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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참사 7년, 쌍둥이 딸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데...

지난 6월28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CJ푸드 사태로 수도권 지역 중·고등학교 32개교에서 2781명의 학생이 식중독에 감염되는 대형 사고가 터진 뒤였다. 약 2년 동안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정확히 7년 전에도 되풀이됐다. 1999년 6월30일 발생한 씨랜드 화재 사건. 어린이 1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다음에야, 국회는 소방법과 건축법 등을 개정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사고 예방은 다시 세상 밖으로 몸을 감췄다. 고석씨에게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지난 7월6일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 한국어린이안전교육관에서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를 만났다.

"자꾸 사고가 터져야 법이 빨리빨리 만들어집니다. 소방관들이랑 소주 마시며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우리 방재 수준 너무 낮다, 이거 발전하려면 계속 불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안전의식도 높아지고 화재 조사나 진압 기술도 개발되니까요. 이게 우리 현실입니다.

▲ 씨랜드 참사로 쌍둥이 딸을 모두 잃은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
ⓒ 여의도통신 한승호
아동안전에 관한 법안들은 발의돼도 방치되다, 자동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는 사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요. 허술한 법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만 희생당하는 거죠. 이건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는 7년 전 쌍둥이 딸(가현·나현, 당시 7세)을 잃었다. 씨랜드 참사를 전하는 뉴스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아이의 영정 앞에 생일 케이크를 놓고 "가현아, 나현아 촛불 끄란 말이야"라며 울부짖었던 고석씨. 사고 이후 그는 다니던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어린이 안전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고씨는 "씨랜드 사고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동안전에 관한 법은 미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통학버스나 스쿨존 관련 법안은 발의돼도 통과가 잘 안돼요. 맨 나중으로 밀리기 일쑤고. 의원들 찾아가 몇 번이고 설명하고 부탁해도 그때뿐입니다. 조금만 고민하면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는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이들이 표가 없다고 무시하나 하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강력한 규제와 처벌로 실효성 있는 안전 법안 만드는 것이 중요

그러면서 고씨는 신문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통학버스에서 내린 8살짜리 아이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 여의도통신 한승호
"현행 도로교통법상 통학버스가 정차된 차로와 그 옆 차로에 있는 자동차 운전자는 일시 정지하도록 돼있습니다. 통학버스에는 보호자를 함께 태워야 한다는 조항도 있고요. 그런데 이게 잘 안 지켜지고 허술하니까 의원들이 개정안을 냈습니다. 아예 '통학버스가 움직일 때까지 다른 차들이 멈추도록 하자'(이성구 의원 발의, 2006년 1월19일), '보호자 안 태우면 벌금 더 세게 물리자'(이원영 의원 발의, 2005년 12월8일). 그런데 그거 다 계류 중입니다."

고씨는 "통학버스 관련 법안도 많은 아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다음에야 급하게 통과시킬 거냐"며 강력한 규제와 처벌로 실효성 있는 안전 법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회에서 '사고'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법안이 또 있다. 지난해 6월 민병두 의원이 발의한 아동안전특별법이 대표적인 법안이다. 아동안전업무는 보건복지부, 소방방재청, 건설교통부 등 15개 부처와 연결돼있다. 관련 법령도 여기저기 흩어져있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는 기본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같은 취지로 발의된 법이지만, 고씨에게는 결코 미덥지 않은 '아동안전특별법'이다.

"정작 법안을 들여다보니 이건 죽도 밥도 아닌 법이더라고요.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아동안전특별법이 1년째 계류 중인데 계류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아동안전특별법이라면 말 그대로 아동안전과 관련된 교통, 소방, 양육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면서 최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게 짜여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고씨는 "국회가 아동안전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법을 제대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 계류중인 아동안전특별법도 씨랜드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가 터지면 '무사통과'될 공산이 크다. 고씨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씨랜드 참사 7주기 되던 날이었어요. 씨랜드 운영자였던 박모씨가 복역을 마치고 아이들 추모비에 들렀습니다. 그때 제가 그랬어요. 당신이나 나나 잘못된 법 때문에 고통 받았다, 당신도 피해자고 나도 피해자다. 더 이상은 이런 피해자들이 생겨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씨랜드 참사 7년, 어린이 안전법 어디까지 왔나

▲ 씨랜드 참사 추모비.
ⓒ여의도통신 한승호
씨랜드 참사로 어린이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법에 대한 제·개정 움직임도 잇따랐다. 우선 1999년에는 소방법이 개정됐다. 연면적 500㎡ 이상인 청소년시설 및 탁아소·어린이집·경로당 등 노유자(老幼者)시설에 자동화재속보설비 설치를 의무화했고, 청소년기본법 개정을 통해 장애청소년 및 미취학 아동 등 특별한 보호를 요하는 아동에 대한 안전보호 조치도 강화했다.

2000년에는 아동복지법에 아동의 건강 및 안전조항을 신설해 아동복지시설과 아동용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아동복지시설, 영유아보육시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2001년에는 연면적 600㎡ 이상 청소년시설 및 노유자시설에 스프링쿨러 등 자동소화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데 이어 2002년에는 특수장소에 대한 방염조항을 만들어 청소년시설 및 노유자시설의 실내장식물, 카펫과 벽지 등은 방염 제품 사용을 '권장'하는 등의 소방법 개정도 이어졌다.

영유아보육법도 개정됐다. '보육시설 사고 발생시 응급대처 조항'을 신설하고(2004), 보육시설운영위원회가 영유아의 건강, 영양 및 안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할 수 있게 했다(2005).

최근에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범위를 특수학교와 영유아 100인 이상의 보육시설까지 확대하고, 6세 미만 어린이를 앞좌석에 태울 때는 반드시 보호장구를 착용할 것을 강제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도 개정됐다.

그러나 '아동위험국'의 오명을 벗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사고사는 14세 이하 어린이 사망의 가장 큰 원인(47.2%)이다. 2004년에만 895명의 아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 평균 2.5명의 어린이가 안전사고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주변국인 일본보다 1.4배정도 높은 수치다. 어린이 안전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 법안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송민성

덧붙이는 글 | ☞관련기사 '특별한 '모법'? 평범한 하위법!' 보기 

이 기사는 여의도통신(www.ytongsin.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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