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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가든>
<파라다이스 가든> ⓒ 민음사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은 재벌기업의 총수 일가와 그 기업의 한 말단 직원의 2파전 양상으로 펼쳐진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재벌가문의 장자와, 가문 내부의 권력다툼 한 귀퉁이에서 악역을 맡아야 했던 한 말단직원.

이 직원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도 언제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꾼다. 일간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언제나 문학을 꿈꾸었을 작가의 모습이 살짝 겹쳐진다. 그는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15년을 근무하며 이 소설을 조금씩 조금씩 써오다가 올해초 사표를 던지고 전격적으로 소설쓰기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회장 부인이 애지중지하던 개의 시체를 그녀의 집 마당에 몰래 갖다놓으려다 발각된 성림건설 말단직원 김범오의 인생은 그때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룹 내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한 것. 잠깐 도피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알아온 수목원에 내려간 그는 평소 그리워하던 자연 속에 파묻혀,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파묻혀 진정한 휴가를 누린다.

어느날 무법으로 희귀동물의 사냥을 자행하는 이들에 의해 수목원의 평화가 깨어지고, 김범오는 그들이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과 그 협력업체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윤창출을 위해 생태계를 거침없이 파괴하는 회사에 몸담았던 직원이 결국 그 기업의 작업에 가장 큰 걸림돌로 돌변한다는 설정은 자본주의에 대한 작가의 직설적인 경고와도 같다.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권력층으로 자리잡은 '기자'라는 기득권을 과감하게 벗어 던진 작가가 소설쓰기 방식에 있어서도 정면승부를 택한 셈이다.

이야기를 이루는 커다란 두 축, 김범오와 재벌그룹 형제 이야기 외에 '무릉도원'에 얽힌 이야기도 소설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곤 하던 중국 고사가 자연으로 회귀하여 생태적인 삶을 살기로 한 김범오와 어우러지는 모습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구축하고자 했던 이상향의 절정이다.

'이상'에 관해 그렸다는 점, 그리고 작가의 철학이 강렬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많은 부분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연상케 한다. 이상향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면 작가의 철학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면에서도 흡사하다.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가장 최전선에서 맞닥뜨렸을 기자였던 작가가 남몰래 품고 다녔던 생태적인 삶이 등장인물을 통해 원없이 펼쳐진다. 작가가 꿈꾸었던 '파라다이스 가든'이 살벌한 자본의 세계에서 결국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 지켜보는 것은 독자가 직접 읽으면서 맛보아야 할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업이다.

책을 읽고 나면 서두를 장식했던 모호한 프롤로그를 다시 넘겨보게 된다. 그리고 무릎을 치게 된다. 아, 그런 의미였구나. 우리는 그렇게 윤회하고 있구나. 순간 아련히 떠오르는 태초의 기억.

혹시 역순의 기억 맨 마지막에 남아 있던 신생아 시절 최초의 체험은 아닐까? 그게 맞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통로는 캄캄한 자궁에서 웅크리고 있던 태아가 생애 처음 미끄러져 나온 어머니 몸속의 산도라고. 그 거대한 손은 산도 끝으로 고개를 내민 아기가 감긴 눈꺼풀에 와 닿는 느낌으로만 파악했던 의사나 산파의 손이라고. 그리고 신생아는 산모의 몸속에선 결코 보지 못했던 환하게 열린 공간, 그 순백의 뜰을 감지했던 것이라고. 세상의 진흙탕에서 한평생을 보낸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다할 때, 그 아름답고 신기루 같던 빛의 비경을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것이라고. -<파라다이스 가든> 프롤로그 중에서.

파라다이스 가든 1 - 2006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기태 지음, 민음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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