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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곱게 자태를 드러낸 상사화
ⓒ 이규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습니다. 역시 여름은 여름다워야 제 맛이 나는 거 같습니다. 그동안 지루한 장마로 벼들은 알맹이 없이 웃자라기만 하고 그러다보니 문고병(볏짚이 썩는 병), 도열병 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제 강렬한 태양이 작렬 하면 이러한 병들은 많이 사라지겠지요.

장마로 인해 습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찌는 듯한 태양이 내리쬐니, 체감온도는 더욱 높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마가 씻어낸 탓인지 하늘은 저리도 오랜만에 맑고 푸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우릴 반깁니다.

매일처럼 하는 일이지만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마당의 풀과 싸움을 합니다. 이젠 일상이 되어 버린 일들이지만 결코 풀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풀과의 동침은 제 자신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포기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항복선언'이라기보다는 같은 생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고픈 생각에서입니다.

풀을 뽑아 한 곳에 모아 두면 뿌리까지 뽑힌 풀이기에 다 말라죽을 줄 알았는데 일부는 다시 되살아납니다. 줄기만 떨어져 있는 잡초들도 어느새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고 왕성한 생명력을 내보입니다. 정말 대단한 생명에 대한 집착들입니다. 풀이 갖는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죠.

▲ 상사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 이규현
어떻든 오늘도 군데군데 다시 고개 쳐들고 나오는 잡초들을 제거하다가 문득 상사화 한 송이가 올라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내가 저걸 언제 심었지? 심은 기억이 없는데… 아… 맞아… 수선화라고 누군가가 가져다주어서 아니라고 한 켠에 묻어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상사화였구나!"

얼마 전 선배 댁에 갔었는데 거기에서 붉노랑상사화를 봤었습니다. 가장 먼저 피는 상사화라고 봐야죠. 그런데 바로 저희 집에서도 상사화가 나오는 것이니 벌써 그런 시간의 흐름이 되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전혀 느끼지 못한 사이에….

이제 곧 위도상사화도 피고 백양꽃도 피고 그러고 나면 붉은 꽃무릇도 지천에 넘쳐대겠죠. 그렇게 되면 벌써 가을의 문턱입니다. 꽃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 자연은 그렇게 어김이 없습니다. 아쉬운 시간의 영역들은 우릴 놔두고 저렇듯 물처럼 흘러가는데 가는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 범부채의 아름다운 꽃 모습(표범의 무늬처럼 생겼네요)
ⓒ 이규현
하여 저는 카메라를 얼른 챙겨들고 그 순간이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을 부추깁니다. 그러다 보니 상사화 옆엔 가녀린 범부채가 고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 더위에 저 부채로 부채질하면 시원한 녹색바람 솔솔 전해져 올 것 같습니다. 범부채는 꽃모양이 표범의 무늬를 닮았고 이파리는 부채모양이어서 범부채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갖게 된 거 같습니다.

▲ 범부채의 아름다운 자태... 다 지고 난 꽃은 저렇게 또르르 말아서 함께 떨어집니다.
ⓒ 이규현
그런데 범부채는 꽃이 지고 난 다음엔 정말 재미있게도 그 고운 꽃잎을 또르르 말아버립니다. 다른 꽃들은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범부채는 통째로 말아서 한번에 떨어집니다. 역시 표범다운 기상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 고추나물
ⓒ 이규현
범부채 옆에 보니 지난 장마 때 캐다 심어 놓은 고추나물도 꽃을 피었습니다. 아주 작은 이 꽃들에게 왜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고추나물 옆에는 벌개미취가 개화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힘차게 밀어 올린 꽃대에는 금방이라도 보랏빛 선연한 꽃잎을 활짝 열 것 같은 모습이 엿보입니다.

▲ 닭의 장풀...여러개의 수술들은 서로 역할 분담을 하여 수정이 잘 되도록 절묘한 팀워크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 이규현
▲ 닭의 장풀이 서로 겹겹이 피었네요. 암닭과 숫닭이 교미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이규현
만날 뽑아내는 닭의장풀도 선연한 자태를 뽐냅니다. 닭의장풀은 한 쪽에서 보면 꼭 쥐가 귀를 쫑긋하고 있는 모양같기도 한데 어찌하여 닭의장풀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아직 모릅니다.

▲ 참나리...꽃은 저리도 크고 고운데 열매는 맺지 못하니 그 안타까움이란...
ⓒ 이규현
참나리도 빠지면 안 되겠지요. 커다란 키에 여러 송이의 큰 꽃들을 안고 지탱해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더욱이 저렇게 큰 꽃을 피우면서도 열매나 씨앗을 맺지 못하고 잎과 줄기 사이에 콩처럼 달린 주아로 번식을 한다니 그 큰 꽃이 갖는 의미는 뭘까요?

아무튼 이 뜨거운 여름의 아침에 사방을 둘러보니 이렇듯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합니다. 내 주변에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게 아름다움과 저만의 몸짓과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들이 많은데 발부리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하나의 정겨움과 멋을 모르고 지내온 날들이었던 거 같습니다.

뜨거운 햇살은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무지한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굵은 땀방울을 선사합니다. 이마에 흐르고 등짝에 흘러내리는 그 땀방울들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나 또한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에 자세를 더욱 낮춰 볼 일입니다. 그러할 때 나도 어느새 함께 아름다워질 수 있겠지요. 그런 희망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닦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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