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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의 가게 앞에서 만난 위구르 아이들. 어린 시절 학교 길의 구멍가게 앞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노성의 가게 앞에서 만난 위구르 아이들. 어린 시절 학교 길의 구멍가게 앞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 최성수
새벽 2시 51분, 쿠처 역에서 새벽 기차가 출발한다. 우루무치에서 쿠처로 올 때 탔던 그 기차다. 카슈카르행이다. 캄캄한 어둠 속을 기차는 천산 산맥 남쪽 기슭을 따라 달린다.

내가 자리 잡은 침대는 2층. 어둠 속에 기차를 타고, 어둠 속에서 잠든다. 잠 속에 뒤척이는 것은 내가 아니고 기차다. 기차는 사막과 산맥의 사이를 밤새도록 뒤척거리며 달리고, 나는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침, 몸이 무겁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타림하를 다녀온 직후 갑자기 목이 잠기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사막이 내 몸의 일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뜨거운 열기에 내 몸이 지친 탓이리라. 말이 없으면 생각은 더 깊어지는 법인지,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다. 막막한 사막, 주름만 잔뜩 잡힌 산, 어쩌다 나타나는 조그만 오아시스 마을, 사람이 살았던 자취가 상처처럼 남아있는 낡은 울타리와 무너진 집들도 스쳐 지난다. 복류수가 솟아나다 사라지면, 마을도 제 숨을 다하고 저렇게 상처만 남기나보다.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어쩌면 사막의 삶이리라.

막막한 풍경만 바라보는 사이 시간도 달리는 기차처럼 흘러간다. 낮 11시 51분, 카슈카르 역에 도착한다.

향비묘, 위구르의 자존심이 지은 집

향비묘, 유리 타일이 아름답다. 향비는 위구르인의 자존심이 아닐까?
향비묘, 유리 타일이 아름답다. 향비는 위구르인의 자존심이 아닐까? ⓒ 최성수
카슈카르는 국경 도시다. 인도,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타즈키스탄 같은 나라들과 가깝기 때문에 일찍부터 국경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고, 불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들도 번성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뒤섞여 있다.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쪽 사람들과 유럽 여행객들이 섞여 다니고, 위구르족들 사이에 유럽 여행객들도 심심치않다.

도시도 깨끗하다. 곳곳에 서있는 가로수들은 싱그럽다. 쿠처의 가로수가 사막의 먼지에 흐릿해 보인다면, 카슈카르의 가로수는 금방 비에 씻긴 것처럼 맑다. 오랜 사막 여행길에서 인간의 마을로 돌아온 것 같은 마음으로 향비묘에 간다.

향비묘는 향비의 무덤이지만, 실은 향비네 집안의 무덤이다. 향비(香妃)는 카슈카르 지역의 권력자였던 아팍호자의 5대 자손이다. 아팍호자는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가족 묘지를 만들었다. 향비가 이 가족묘에 묻혀 있기 때문에 향비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향비묘는 무덤은 무덤이지만 모양은 궁궐 같은 집이다. 아팍 호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자손이며 제자였다고 한다. 17세기 무렵 이곳으로 이주하여 이슬람교를 전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그 집안의 내력보다도 이 무덤은 향비라는 여자 때문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향비는 청나라 건륭제의 아내였는데, 몸에서 향기가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청나라 건륭제는 천산남로를 평정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때 향비의 사촌오빠는 청에 맞서는 세력이었고, 친오빠는 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결국 사촌오빠 세력은 청과 친오빠의 힘에 의해 진압되었고, 건륭제는 그 공을 기려 오빠를 비롯한 가족들을 북경으로 불러 살게 했단다. 향비네 가족을 초대한 황제의 잔치 자리에서 황제의 눈에 띈 향비는 결국 황제의 여러 부인 중 하나가 되지만, 결코 황제의 수청을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황제가 가까이 하려 하면 칼을 들고 맞서 절개를 지키다가 마침내 자결을 하였다고 한다. 향비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3년에 걸쳐 북경에서 이곳 카슈카르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향비와 그의 가족들은 곽집점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평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등, 청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건륭제의 총애도 돈독하여 궁궐 안에서도 제 민족의 풍습을 지키고, 그들 민족의 옷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며, 28년 동안 건륭제의 사랑을 받다 58세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지금 향비의 무덤은 북경 명십삼릉에 건륭제와 함께 묻혀 있다는 것이 다른 이야기다.

서로 상반되는 두 이야기는 어쩌면 향비를 바라보는 한족과 위구르족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구르족은 향비를 자기 민족의 자존심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고, 한족은 중국 민족의 단합이라는 목적의식적인 입장에서 향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향비묘 앞의 화단. 사막에도 저리 꽃이 곱다니, 향비의 넋이 꽃으로 핀 것 같다.
향비묘 앞의 화단. 사막에도 저리 꽃이 곱다니, 향비의 넋이 꽃으로 핀 것 같다. ⓒ 최성수
어느 곳에 있는 무덤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향비묘의 모습은 그런 호기심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있다. 푸른 색 유리 타일로 치장된 무덤은 카슈카르의 상징처럼 보인다. 카슈카르가 '유리 타일로 덮은 지붕'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니 말이다.

인종의 특성상 코가 크고 눈이 서글서글한 미인이었을 향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카슈카르의 감당할 수 없는 더위를 상쇄할 만하다는 느낌이, 향비묘에서 든 것은 나의 감상 탓만은 아닐 것이다.

국제 대 바자르, 국경 무역의 현장

마른 과일을 파는 카슈 국제 대바자르의 가게. 맛뵈기로 몇 알 씩만 먹어도 배부르다.
마른 과일을 파는 카슈 국제 대바자르의 가게. 맛뵈기로 몇 알 씩만 먹어도 배부르다. ⓒ 최성수
카슈카르 대 바자르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한 여름에도 겨울철에나 입을 법한 모피 코트에, 색색 물들인 옷감, 온갖 과일 말린 것들, 심지어 우리나라 영화배우 사진이 붙어있는 공책도 있다. 허텐(和田)의 옥(玉)을 파는 곳도 있다. 오래 전부터 허텐의 질 좋은 옥이 이곳 카슈카르에서 가공되어 이웃 나라들로 수출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옥이 이곳의 주요 교역 물품 중 하나인가보다.

국제 대 바자르의 천 가게. 갖가지 문양의 천들이 시장을 더 빛내준다.
국제 대 바자르의 천 가게. 갖가지 문양의 천들이 시장을 더 빛내준다. ⓒ 최성수
마치 70년대 우리나라 어느 시장통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바자르를 둘러보는 것은 즐거움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하다. 상품을 구경한다는 즐거움과, 카슈카르의 끔찍한 더위가 시장에는 공존하기 때문이다.

건과일을 한 봉지 사들고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치 옛날 장터에 온 것처럼 눈을 두리번거린다. 시장에는 국제 바자르라는 이름대로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있다. 아마 인도나 파키스탄, 타즈키스탄 같은 이웃 나라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의 흥정하는 목소리로 시장은 떠들썩하다.

한참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털모자가 가득 진열된 가게가 눈에 띈다. 강원도의 추위 속에서 지내시는 아버지가 생각나 털모자 하나를 고른다. 서툰 중국어로 물으면, 주인 역시 서툰 중국어로 대답한다. 물건을 정하고 가격을 흥정하다 무슨 동물의 털이냐고 물으니 뭐라고 대답하는 데 알 수가 없다. 내가 수첩을 꺼내들고 중국어로 써달라고 하니, 볼펜을 받아들고 한참 미적거리던 주인이 중국어를 쓸 줄 모른다며 미안한 표정이다.

털모자 가게 주인. 나와 손짓 발짓으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천성이 친절하고 느긋해 보인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털모자 가게 주인. 나와 손짓 발짓으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천성이 친절하고 느긋해 보인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 최성수
그러더니, 발음하기 힘든 위구르어로 "카슈카르 캣챗 두바츠"라고 말하며, 수첩에 위구르 글자로 써준다. 발음조차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꼬불꼬불 쓴 그 글자를 내가 알 턱이 없다.

수첩에 한자로 '狐(호)?'라고 써서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는데, 정말 알고 그러는 것인지, 그냥 대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정말 없는 게 없다. 위구르 전통 악기를 마구 두드리고 불어대며 손님을 끄는 사람도 있고, 그냥 싱긋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상인도 있다. 어떤 가게에는 온갖 약재들을 말려 파는데, 자세히 보니 그 중 한 무더기는 뱀을 말린 것이다.

두어 바퀴 돌다 그만 더위에 지쳐 시장 입구 음료수를 파는 노점에 앉아 과일 주스만 몇 잔 마신다. 앞에 앉아있던 위구르 노인 부부가 우리 가족을 흘낏 바라보며 무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눈치로 우리를 일본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얼른 중국어로 "우리는 한국사람"이라고 하자 반색을 한다. 이곳에도 한류 바람이 있고, 우리나라 휴대폰을 가지는 것이 자랑이라고, 안내를 하던 회족 아가씨가 설명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상당히 우호적인 표정이다.

오후,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손수레를 밀고 장터로 나온다. 낮 장사는 이제 가게를 접을 시간인가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햇살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가 일어선 자리에 다시 햇살이 내리 쬔다. 카슈카르, 옛 소륵국의 땅을 찾은 아득한 과거의 나그네에게 나누는 인사처럼 국제 대 바자르는 내게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다.

노성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노성을 내려다본 모습. 집들이 마치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햇볕 속에 스러지고 있다.
노성을 내려다본 모습. 집들이 마치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햇볕 속에 스러지고 있다. ⓒ 최성수
늦은 시간, 카슈카르의 이슬람 마을인 노성을 찾아간다. 삼백 년이 넘게 되었다는 노성은 보존된 성이 아니라 그냥 민가 마을이다. 위구르인의 전통 민속 마을이라고나 할까.

좁디좁은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는 노성은 많은 집들이 이미 무너지고 있다. 마치 사막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모래 빛깔의 노성에서는 만나는 모든 것들이 다 푸근하다.

입구에서 골목을 하나 돌아서니 먼지 덕지덕지한 구멍가게가 있다. 아이들 몇이 가게 앞에 매달려 음료수를 구경하다 우리 일행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포즈를 취해주고는 얼른 달려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웃음을 보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있던 작은 가게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몇몇 인가에 들어가 사는 모습을 살펴본다. 살 만한 집도 있고, 가난이 집안 구석구석에 매달려 있는 집도 있다. 살 만하다고 해도 내 눈에는 별반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저 집이 좀 넓거나 가구들이 조금 더 있는 정도일 뿐이다.

노성의 위 층, 칸막이된 울 안에 양과 닭들이 살고 있다.
노성의 위 층, 칸막이된 울 안에 양과 닭들이 살고 있다. ⓒ 최성수
한 집에 들어가니, 마당 귀퉁이 작은 거실 겸 방을 꾸며 놓은 곳에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 있다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어 주신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니까 손자들까지 불러 자세를 잡아 준다.

어떤 집에는 일층이 살림집이고, 옥상을 겸한 위층으로 올라가니 짐승들이 여러 마리 있다. 양도 있고 닭도 있다. 사람과 짐승이 어울려 이웃처럼 살아가는 곳이다.

그저 이웃집 마실가듯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노성 옛 마을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당나귀 마차가 한 대 골목을 지나간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역시 익숙하게 포즈를 취해준다.

사진을 찍자고 하자, 손자들까지 불러 포즈를 취해주는 노성 민가의 할아버지.
사진을 찍자고 하자, 손자들까지 불러 포즈를 취해주는 노성 민가의 할아버지. ⓒ 최성수
노성 골목길의 당나귀 수레. 오래 된 시간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풍경.
노성 골목길의 당나귀 수레. 오래 된 시간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풍경. ⓒ 최성수
곳곳에 낡고 버려진 집들이 모래 언덕처럼 놓여 있고, 어떤 집은 이미 다 무너져 흔적만 남아있는 노성 옛 마을, 골목 아무데서나 마주치는 아이들도 다 어린 시절의 이웃 동무들 같은 노성 골목길은 추억을 향해 떠나는 길 같다.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내가 살았던 산동네 좁디좁은 골목길을 이 먼 서역 땅에 와 떠올리다니!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추억 속에서 사는 존재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 나오는 노성 하늘 위로 낮게 구름이 퍼져 있다. 몸 둘 곳을 모르게 쏟아지던 햇볕도 좀 수굿해 지는 것 같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다 푸근한 저녁이 있는 법이라며, 돌아본 노성에는 저녁 짓는 연기와 달그락거리며 그릇 씻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마을을 그리워하는 나의 착시, 혹은 환청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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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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