는 우리가 보내는 물건을 그냥 걸어놓고 팔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받는 수당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경력과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한 소매점당 120∼2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창 경기 좋은 때는 젊은 사입자들의 차가 한 달에 한 번씩 바뀐다고 할 정도로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것도 옛말이 되었어요. 제가 삼 년 전만 해도 거래처를 두세 개씩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거든요."

서른셋. 사입자 5년만에 어느정도 동대문시장을 알게 되었다는 남궁동호씨
서른셋. 사입자 5년만에 어느정도 동대문시장을 알게 되었다는 남궁동호씨 ⓒ 김혜원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인터넷 의류점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옷가게들의 수가 줄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사입자들의 일거리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이 도매시장의 판매 형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제가 올해 서른셋이거든요. 몇 년 전만 해도 남들 잘 때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금방 부자 되겠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사입이라는 직종이 알려지면서 이쪽으로 새롭게 뛰어드는 젊은 친구들도 많아졌고요, 인터넷 상점들이 생겨나면서 거래선인 오프라인 매장 자체는 점점 수가 줄어드는 추세거든요."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던 그도 몇 달 전부터 인터넷 쇼핑몰사업에 뛰어들었다. 'ㅅ 매니저'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 중이라는 것.

"동대문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과 만들었는데 아직은 시작단계라 매출이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터넷쇼핑몰이 잘되려면 검색어를 치면 나와 줘야 하거든요. 포털에서 '의류', '옷', '여성복' 이렇게 치면 나오는 쇼핑몰이 되려면 검색어를 사야하거든요. 검색어 당 500만원은 줘야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은 그럴만한 돈도 없고 돈이 있다고 해도 워낙 인기가 있는 검색어라 누가 내놓지 않는 한 사는 것도 불가능하답니다."

그렇게 열심히, 그것도 밤낮을 바꿔 사는 그도 혹시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배송을 위해 길게 늘어선 물건과 사입한 물건을 포장하고 정리하는 사입자들
배송을 위해 길게 늘어선 물건과 사입한 물건을 포장하고 정리하는 사입자들 ⓒ 김혜원
"제 주변에도 일반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요. 저도 이 일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구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월급쟁이도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남들이 뭐라는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기가 허술해 보여도 도매 점포 하나가 돌아가면 억대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저도 동대문에 버젓한 도매 가게를 하나 갖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지요."

한 시간여 그와 대화를 하고 있는 중에도 수많은 사입자들이 지방으로 보낼 물건을 가져와 배송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물건을 싣고 각 지방으로 내려갈 버스주변으로 물건들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던 그도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이제 일어나야겠습니다. 인터뷰를 하느라 업무시간이 늦었거든요. 몇 군데는 이미 물건을 보고 주문도 해 놓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을 해야 합니다."

바쁘게 인사를 하고 시장통 인파들 속으로 사라진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역시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시였다.

동대문 시장의 유명한 먹거리 포장마차 골목. 장보기로 시장한 배를 채울수 있다
동대문 시장의 유명한 먹거리 포장마차 골목. 장보기로 시장한 배를 채울수 있다 ⓒ 김혜원
"야심한 밤에 네 살 된 딸아이와 아내만 남겨두고 집을 비우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입니다. 밤을 새우고,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고, 주변이 시선이 어떻고는 문제 되지 않는데, 여자 둘만 집에 남겨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아빠가, 남편이 든든하게 밤을 지켜 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주는 것이 미안해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니, 딸이나 아내가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제 딸과 아내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낮보다 환한 밤을 사는 남자 '나까마(사입자)' 남궁동호씨. 시장통 5년에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 제대로 보는 눈이 생겼다는 남궁씨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동대문 시장의 밤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남궁씨와 같이 희망에 부푼 젊은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새벽 2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동대문 새벽시장의 열기는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반짝이는 눈, 포장하는 바쁜 손놀림, 인파들 사이를 바람처럼 가르며 들리는 바쁜 발걸음, 불야성을 이루는 노점의 불빛들 속에는 열심히 사는 우리들의 이웃이 있었다.

우리들의 낮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동대문 새벽시장의 밤. 그곳에는 희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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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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