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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태풍 끝에 덮친 유례없는 장마로 온 국토가 물난리가 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 GM대우자동차도 수재를 입었다. 지난 16일 밤 내린 집중 호우로 안양천 둑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물이 인근을 덮쳐 양평동에 있는 GM대우자동차의 긴급 출동 A/S센터건물 지하와 1층 절반이 물에 잠기고, 긴급출동 A/S 차량 17대가 물에 잠기는 재해를 입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2006년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교섭을 진행 중에 있었고, 지난 주가 집중교섭 기간이었다. 이 때문에 과연 이러한 시기에 수재민돕기 자원봉사를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졸지 간에 천재지변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재민들에 대한 구호의 손길은 일각이 더 절실했기에, 비록 임단협 교섭이 막바지를 치닫고 있을 지라도 주말을 기해 다녀오면 우리 조합원들도 이해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최종적으로 수재민돕기 봉사활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정은 했지만 이때부터가 더 문제였다. 어느 지역을 갈 것인가, 지원할 물품을 무엇으로 얼마만한 규모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원봉사 할 수 있는 인력은 과연 얼마나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중앙재해대책본부 상황실에 우리의 뜻을 전달하여 이번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인제지역으로 결정한 후, 인제군청과 연결하여 필요한 물품과 자원봉사 지역을 최종 결정했다.

드디어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 다행스럽게 전날(21일) 오후 4시30분경 2006년 임·단협 교섭이 잠정합의에 이르게 되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날까지 계속된 교섭과 투쟁으로 상집간부들 대부분 하루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인천에서 인제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것도 21일 새벽 4시에 집결하였으니, 오죽 피곤하겠는가!

5톤 트럭에 수재민들을 위한 2,000만원에 상당하는 구호물품을 싣고 회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몸을 싣고 강원도 인제로 출발했다. 어둠을 헤치고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장 문을 벗어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수마가 할퀴고 간 큰 상처에 또다시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가 잠에 곯아 떨어졌다.

▲ 출발전 새벽4시 사진
ⓒ 김성열
구호물품을 전달하기로 한 인제 종합실내체육관에 도착하니 아침 8시였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관계자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아 연락을 취하니 곧바로 나왔다. 5톤 트럭에 싣고 온 구호물품(쌀, 김치, 부탄가스,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내려놓고 자원봉사단은 오늘 하루 봉사를 하기로 한 덕적리로 향했다.

▲ 수해물품 하차 장면
ⓒ 김성열
가는 길에 이번 수마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리로 넘어가는 그 길은 길 옆의 계곡이 깊고 물이 맑고 시원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천혜의 경관을 가진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포탄으로 맞은 것보다 더 처참한 수재의 참상만이 있었다. 집들 중 성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고, 도로는 대부분 유실되었다.

▲ 무너져 내린 집과 도로
ⓒ 김성열
다행스럽게 긴급히 군이 나서 복구한 비포장도로 덕에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 덕적리까지는 아직 개통되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덕적리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쌀, 김치, 부탄가스,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일일이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 언덕을 오르며 수해물품을 나르고 있다.
ⓒ 김성열
1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 덕적리는 이번 수재 피해가 큰 지역 중 하나였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모여 공동으로 수해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자원봉사단은 아침도 변변히 먹을 새가 없었기에 간단히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후 복구 작업을 했다.

커다란 건물에 쌓인 토사를 긁어내는 작업이었다. 실내에 들어온 토사였기에 장비를 쓸 수 없었고, 오로지 삽과 손수레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이 쌓인 곳은 1m가 넘었고, 최하 20cm 이상 토사가 나뭇가지와 뒤엉켜 쌓여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가 오지 않은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일일이 삽질로 토사를 긁어내어 밖으로 퍼나르는 작업은 해도 해도 별로 진척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안 하다 하던 삽질인지라 처음엔 다들 힘들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도 터득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치워 나가는 게 보였다.

▲ 쓰레기와 토사를 제거하고 있다.
ⓒ 김성열
아직도 일은 산더미 같은데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수재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평공장 식당에서 취사한 식사를 날라 왔다. 양을 넉넉히 했기에 함께 한 주민들과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나눌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 잠시의 휴식마저 쉽지 않았다. 하루일정으로 봉사를 왔기에 우리가 맡은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밥심으로 기운을 얻어 오후에는 오전보다 속도가 붙었다. 다들 몸은 힘들고, 내일 아침에 온몸이 쑤실 것을 알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 오후에 합류한 젊은 군인들이 가세하면서 복구 속도는 더 빨라졌다. 또 새참으로 가져온 막걸리를 군인들과 나눠 마시면서 모두 15~20년 전의 군대생활들을 회상하면서 즐거운 이야기 꽃도 피웠다.

이제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맡은 작업은 모두 말끔하게 끝낼 수 있어 홀가분한 마음들이었다. 온 계곡이 여전히 흙탕물이라 씻기도 쉽지 않았지만 마침 지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그나마 맑아져 얼굴, 손, 다리에 튄 흙탕물을 대강 씻어내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다들 곯아 떨어졌다. 오늘의 이 봉사활동은 모두에게 힘들었지만 소중하고 의미있는 추억으로 간직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중간에 사진 이미지를 넣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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