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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의 모습입니다. 잘 만들었죠?
책꽂이의 모습입니다. 잘 만들었죠? ⓒ 남희원
지금 아빠와 동생은 열심히 제 새 책꽂이를 맞추고 있는 중입니다. 늘어난 문제집이나 공책 등을 둘 곳이 없다고 이래저래 불평하던 저를 위해 엄마와 아빠는 대형 할인매장에서 조립식으로 된 책꽂이 하나를 사오셨습니다.

책꽂이를 싸고 있는 박스의 테이프를 서둘러 뜯어보니 넓적한 판(뒤판) 하나와 뒤판보다 폭이 좁고 기다란 판 2개(옆판), 그리고 조그마한 정사각형 모양의 판 2개(가운데판)와 나사가 든 조그만 봉지가 나왔습니다.

조금 있다가 밥 먹고 풀어보라던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꽂이를 풀어 놓은 저 때문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저녁상도 외면한 채 책꽂이와 결투(?)를 시작한 아빠 옆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이 냉큼 눌러앉았습니다. 방해된다며 저리 가라시던 아빠도 잠시 후 다른 말없이 조립을 시작하셨습니다.

평소 산만하고 촐랑거리던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게 아빠 옆에 앉아 조립되는 책꽂이에 눈을 맞추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나름대로 귀엽기도 합니다. 잠시 후 나사를 집어든 동생은 드라이버도 없이 무턱대고 나사를 구멍에 눌러넣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가 없던 제가 한마디 하니, 일자 드라이버를 집어 들고 진지하게 돌립니다.

"다 조립되어 있는 걸 사올걸 그랬나 봐, 괜히 조립 안돼 있는 걸로 사와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네."

땀으로 흠뻑 젖은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여셨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서로서로 판을 잡아주며 책꽂이를 만드는 사이좋은 부자(?)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나 봅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동생이 서툴기만 하지 잘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아빠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럭저럭 잘 해내는 동생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책꽂이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뒤판의 앞뒤가 바뀌었다는 것을 배제하면 기계로 만들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럭저럭 훌륭한 책꽂이가 됐습니다. 특히 나사 하나하나에 기계의 쇠 비린내가 아닌 아빠와 동생의 땀이 배어 있다고 생각하니 더 맘에 들고 뿌듯했습니다.

직접 무거운 책꽂이를 들고 걸어가서 이곳저곳 감상(?)해봅니다.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분명히 여기저기 서툰 자국은 있지만 서툴러서 더욱 맘에 드는 책꽂이입니다.

나사를 꽂는 데 사용한 드라이버들입니다
나사를 꽂는 데 사용한 드라이버들입니다 ⓒ 남희원
회사 일로 바쁘신 아빠, 개학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방학숙제 한다고 허둥대던 동생이 잠시나마 그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행복했습니다. 갈 곳이 없어 책상 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책 더미를 정리해 꽂고 나름대로 남는 잡동사니들을 맨 밑의 서랍에 넣고 나니 그럭저럭 모양새가 납니다.

단순한 책꽂이의 존재감뿐만 아니라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위에 드라이버를 돌리던 두 부자의 정성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책꽂이의 위치를 놓고 이래저래 약간의 실랑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책꽂이가 어딘가에 놓여질 것이란 사실만은 변함 없습니다.

"너 이렇게 조립하고 나사 끼우는 거 배워두면 나중에 꽤 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도 이렇게 해야 해."

아빠께 조금씩 기술(?)을 배워가고 있는 동생도 나중엔 꼭 아빠처럼 솜씨 있게 책꽂이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만능 맥가이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다른 누군가가 제 동생이 만든 것을 가지고 행복한 미소를 짓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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