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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고추가 독이 올라서 제법 맵습니다. 아이들이랑 먹을거면 고추는 조금만 넣어 주세요.
가을이라 고추가 독이 올라서 제법 맵습니다. 아이들이랑 먹을거면 고추는 조금만 넣어 주세요. ⓒ 이승숙
토종닭을 두 마리 사왔다. 남편이 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미리 닭을 사와서 살짝 얼려두었다가 살을 바르면 쉬운데 사오자마자 바로 하려니까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거 살짝 얼렸다가 하면 쉬운데, 바로 하니까 잘 안 되네. 뼈에 고기가 그대로 다 묻어 있네."
"닭뼈 고아서 먹을 건데 뼈에 고기 좀 붙어 있으면 뭐 어때. 괜찮아 여보. 당신 잘만 하는데 뭐."
"시골 아버지는 살을 참 잘 바르셨는데... 닭불고기는 역시 시골에서 먹는 맛이 최곤 거 같애."

남편은 닭불고기를 잘 해주시던 아버님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우리 아버님은 무슨 행사가 있어 자식들이 다 모일 때면 육계를 제일 큰 놈으로 두어 마리 사 오신다. 그리고는 손수 살을 다 발라서 양념해서 재워둔다. 그랬다가 아들네가 오면 숯불을 피우고 닭불고기 잔치를 연다.

마당에 전을 펼치고 둘러앉아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구워먹는 닭불고기는 우리집만의 별식이다. 그런 날엔 며느리들에게도 술잔을 돌린다. 그러면 며느리들은 사양치 않고 술을 받으며, "아버님, 저 취하면 저녁 못 해요"하며 밉지 않은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어머님이 "야야, 저녁 내가 다 하꾸마. 마이 묵어라"고 하시며 연신 고깃점들을 손자들 입에 넣어 주신다.

아끼지 말고 마늘을 듬뿍 넣으세요. 마늘을 많이 넣어야 맛이 좋습니다.
아끼지 말고 마늘을 듬뿍 넣으세요. 마늘을 많이 넣어야 맛이 좋습니다. ⓒ 이승숙
다 발라낸 살에 마늘과 소금 그리고 참기름을 넣고 잘 주물러 주었다. 마늘을 많이 넣어야 제 맛이 난다며 남편은 찧어놓은 마늘을 밥숟가락으로 세 숟가락이나 푹푹 떠서 넣었다.

"당신도 참, 고향이 마늘 고장 아니랄까봐 마늘 되게 좋아하네. 우리집만큼 마늘 많이 먹는 집도 드물 거야? 아버님이 주시니까 마음대로 먹지 돈 주고 사먹으면 이렇게 푹푹 못 넣겠지?"
"의성 출신 내 친구들이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건 다 마늘 덕분이야. 우리 어렸을 때는 마늘을 불에 구워서도 많이 먹었어."

남편은 신이 나는지 내친 김에 양파랑 고추 같은 야채까지 썰고 다지기 시작한다. 그 옆에서 나는 살을 다 발라낸 닭뼈와 인삼, 마늘을 압력솥에 넣고 가스불 위에 얹었다. 푹 고아서 닭죽을 해먹든지 아니면 닭개장을 하면 닭불고기 먹은 다음 코스로 아주 훌륭하기 때문이다.

마늘을 넣고 밑간해 둔 고기에 다른 야채들을 듬성듬성 썰어서 넣습니다.
마늘을 넣고 밑간해 둔 고기에 다른 야채들을 듬성듬성 썰어서 넣습니다. ⓒ 이승숙
남편과 승민이 아빠는 서로의 마음을 잘 읽는 거 같았다. 승민이 아빠가 생각나서 남편이 전화를 하면 그 쪽 전화가 통화 중일 때가 가끔씩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 쪽에서도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어서 서로 통화 중으로 나오는 거였다. "야, 그 참 히한하네. 나도 니 생각나서 전화 걸었는데 니도 내한테 전화했네." 그러면서 둘은 신기하다고 그런다.

매운 고추와 양파를 썰어서 그런지 재채기가 나왔다.

"여보, 양념장 만들게 간장이랑 매실효소 좀 줘 봐."
"어머니는 간장으로 양념 안하고 소금으로만 하던데 당신은 간장으로 양념하게?"
"진간장을 조금 넣고 매실 효소로 단맛을 보충하면 더 맛있을 거야."

그러면서 남편은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진간장에다 단맛을 내기 위하여 매실 효소를 넣고 그리고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잘 저어준 다음 밑간해놓았던 고기에 붓고 양념이 잘 섞이도록 잘 주물러 주었다. 손아귀 힘이 센 남편이 섞어주자 금방 고기에 간이 배었다.

고추장 양념을 넣어서 버무려 줍니다. 마늘과 소금, 참기름으로만 간을 해서 구워 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고추장 양념을 넣어서 버무려 줍니다. 마늘과 소금, 참기름으로만 간을 해서 구워 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 이승숙
고기를 재워놓고 기다리고 있자니 승민이 아빠가 왔다.

"왜 혼자 왔어요? 애들은요?"

방학이 끝나는 때라서 애들과 마누라는 못 왔단다. 혼자 와서 붉은 고추 다 따고 상추랑 오이, 가지 같은 야채들 좀 솎아서 챙겨놓고 왔단다.

"그 새 고추가 많이 익었대요. 며칠만 안 와 봐도 밭이 확 달라요."

승민이 아빠는 농사짓는 재미에 빠져서 요즘 살맛이 난다고 했다.

"다 김 선생 덕이에요. 김 선생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포커나 치고 골프 배우러 다니고 그랬겠죠."

세무 회계사로 일하는 승민이 아빠는 그 전에는 사업차 포커도 많이 치고 술도 많이 마셨는데 지금은 그런 거보다는 농사일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두 부부가 휑하니 달려와서 밭작물들 커 가는 거 보다가 갈 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가 더 좋아져서 아내가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숯불에 석쇠를 얹고 구워 먹으면 맛이 더 좋습니다. 석쇠에 굽는 닭불고기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군침을 다 돋게 합니다.
숯불에 석쇠를 얹고 구워 먹으면 맛이 더 좋습니다. 석쇠에 굽는 닭불고기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군침을 다 돋게 합니다. ⓒ 이승숙
태풍의 끝자락이 지나가는지 바람이 좀 불었다. 그래서 야외용 가스불이 자꾸 펄럭거렸다. 아예 잔디밭에다가 신문지 한 장씩 깔고 펑퍼짐하게 앉아 버렸다. 의자에 앉아서 먹을 때보다 더 정겨웠다.

얼음을 둥둥 띄운 물 한 대접하고 승민이네 밭에서 따온 상추 조금 그리고 의성 시댁에서 가져온 마늘쪽이 다인 닭불고기 자리였지만 저녁 해가 질 때라서인지 분위기가 좋았다.

"이 때가 참 좋아. 한 번 봐봐. 햇살들이 그대로 다 살아 있잖아."

초록이 짙어가는 앞 들판은 남편 말대로 햇살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술 한잔 하지 않고도 주변 분위기에 취해갔다. 세상의 분진이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야, 그런데 니 우에 알았노? 오늘이 내 생일인데 니 알고 일부러 닭불고기 했나?"

알고 보니 그 날이 바로 승민이 아빠 생일이었다.

"아니 이상하게 니 생각이 나더라. 닭불고기 이거 의성 우리 고향 가면 자주 해먹는 거잖아. 이상하게 닭불고기 해서 너랑 묵고 싶더라."

그 날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승민이 아빠도 오랜만에 배부르도록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닭불고기 속에 고향이 녹아 있었고 우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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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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