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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교육부총리 내정자. 청와대가 평소 사학의 자율성을 강조해왔던 그를 낙점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신일 교육부총리 내정자. 청와대가 평소 사학의 자율성을 강조해왔던 그를 낙점한 이유는 무엇일까. ⓒ 연합뉴스
가을 정기국회가 개회됐다. 쟁점이 많다. 사행성 성인오락,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한미FTA 협상 등 굵직한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사학법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맨 앞에 놔야 할 현안이다.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을 환기하자 "민생 법안을 제외한 다른 법안들과 연계해 정기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의 최대 쟁점이었으니까 1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하며 의안 처리의 최대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고 나면 새 일이 터지는 대한민국, 건망증 심하기로 소문 난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를 봐서는 기이할 정도로 끈질기게 살아 꿈틀거린다.

한나라당의 태도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바뀐 게 없는 한나라당 입장을 되짚는 건 '논란 재탕'에 해당한다.

관심을 끄는 건 정부·여당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의 '평가'부터 듣자. "여당 내부에서 사학법 재개정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다. 열린우리당의 김혁규 의원은 사학법과 민생 법안의 '뉴딜' 필요성을 주장했고, 유재건·안영근 의원 등은 개정 사학법의 위헌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묘한 여당내 사학법 기류

열린우리당 만이 아니다. 청와대의 이병완 비서실장은 지난 달 23일 한명숙 총리,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와 만나 사학법의 유연한 처리를 부탁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입장은 아직 완강하다. 김한길 원내대표 등은 개방형 이사제를 절대 손댈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세상에 만고불변의 것은 없지만 현재 열린우리당이 사학법과 관련된 당론 변경을 시도할 처지에 있지 않다"면서도 "새로운 논의를 하려면 그것을 위한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새 조건이 형성되면 재개정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새 조건이란 게 뭘까? 민생과 개혁이다.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그리고 사법·국방 개혁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양보할 건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론을 제기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김형오 원내대표가 민생 법안은 연계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으니까 민생 탓은 하지 말라고 지적할 수 있다. '미결'의 개혁 법안을 위해 '기결'의 개혁 법안을 내주는 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것이라고 충고할 수도 있다. 사법 개혁안은 관련 이익집단의 집요한 저항이, 국방개혁안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에 사학법을 양보한다 해도 처리를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귀 담아 들을 것 같지 않다. 정부나 여당 모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정부는 원활한 국정 마무리를 위해, 열린우리당은 능력 있는 여당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쫓기는 사람이 담을 넘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정부나 여당 모두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원칙이 아니라 현실, 명분이 아니라 실리를 좇아 베팅을 하기 십상이다. 그 예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부총리 후보로 김신일 서울대 교수를 내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오늘(4일), 김신일 후보자가 참여정부 교육정책과는 코드가 다른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는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인한 교육의 경직된 획일성과 교육 투자정책의 실패로 인한 교육 여건의 빈곤"이며 "(교육당국이)사립학교와 대학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공립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는 진정한 사학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김신일 후보자의 교육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 소신을 정책에 담아야 한다"(중앙일보)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김신일 후보자 내정은 참여정부 교육정책 방향과 모순된다. 그토록 코드를 강조했던 인사 철학과도 배치된다. 하지만 사학법의 유연한 처리 입장과는 조응한다.

중간 결론이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사학법에 대해서 만큼은 처리 방향도, 코드도 맞는다. 그래서 낙점한 것 같다. 그런데 또 그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달 29일,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3부요인 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을, 관계없는 다른 법안과 연계시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기 바란다." 한나라당의 사학법 연계 입장을 비판한 발언이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청와대의 한계

정말 헷갈린다. 열린우리당에겐 사학법의 유연한 처리를 주문하면서, 한나라당엔 사학법 연계 입장을 거두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엔 그런 요구를 하면서도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사학의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을 교육부 수장에 앉혔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아니 장단이 있기나 한 것인가?

좋게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대통령을 대신해 열린우리당에 사학법의 유연한 처리를 당부한 이병완 비서실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한나라당도 이해가 안 된다… 수권정당의 자세나 원칙으로 보면 입법문제에 대해서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김신일 후보자 내정 사실을 발표한 청와대는 서른 명이 넘는 후보들에게 의사를 타진하고 검증을 했지만 선택의 폭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예뻐서, 김신일 후보자가 좋아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들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강조한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청와대의 처사를 이해 못할 것 없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현실적 한계를 돌파할 수 없는 참여정부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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