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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사실 원래 가려고 한 곳은 대관령이 아니었다. 원래는 진부에서 내려 점봉산 쪽으로 내려간 뒤 이끼계곡을 찾아 멋진 사진을 찍고, 하룻밤을 그곳의 민박집에서 묵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음악으로 귀를 꼭꼭 막아버린 탓에 진부에서 내리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진부 다음의 횡계에서 내려야 했다.

26일 토요일 내가 탄 진부행 버스는 오후 3시 25분차였다. 진부는 한번 간 적이 있었다. 난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버스는 그냥 계속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터미널을 옮겼나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진부를 빠져나가 버린다. 운전수는 그냥 방송으로만 "진부 내리실 분 나오세요"라고 했다고 했다. 음악으로 귀를 막은 나는 그 소리를 전혀 듣질 못했다.

결국 나는 횡계에서 내렸다. 횡계에서 내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대관령 옛길'이란 표지판이었다. 그 표지판을 보는 순간 그때부터 그 길이 나의 행선지가 되어 버렸다. 터덜터덜 걷다보니 양떼목장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양떼는 없고 소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 하늘은 저녁 빛이 완연했다. 시간은 저녁 6시 50분이었다.

ⓒ 김동원
소는 항상 한가롭다. 어릴 적 기억을 들추어보면 소는 밭을 맬 때도 걸음이 한가했다. 그래도 밭을 매지 못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표정도 역시 한가롭다. 소가 날보고 그러는 것 같다.

'이 저녁에 대관령을 넘는다고? 무슨 일이길래. 어쨌거나 밤이라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

그러고마고 했지만 내 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 김동원
저녁인가 싶었는데 금방 어둠이 밀려들었다. 멀리 나무 한 그루가 어둠을 뒤집어 쓴 채 푸른 하늘빛을 호흡하고 있었다.

ⓒ 김동원
'대관령 휴게소 쉼터'란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1500원 짜리 컵라면.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저씨가 내 몰골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내에게 밥 좀 내오라고 했다. 덕분에 고프던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

아저씨가 뒤쪽으로 갔다가 오시더니 반딧불이 본 적이 있냐고 했다. 먹던 컵라면을 들고 뒤로 가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구경했다. 아저씨도 10년 만에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대관령 옛길을 가는 동안 어둠 속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짝짓기할 때 불빛을 낸다고 했다. 사랑하면 빛이 나는 셈이다.

ⓒ 김동원
쉼터의 아저씨가 지름길을 일러주었지만 캄캄한 어둠 속의 초행길인지라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내가 가는 길의 표지엔 계속 '선자령'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 길목에 있는 대관령 기상대의 문을 두드려 이리로 가면 대관령 옛길로 가는 게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들었는데 직접 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강릉 쪽으로 가야하는데 자꾸만 '평창의 자랑 선자령'이라는 글귀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중간에서 등산지도를 만나게 되었다.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갔더라면 1시간은 줄일 수 있는 거리를 빙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중간에 등산지도를 본 게 다행이었다.

그곳에서 반정으로 내려가는 샛길을 찾아 그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칠흑의 숲속 길을 걸어 한참을 내려오자 대관령 옛길이란 표지가 있었다. 쉼터를 떠나서 1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었지만 어둠 속이라 그런지 한 3시간은 걸은 느낌이었다.

ⓒ 김동원
내가 가는 옛길에는 인적하나 없는데 멀리 새로 난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 길에는 불빛이 환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내 안의 분을 삭이지 못해 떠난 여행이었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분이 된다. 상대방이 미안하다는 사과로 말의 잘못을 거두어들이려 애써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냥 내가 들었던 처음의 그 말만 머릿속을 뱅뱅 돌며 분을 증식시킨다. 그 때문에 나는 그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오후라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되는대로 서울을 떠났고, 어쩌다 한밤의 대관령 옛길을 가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 때는 어두운 숲길을 가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분노 때문에 귀신이라도 눈앞에 나타나면 놀라기는커녕 흠씬 두들겨 패줄 심사가 된다. 나는 그렇게 어둠 속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어두운 산길을 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캄캄한 어둠 뿐. 갑자기 어둠이 내게 말한다. '분노란 어둠과 비슷한 거야. 그 속에 갇히면 아무 것도 보이질 않지. 그러니 네 분노는 오늘 밤 이 어둠 속에 내려놓고 가. 어둠에 붙들려 있으면 넌 길을 갈 수가 없어.' 난 어둠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 김동원
사방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고, 또 손전등의 전지를 아껴야 했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친구 삼아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주막을 가리키는 반가운 표지가 있었지만 주막터였을 뿐 실제로 주막은 없었다.

가끔씩 바람이 나무를 쓸고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나무를 흔들면 그 소리는 마치 계곡의 물소리 같았다. 그 때문에 나는 바람이 나무를 쓸고 지나갈 때마다 마치 물속으로 잠긴 듯, 그래서 숨이 막힌 듯 잠깐씩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 김동원
그 어둔 밤에 드디어 대관령 옛길을 따라 고개를 넘었다. 길의 입구에 있는 '대관령 박물관'이 나를 반겨주었다. 시간은 밤 11시였다. 횡계에서부터 걸었으니 4시간 정도 걸은 셈이었다. 숙소를 찾아 내려가다 누군가 낮에 옥수수와 감자를 팔기 위해 마련해놓은 간이 판매대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2시간 동안을 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곁에선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다 보니 겉을 맴돌던 쌀쌀한 바람기가 살갗의 밑을 파고들었다.

ⓒ 김동원
조금을 걸어 나가 모텔을 하나 찾아냈다. 모텔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제의 밤길을 거꾸로 가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산길의 입구에서 어제 물소리로만 듣던 계곡을 잠시 눈에 담았다.

하지만 결국 횡계로 가는 걸음은 중간에서 접어야 했다. 왼쪽 발로 자꾸 모래 알갱이를 밟는 느낌이 들어 신발을 벗어보았더니 발바닥과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결국 다시 길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나간 뒤 동서울로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김동원
물집 생긴 발바닥. 10시간을 걷고도 물집이 생긴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5시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발에 물집이 생겼다. 치밀었던 울화의 흔적 같았다(사실은 등산 양말을 안신어서 그런 거 같다). 걸을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그러나 분노를 어둠 속에 던져버리고 난 뒤끝이라 마음이 평온해졌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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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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