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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 후 길제를 지내기 위해 도포차림으로 부모님 묘소앞에 선 유범수씨
탈상 후 길제를 지내기 위해 도포차림으로 부모님 묘소앞에 선 유범수씨 ⓒ 안서순
독축을 하는 유범수씨
독축을 하는 유범수씨 ⓒ 안서순
"아버님, 어머님 이 지팡이에 의지하셔서 편히 다니십시오."

지난 5월, 4년 동안의 시묘살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유범수씨(52·인천시 계양구)가 산을 내려간 지 100일 만인 29일, 다시 돌아와 부모님 산소 앞에 섰다.길제(吉祭.부모상을 탈상한지 두달만에 지내는 담제(禫祭)다음에 지내는제사)를 지내기위해서다.

갓에 도포를 차려입은 입은 단아한 유씨의 모습, 마치 조선시대 선비차림새인 듯하다. 길제에는 상복 대신 평상복을 입고 지내는 유가(儒家)의 가례에 따른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이 탈상을 했다고 변한다면 그게 무슨 효인가요, 효는 평생 한결같은 마음의 발현이지유."

유씨는 차림새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속까지도 고색창연한 꼿꼿한 이조인(李朝人)이었다. 그가 4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던 여막(廬幕)은 이미 헐렸고 그 터엔 싸리, 억새 등이 키를 키울 대로 키워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불과 석 달 남짓 지나는 동안 산천은 그렇게 변했는데 유씨의 효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한결같다. 제사는 유씨의 아버지가 생전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산소에 바치는 것으로 마쳐졌다. 제사를 마친 유씨는 막대기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등을 살아계신 부모님의 등을 긁어드리듯 천천히 이곳저곳을 긁었다.

"아버지, 어머니 시원허시라구 허는 일이지유."

부모님 묘소에 절을 하는 유범수씨
부모님 묘소에 절을 하는 유범수씨 ⓒ 안서순
유범수씨가 제사 후 막대기로 부모님 묘소의 이곳저곳을  긁고 있다.
유범수씨가 제사 후 막대기로 부모님 묘소의 이곳저곳을 긁고 있다. ⓒ 안서순
유씨는 타고난 효자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기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평을 하고 있다. 하나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거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게다가 가정을 책임질 가장으로써 무책임한 행위'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록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나 부모님께 대한 효는 시대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 다'는 의견이다.

김현구 전 서산시문화원장은 "이 시대에 누가 4년 동안 산속 묘소 옆에 초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조석상식(朝夕常食)을 올리고 눈이오나 비가 오나 묘에 나가 곡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근신하며 생활하느냐"며 "누구도 쉽게 따라하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종수 춘천박물관 관장은 "담제 다음에 지내는 길제는 이제 문헌상으로만 존재할 뿐 이를 직접 행하는 일은 희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던 유씨는 한결같이 초연하다.
"자식이 효를 행한다 한들 받은 은혜에 비하면 천분지, 만분지일에도 못 미치는데 남이 뭐라고 한다고 그 눈치를 본대서야 올바른 효가 된대유?"

그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기인이 아니었다. 다만 효를 행하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방방곡곡에 효 사상이 제대로 설 때 비로소 살기 좋은 강산이 저절로 만들어 질 것입니다, 효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바른길을 가는 것이거든요."

유씨는 효를 '종교위에 선 철학이며 생활의 규범'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5월 탈상 이후 유씨는 인천 집에서 충남 서천군의 월기문화원을 오가며 '효'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유씨는 "효 사상을 이 땅에 다시 세워 세계의 효를 전파하는 '신 동방예의지국을 만드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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