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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저녁 국방부에서 열린 역대 국방주요인사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윤광웅 국방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7일 저녁 국방부에서 열린 역대 국방주요인사 초청 정책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윤광웅 국방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7월 24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 즉각 중단과 김현종 통상본부장, 김종훈 수석대표 등 책임자 해임을 요구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7월 24일 오후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 즉각 중단과 김현종 통상본부장, 김종훈 수석대표 등 책임자 해임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정도면 일란성 쌍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왜 서두르냐고 한다. 미국의 일방적인 신속협상 시한에 쫓겨 한미FTA 협상을 추진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고, 독자 방위능력이 완비되지도 않았는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서두르는 이유가 뭐냐고 한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라고 한다. 한미FTA 반대론자는 생존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론자는 안보를 들어 결사반대를 외친다.

조합 경향도 같다. 한미FTA 반대론자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찬성하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론자는 한미FTA를 찬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갈림 현상의 바닥엔 실체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다. 풀어 말하면 대미전략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극심한 국론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의 안보와 생존을 지켜내는 데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 이게 지금 한국사회에 던져진 화두다.

대체 미국이 뭐기에

보혁 논쟁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사회의 중심 화두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관에 따라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갈리고 있다.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 같은 논쟁이라면 가급적 깔끔하게, 생산적으로 치르는 방법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다.

생산적 논쟁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태도다. 사실관계 전달에 있어 가감이 있어선 안 되고, 입장 표명에 있어 가식이 있어선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9일) <연합뉴스>와 특별회견을 갖고 한미FTA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닮은꼴' 양태가 하나 더 있다. 논쟁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미FTA 문제에 대해선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과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인사가 총대를 멨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선 청와대 국방보좌관과 주미대사 출신이 나섰다. 모두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선창을 하며 논쟁에 불을 지피고, 찬성과 반대 세력은 이들의 선창을 활용해 더할 나위 없는 상징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게 문제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천명했지만 그 이전에 정부의 혼란스런 논의과정이 공개됐다. 이 때문에 '보좌진조차 동의하지 않는 대통령의 입장'이란 윤색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국론 통합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논쟁의 조정자가 아니라 논쟁 당사자가 돼 버린다.

대통령이 그랬다. 참여정부의 성격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했다. 농반 진반인 말이었지만 일정하게 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참여정부가 '좌파'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동시에 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른바 '좌파'와 '신자유주의자'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미FTA, 전시 작통권 논란에도 국회는 '조용'

국회는 한미FTA나 전시 작전통제권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하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국회는 한미FTA나 전시 작전통제권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하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옳고 그름은 따지지 말자. 아니 참여정부 입장에 서 보자. 한국사회의 발전정도에 비춰볼 때 참여정부는 역사상 경과지대에 존재하는 정권이라고, 따라서 좌우협공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치자.

백번 양보해서 이렇게 본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참여정부가 역사적으로 경과지대에 놓인 정권이어서 그 정권을 구성하는 인사들도 좌우를 아우를 수밖에 없었다면 더더욱 만전을 기했어야 할 게 바로 '참여'다. 논의과정과 결정과정에서 '참여'를 보장하고, 그 '참여'를 담보로 '승복'을 끌어냈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일부는 장외로 이탈해 참여정부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고, 일부는 음지에 숨어 '익명의 고위관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국회가 나설 필요가 있다. 아니 필요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 한미FTA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모두 최종 단계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회로 눈길을 돌리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앞서 언급한 '닮은꼴' 양태 하나가 거듭 확인된다.

국회는 한미FTA나 전시 작전통제권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하고 있다. 논쟁의 각이 바늘 수준으로 날카로워졌다면 해당 상임위라도 열어 논쟁을 수렴할 만하건만 상대당 공격하는 성명전으로 대신하고 있다.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으련만 앉으나 서나 민생만 외치고 있다. 여당은 민생 회복을, 야당은 민생 탐방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도 야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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