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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청 앞에 있는 알림탑. 여기에서 순환버스를 탄다.
거창군청 앞에 있는 알림탑. 여기에서 순환버스를 탄다. ⓒ 권오성

7월 28일, 목포에서 광주·남원 등을 거쳐 거창으로 오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거창군청 앞에서 축제장인 수승대를 오고간다는 순환버스는 오늘 운행하지 않는단다. 터미널과 군청 앞에는 작고 텅 빈 안내 부스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개막 날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으면 좋았으련만. 시내버스 타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는 묘미도 있기 때문에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축제장

남덕유산 밑자락에 자리잡은 수승대는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부끄럽게도 ‘백제에서 신라로 사신을 떠나보내던 곳이라 하여 처음에는 수송대라 불렀으나, 퇴계 이황이 수승대로 바꿔 부를 것을 권하여 이후 수승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내막을 안내문을 보고 그제야 안다.

기막힌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며 야외 공연장에서 벌이는 축제는 반절은 성공한 것이나 진배가 없다. 읍내의 임시 실내 극장을 이용하여 치르는 그만그만한 연극제에서 벗어나 수승대의 야외극장으로 나온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다. 올해 18회 째를 맞는 ‘거창국제연극제’의 주제 ‘자연·인간·연극의 야외축제 - 내 안의 열정, 세상을 담아오다’도 얼마나 그럴 듯한가!

더구나 문화부는 작년에 치른 전국 공연예술분야 국고지원사업(31개)의 평가에서 ‘거창국제연극제’를 최우수 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연예술의 ‘대중화와 관광 자원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탄력을 받은 집행위원회는 “국내 최고의 야외연극축제로 나아가기 위해 단계별로 2010년까지 이동 공연장을 비롯해 모두 50개 이상의 공연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수승대의 좋은 풍광 속에서 연극제가 치러진다.
수승대의 좋은 풍광 속에서 연극제가 치러진다. ⓒ 권오성

행사장 풍경.
행사장 풍경. ⓒ 권오성

스타피큐렌의 ‘매직맨’

개막식을 한참 앞둔 4시부터는 ‘은행나무 극장’에서 독일 극단 스타피큐렌의 ‘매직맨’ 공연이 펼쳐진다. 가끔씩 뿌려대는 빗줄기에 아랑곳없이 일단의 관객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이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도 축제장 일원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연극을 보러 왔는지 물놀이를 하러 왔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걷다가 이들의 행렬을 보더니 시선이 한순간 동요하듯 멈춘다.

막간의 여유 시간이 있어 축제장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올해 연극제는 수승대 일원에서 총 7개의 야외공연장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모두 구경하고 싶으나 아직 완성이 덜 된 공연장도 있고, 저녁 공연 때문에 리허설이 한창인 공연장도 있다. 이젠 축제 홍보 이미지를 통해 잘 알려졌지만, ‘무지개 극장’은 수승대 물길을 뒤로하고 있어 공연이 펼쳐지면 한 폭의 그림이 나올 것 같다. 관수루(觀水樓)와 구연서원(龜淵書院)이 있는 거북극장도 독특하여 몇 번이고 사진을 찍어본다. 드디어 ‘돌담 극장’에서 식전 행사와 개막식이 열린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독일 극단 스타피큐렌의 공연.
독일 극단 스타피큐렌의 공연. ⓒ 권오성

무지개 극장.
무지개 극장. ⓒ 권오성

'거북극장'이 들어선 구연서원.
'거북극장'이 들어선 구연서원. ⓒ 권오성

그들만의 개막식

식전 행사로 벨로루시 출신의 무용극 ‘퀸쇼’가 화려하게 수놓는다. 호텔 무도회장의 화려한 밤무대를 연상케 하는 이 무대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렴 어떠랴! 관객들이 그렇게 즐거워하는데. 완성도나 작품성이 떨어진들, 반라의 무희들이 요란법석을 떨든.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왠지 너그럽고 관대해지고 싶다.

개막식 선언은 극단 스타피큐렌 대표인 독일인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서툰 우리말로 힘차게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서 도지사·군수·지자체 의원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의 소개가 줄을 잇는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한데 축사가 또 이어진단다. 그래서 결국 저녁도 먹을 겸 개막 공연을 포기하고 자리를 뜨고 만다.

개막 식전 행사.
개막 식전 행사. ⓒ 권오성

개막 선언.
개막 선언. ⓒ 권오성

개막식장에 모인 시민들.
개막식장에 모인 시민들. ⓒ 권오성

‘한여름 밤의 악몽’

어느덧 사위가 어두워지자 우연히 만난 지인과 잠시나마 함께 했던 담소를 마무리하고 ‘축제 극장’을 찾는다. 극단 자명종의 ‘한여름 밤의 악몽’을 볼 시간이 된 것이다. 원래는 유료 공연인데 개막날인 만큼 입장권을 무료로 제공한 탓에 입장객의 줄은 수십 미터로 길게 늘어서 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진다는 말에 투덜대고 있는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폭죽이 터진다. 개막 공연이 끝나고 축하 불꽃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 참에 찡그렸던 얼굴들은 모두 펴지고, 입에서는 모두 탄성을 내뱉는다. 여기저기 박수 소리도 들리고 사진 찍는 소리도 들린다. 어디에서고 간에 불꽃의 위력이란! 분위기 반전에는 그만인 이벤트임에는 틀림없다.

극단 자명종의 ‘한여름 밤의 악몽’은 세익스피어 원작(‘한여름 밤의 꿈’)을 번안한 창작 뮤지컬이란다. ‘오싹한 느낌을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다룬’ 작품으로, ‘인간과 귀신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속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모를 혼란스러움’은 올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보낼 것이란다. 요소마다 풍자와 재미있는 대사를 통해 간간이 폭소를 자아내게 했건만, 정말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줄거리를 따라갈 관객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한여름 밤의 악몽' 공연 알림막.
'한여름 밤의 악몽' 공연 알림막. ⓒ 권오성
공연이 끝나고 우연히 만난 어느 유명 축제 기획자와 함께 ‘거창국제연극제’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국제연극제’라고 하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개최 환경이나 인프라에서는 긍정적인 편이나, 9개국의 해외 극단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고, 참여한 우리나라 극단도 몇몇 지역에만 몰려 있다는 것. 전국을 대표하는 국제연극제가 되기 위해서는 외연의 확장과 보다 내실 있는 공연 기획이 절실하다는 취지이다.

어쨌거나 올해 10개국 47개 단체가 참여하여 208회를 공연하는 제18회 거창국제연극제는 오는 16일까지 펼쳐진다. 진정 괜찮은 공연예술 축제인지 독자들은 보고 나서 판단해도 좋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7일에서 29일까지 <2006목포전국우수마당극제전> <제18회거창국제연극제> <2006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등을 방문하고 나서 쓴 두번째 관람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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