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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미국 유명 패션지 편집장의 어시스턴트인 20대 여성이 겪는 사회생활을 가벼운 터치로 다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문학동네)가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에 진입하는 등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판계에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중소설과 자기계발서 등 '치크 북'(chick-book)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2030 여성을 위한 문학인 '치크리트(chick-lit)'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 소설뿐만이 아니다. 20대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중앙)는 30만 부의 판매를 기록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치크 북에는 섹스, 쇼핑, 속물주의, 이기주의 등 기존에 대놓고 말하기를 꺼려했던 얘기들이 솔직하게 표현돼 있고, 명품 브랜드와 패션 용어가 일상어처럼 등장한다. 독자들은 이들이 내세우는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조언에 열광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생활에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전문가들은 "여성잡지에서나 다루던 일회성 아이템의 단행본화"라며 치크 북의 소비주의를 우려한다.

'치크 북'의 가벼움 약인가 독인가
2030 여성 타깃 대중소설·자기계발서 인기
여성잡지 아이템의 단행본화·소비주의 조장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문학동네)는 ‘치크 리트’(Chick-lit)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치크’(chick)와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인 ‘리트’(lit)가 합쳐진 ‘치크 리트’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삶과 사랑, 사회생활을 가벼운 터치로 그린 영미권 소설. 치크 리트가 국내의 자기계발서 열풍에 맞물려 확대되면서 2030 여성을 위한 ‘치크 북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30만 부가 팔린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중앙)나 출간 10주 만에 5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1위를 기록한 <여자생활백서>(해냄)와 같은 치크 북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현실적인 내용을 당당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예전의 여성 자기계발서들은 ‘남성의 벽을 뚫고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자처럼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미모도 경쟁력. 성형수술 할 수 있을 때 하라’ ‘백마 탄 왕자를 그냥 떠나보내지 마라’ ‘네 안의 속물을 인정하라’(‘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등 세속적인 가치를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작업 기간은 2주를 넘기지 마라’ ‘첫 섹스를 기억하라’ ‘다리털만 밀지 말고 다른 털도 관리하라’(‘여자생활백서’)와 같이 기존에 대놓고 말하기 꺼렸던 섹스와 외모지상주의, 이기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여자끼리 얘기하던 것들을 이젠 드러내놓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맥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20대 여성을 위한 인맥 관리법을 제안하는 ‘능력 있는 여자는 스캔들을 꿈꾼다’(자유로운 상상)에서처럼 사회생활에서 실제로 필요한 지식들을 소개한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이런 열풍에 대해 "여성잡지 아이템의 단행본화"라고 지적한다. 그는 "예전에는 기승전결의 구조, 깊이 있는 분석,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 등 출판하는 책에 요구되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존재했었지만 최근 그 경계가 사라지면서 얕은 지식의 짜깁기 형태의 자기계발서가 성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학작품에도 2030 여성들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패션계 상류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은 대중브랜드에서 명품으로 갈아타면서 그들의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쇼퍼홀릭’(황금부엉이)의 주인공인 25세의 경제지 기자는 신분상승의 욕망으로 쇼핑중독에 빠져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섹스 앤드 시티’의 뒤를 잇는 이들 소설에는 명품 브랜드와 패션용어들이 일상용어처럼 등장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출판한 문학동네 편집부 이현지씨는 "출판 당시만 해도 성공에 반신반의했지만 언론이나 평단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먼저 반응이 오더라"면서 "미국 시트콤, 패션 관련 채널이 보급되면서 패션 트렌드에 민감해진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해석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는 "치크리트 작품은 쇼핑 능력과 패션감각, 외모 가꾸기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믿는 2030 여성들의 대리만족 수단"이라며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그는 또한 "기존의 남성 중심적 문학에서 부정적인 여성 캐릭터라 여겨졌던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여성들이 치크리트 북에서는 성공한 여성으로 그려진다"면서 "부정적이던 여성 캐릭터를 긍정적 캐릭터로 전복시키는 시도는 인정하지만 상업성과 결부되면서 소비주의를 조장함으로써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소비적인 여성이 되어버린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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