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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 달린 다래. 그러나 지금은 덜 익은 걸 다 따가서 없다 .
마을 어귀에 달린 다래. 그러나 지금은 덜 익은 걸 다 따가서 없다 . ⓒ 정판수
올봄 아내가 마을 할머니를 따라 나물 뜯으려 갔다가 올 때마다 자루가 꽉 차 있었다. 그런데 그 자루에 담긴 나물 중 가장 많은 게 다래순이 아닌가. 아내 말을 들어보니 산 속에 들어가자 온통 다래덩굴 천지라 했다. 그리고 지금 다래가 마을 곳곳에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왜 작년 가을 나는 보지 못했을까?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어제 저녁 이 마을에 놀러온 이들이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앞에서 차를 잠시 멈추었다. 자기들도 전원주택에 관심 있어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다 하며.

우리 집 바로 옆 야산에 매달린 머루. 얼마가 오래 달려있을지 걱정스럽다.
우리 집 바로 옆 야산에 매달린 머루. 얼마가 오래 달려있을지 걱정스럽다. ⓒ 정판수
다 구경하고 돌아갈 때 인사를 하다가 우연히 그들의 차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뒷좌석을 꽉 메운 게 다래덩굴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엔 덜 익은 다래가 달려 있었고. 왜 덜 익은 걸 따 갖고 가느냐 했더니, 내 말에 가시가 돋친 걸 눈치 챘는지 슬쩍 얼버무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그랬다. 다랫골에서 잘 익은 다래를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놀러온 이들이 채 익기도 전에 따가기 때문이다. 어디 다래뿐이랴, 이미 산딸기가 수난을 당했고, 좀 있으면 머루와 으름도 수난을 당할 것이다.

지난봄에는 등산복 차림의 배낭을 둘러맨 사람이 물 좀 얻어 마시러 올라오기에 배낭에 뭐가 들어 있느냐고 했더니 더덕을 캤다는 게 아닌가. 열어본 그 속에는 일이 년밖에 안 된 더덕 100여 뿌리가 들어 있었다.

마을 산 곳곳에 한참 익어가는 으름들. 다 익었을 때 따가야 할 텐데.
마을 산 곳곳에 한참 익어가는 으름들. 다 익었을 때 따가야 할 텐데. ⓒ 정판수
시골에 놀러 온 이들이 길가에, 혹은 산 속에 있는 야생의 열매를 따고 약초를 캐 가고픈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게 익었을 때는 문제 없으나 익기도 전에 따가는 건 심각하다. 갖고 가봐야 먹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에 괜히 나중에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훼방놓는 아주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 속이나 길가는 몰라도 집 안의 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최소한 주인의 양해 아래 따가야 한다. 만약 도시의 주택에 감이 열려 있으면 그 집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따갈 수 있을까? 또 주인이 그걸 봤을 때 가만 있을까?

작년 우리 집 감나무에 제법 큰 영지버섯이 달려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따야지 하는데 며칠 뒤에 보니까 없어졌다. 놀러 온 이가 따가는 걸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보고 야단치니까 총알 같이 차를 몰고 달아나더란 거였다.

올해 작년 남은 영지가 다시 자랐다. 그것도 얼마나 오래 붙어 있을지 의문이다. 혹 이런 안내표지판을 붙여 놓으면 괜찮을까. “이 영지버섯은 주인이 있으므로 따가지 마세요”라고.

우리 감나무에 달린 영지버섯. 작년 누가 몰래 따가고 난 뒤 다시 자랐다.
우리 감나무에 달린 영지버섯. 작년 누가 몰래 따가고 난 뒤 다시 자랐다. ⓒ 정판수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 한 구석에 다래가 많이 열린 곳이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손 닿는 위치에 있는 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계곡 쪽 아래로 뻗은 것만 남아 있다. 그것도 얼마나 갈까. 하도 안타까워 지나가는 마을 어른에게,

“이 다래들은 이 마을의 상징입니다. 제발 익을 때까지만이라도 놔두세요”하고 쓰인 팻말을 붙이면 어떨까 했더니 그러면 그게 다래인지 모르는 사람조차 알게 돼 더 따간다며 반대하신다.

올해도 다랫골에 다래는 없는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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