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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 구은희
하늘을 보고 사는 것이 힘든 나이가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였던 시인의 말이 이해되어지는 그 연륜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생긴 것일까?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기가 겁난다. 아니,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나에게 없어졌다. 지친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다보니 자연히 고개가 숙여져 어두운 땅을 보고 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구름이 있는 하늘
구름이 있는 하늘 ⓒ 구은희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하늘 보기를 좋아하였다. 청명한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파란 물이 나에게도 스며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고,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엄마 품속 같은 따스함을 느끼곤 했다.

석양의 하늘
석양의 하늘 ⓒ 이유리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듯한 붉은 저녁노을이 있는 초저녁 하늘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고, 초승달과 어우러져 쓸쓸히 빛나고 있는 샛별이 반짝이는 저녁 하늘 역시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노을이 있는 하늘
노을이 있는 하늘 ⓒ 구은희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갑자기 나타난 많은 별들이 수놓는 까만 밤하늘도 내가 좋아하는 하늘이다. 그러기에 3층이었던 우리집의 그 많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별빛이 아름다운 그 밤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좋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은 비 온 후 맑게 갠 상큼한 하늘이다. 그 하늘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게 느껴진다.

우뚝 솟은 건물들도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난 듯, 정갈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웃음조차 맑고 싱그럽게 보인다. 이런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땅의 찌든 것들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된다. 비갠 뒤의 상큼한 하늘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인 것이다.

유학 초기 시절,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하늘에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들의 이름을 커다랗게 써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늘에서 그들을 만나다보면, 마치 그들을 정말로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그 순간은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는,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을 지금 그 사람도 보고 있겠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행복해 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세뇌하곤 했었다. 그 시절, 하늘은 나의 유일한 벗이었던 것이었다.

인간이 가장 신성(神聖)시하고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그 대상을 ‘하느님’이라는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만 보아도, 하늘이라는 존재가 인간들에게 얼마나 거대하고 두려운 존재였던 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하늘은 나의 모든 꿈을 그려볼 수 있는 백지와 같은 존재이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들을 하늘에 그려보면 하늘은 아무런 불평 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투영해 내는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빙그레 지어보는 미소 속에 오늘의 어두운 기억들을 묻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살 때는 나의 마음에 맑은 하늘로 가득 차게 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행복에 겨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늘어진 어깨를 간신히 끌면서 걸어갈 때에는 세상 온갖 시름을 나 혼자 지고 가는 양, 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다른 사람과 맺힌 관계가 있거나,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 있을 때에는 하늘보기가 겁이 나는 법이다. 이제 나를 미워하고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늘에 쓰고 그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 싶다.

찌푸렸던 하늘이 비갠 뒤의 상큼한 하늘로 바뀌듯이, 흐리고 탁해진 나의 마음도 파란 하늘에 정화되어지길 바란다. 폭우가 지난 뒤 나타난 비갠 뒤의 상큼함을 호흡하면서 하늘을 떳떳이 바라보며 살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코리아나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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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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