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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셰익스피어'는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최근 로미오가 아닌 줄리엣, 햄릿이 아닌 오필리어의 입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내는 <셰익스피어의 여인들 1-지성과 열정의 주인공들>(아모르문디)이 국내에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꼽히는 안나 제임슨은 1832년 출간한 이 책에서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오델로>, <리어왕> 등 25명의 여성 캐릭터들을 비평의 중심으로 이끌어내고 '페미니즘 비평'이란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영국 문단에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을 '지성의 여인', '상상력과 열정의 여인', '애정과 덕의 여인'으로 구분하고 역사극에 등장하는 인물을 따로 '역사적 여인'으로 분류했다. (현재 출간된 1권은 '지성의 여인'과 '상상력과 열정의 여인'을 포함하며, 2권은 9월 중 출시될 예정이다)

남녀 관계를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남녀가 서로 고유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시각은 현대의 여성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시적으로 표현된 나머지 비평의 객관성을 잃고 있는 점, 여성의 특징을 섬세함과 순수함, 사랑스러움 등으로 규정짓는 등 시대가 가진 한계를 내보이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나 제임슨 지음/ 서대경 옮김/ 아모르문디/ 1만4000원)

셰익스피어와 여성 주인공들의 초상.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니스의 상인’의 포셔(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 연대미상),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로버트 워커 맥베스, 1888),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8), ‘햄릿’의 오필리어(아서 휴즈, 1865), 가운데는 셰익스피어(안젤리카 카우프만, 1781)
셰익스피어와 여성 주인공들의 초상.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베니스의 상인’의 포셔(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 연대미상),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로버트 워커 맥베스, 1888),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98), ‘햄릿’의 오필리어(아서 휴즈, 1865), 가운데는 셰익스피어(안젤리카 카우프만, 1781) ⓒ 여성신문
여성적 완벽성의 전형 - <베니스의 상인>의 포셔

안나 제임슨이 셰익스피어의 캐릭터 중 가장 애정을 갖는 인물. 포셔는 그가 가진 여성성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기질과 결단성, 쾌활함으로 극을 주도한다. 특히 재판 장면에서 포셔가 가진 지성은 빛을 발한다.

그는 설득력과 연민이 배어있는 달변으로 샤일록에게 자비를 호소하다 거부당하자 그의 물욕을 공략해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고 살도 꼭 1파운드를 베어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을 내린다.

숲의 자연친화적 생기발랄함 노래 - <뜻대로 하세요>의 로잘린드

로잘린드는 고상하고 화려한 포셔와 달리 장난꾸러기 같고 유머러스한 매력적인 캐릭터. 처음 자기 아버지의 지위와 권력을 찬탈한 숙부의 저택에 매여 있는 동안 암흑 속에 묻혀 있던 그는 자유의 몸으로 숲 속을 거닐게 되는 순간 본래의 쾌활한 성격을 회복한다.

그는 공주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귀족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특유의 생기로 주변을 변화시킨다.

산산이 부서진 순수한 영혼 - <햄릿>의 오필리어

햄릿은 가장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 중 한 명일 것. 이런 햄릿에 가려 오필리어라는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저자는 햄릿과 셰익스피어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을 관련지으며 '오필리어와 햄릿은 서로를 진정 사랑했는지' 혹은 '햄릿은 정말 미친 것인지' 등 이 작품과 관련된 논란들을 설명한다. 순수한 영혼의 오필리어는 결국 무자비한 운명의 힘에 의해 부서져버리고 만다.

열정과 사랑의 화신 -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여성 캐릭터들이 여러 가지 사랑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랑 그 자체'이다.

극의 초반 순종적인 여성이었던 줄리엣은 절망적인 사랑을 겪으면서 용기를 얻고 줄리엣과 그의 연인은 죽음으로서 그들의 운명을 성취한다. 이들의 죽음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무덤을 유령들이 배회하는 어두운 세계에서 순교와 성스러운 사랑의 사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여인들 1 - 지성과 열정의 주인공들

안나 제임슨 지음, 서대경 옮김, 이노경 감수, 아모르문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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