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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자유무역협정) 3차 본협상을 맞아 4일째 미국 시애틀에서 원정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미FTA 반대 원정투쟁단'은 8일(미국 현지시각)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왜 절을 하며 걷는가." (기자)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걷는다." (에니카 웨이랜드)


삼보일배 도중 에니카 웨이랜드(23)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한 시애틀의 가을. 그늘에 앉아 있으면 바닷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웨이랜드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두 손이 땅에 닿고 머리가 숙여질 때마다 아스팔트 위로 가을 땀방울이 흩뿌려졌다. 그는 특정단체에 속하지 않은 '순수한' 시애틀 시민이다. 이런 웨이랜드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무얼까?

한미FTA(자유무역협정) 3차 본협상을 맞아 나흘째 미국 시애틀에서 원정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미FTA 반대 원정투쟁단'은 8일(미국 현지시각)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삼보일배는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협상중지 신념으로 삼보일배 나서자"

▲ 삼보일배 행진에 앞서 원정투쟁단이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 한 교포가 두손을 가지런히 땅에 놓은 채 절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출발에 앞서 "한국에 있는 노동자, 농민들이 우리만 믿고 있다"며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가슴에 안고 협상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삼보일배를 하자"고 말했다.

한국에서 건너간 60여 명의 원정투쟁단 외에 재미위원회 소속 회원과 외국인들을 포함해 100여 명이 삼보일배에 참여했다. 강 의원과 정광훈 원정투쟁단장이 맨 앞줄에 서서 이끌었다.

정광훈 원정투쟁단장은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비폭력의 폭력을 쓸 것이다"며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마피아를 향한 증오의 마음을 품고 걸어나가자"고 말했다.

꽹과리와 징 소리에 맞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들 모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앞으로 향했다. 웨이랜드처럼 마음 속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안고서 걷고 또 걸었을 터.

"다운! 다운! 에프티에이!"

꽹과리 소리에 맞춰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을 하는 동안에도 한미FTA를 반대하는 구호는 계속 이어졌다. 삼보일배는 3차 협상장소인 컨벤션 센터에서부터 웨스트레이크 플라자를 돌아 다시 출발지로 오는 길을 따라 이뤄졌다. 총 1.5킬로미터의 거리다. 현지 경찰이 삼보일배 행렬의 앞과 옆을 따라 움직이며 교통통제를 했다.

행렬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원정투쟁단에 지지와 연대를 보여준 외국인과 교포들. 그들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시애틀 시민들 "삼보일배 뜻 꼭 이뤄지길"

▲ 원정투쟁단에 지지와 연대를 보여준 외국인과 교포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맨 왼쪽이 "절실한 것이 있어 걷는다"고 말한 에니카 웨이랜드 씨.
ⓒ 오마이뉴스 김연기

시애틀 노동법률상담소장인 매스 슈미트는 "처음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힘이 든다"며 "이런 고통과 노력들이 꼭 성과로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워싱턴 D.C에서 처음 해보고 이번이 두번째라는 재미위원회 소속 림율산씨는 "무릎이 몇 달 새 더 강해졌는지 지난번보다 덜 힘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시애틀 시민들의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차선 하나를 따라 걷다보니 불가피하게 곳곳에서 교통정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경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몇몇 시민들은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다.

시애틀 중심가 쉐라톤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이미 고든은 "FTA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위를 보니 그들의 뜻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삼보일배 행렬을 옆에서 지켜보는 시애틀 시민들의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몇몇 시민들은 카메라로 삼보일배 행렬을 촬영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 이날 삼보일배 행렬은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과격시위에 대한 인상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지난 6일 미국 노동단체와 함께 벌인 대규모 거리시위 때보다 현지 시민들의 관심은 더 높았다. 삼보일배를 따라나선 미주지역 통일전문 언론매체 <민족통신>의 김영희 편집위원은 "절차와 합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에게는 과격한 시위보다 이 같은 질서정연한 시위가 그 뜻을 전달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교민들 "과격시위 우려 불식시켰다"

현지 교민들의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삼보일배 행렬을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지켜본 김기현 시애틀-워싱톤주 한인회 회장은 "한미FTA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위는 처음 봤다"며 "꼭 이분들의 뜻이 (협상단에)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원정투쟁단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인 지난 4일 원정투쟁단에게 평화시위를 당부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김씨는 "이번 원정투쟁단의 활동을 보면서 과격시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이곳 경찰들도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시위대는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에 출발한 삼보일배 행렬은 오후 4시가 넘어서 출발지인 컨벤션 센터로 돌아왔다. 이들은 3차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컨벤션 센터를 에워싼 채 마지막 남아 있는 온 힘을 다해 FTA 반대 구호를 외쳤다.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걷고 또 걸었다는 그들. 그들의 뜻이 이뤄질 수 있을까.

▲ 한 외국인이 "이경해(2003년 WTO 회의 당시 할복자살)는 아직 잊혀지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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