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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소희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 커다란 연꽃 호수 위에 사람이 사는 곳. 그 이름은 달 호수다.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 때문에 인도에서 가장 위험한 스리나가르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달 호수에서의 하루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집 배 밖으로 나가면 물이었기 때문이다. 집 배 안에서 호수를 구경하거나 시카라(작은 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단순한 일들이 즐거웠다.

시카라를 타고 호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새벽엔 시카라들이 모여 이루는 시장에 갔다. 물 위의 시장은 물소리와 카슈미르어가 뒤섞여 푸른 새벽 속에서도 활기찼다. 양배추와 순무를 구경했다. 옷감을 가득 실은 배를 세워 무늬를 살펴봤다. 값비싼 염소 털로 짜여진 파슈미나를 이리 저리 걸쳐 보기도 했다.

ⓒ 왕소희
ⓒ 왕소희
꽃배도 지나갔다.
"이건 뭐예요? 저건요?"
작은 배를 가득 채운 예쁜 꽃들의 이름을 다 알고 싶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꽃 살 거야? 말 거야?"
꽃 할아버지는 귀찮게 구는 게 싫었는지 화를 내셨다. 제일 싼 붉은 꽃 두 송이를 샀다.

ⓒ 왕소희
집배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호수만 바라보고 있어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와서 낚시를 했다. 뭔가 잡혔는지 온 동네 매들이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어부들이 새를 쫓느라 배가 기우뚱거렸다.

ⓒ 왕소희
하늘엔 생크림 같은 구름이 몽글 몽글하고 호수 위엔 연꽃이 가득하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릴 만큼 넓다는 호수. 호수 뒷골목 구석구석엔 작은 마을들이 많았다.

ⓒ 왕소희
ⓒ 왕소희
ⓒ 왕소희
가는 길에 뱃사공이 연꽃을 건져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다. 뱃머리가 물살을 가를 때 침착한 물소리가 호수 위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밤이면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뱃머리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호수 위를 떠도는 밤바람 속에 앉아 있었다. 비가 오려는 듯 어둡고 촉촉한 밤. 눈을 감으면 모든 것들이 다가왔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바람, 물소리,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이국적인 이슬람 기도문, 보름달 빛.

'사랑을 하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하지?' 누군가 묻는다면 '스리나가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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