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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불탄 흔적이 역력한 낙산사 가는 길.
아직도 불탄 흔적이 역력한 낙산사 가는 길. ⓒ 문일식
2년전 답사차 양양에 들러 낙산사를 둘러본 후인 지난해 4월 5일, 삼척여행 중이던 저는 청천 벽력같은 뉴스를 들었습니다.

산불이 번져 천년고찰 낙산사가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의상대와 홍련암, 몇몇 근래에 지어진 전각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소돼버린 낙산사…. 보물 475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도 뜨거운 불 속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안타까운 날이었습니다.

지난 11일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를 둘러보고 난 후 양양으로 접어들었고, 낙산사를 놓고 고심에 빠졌습니다. 폐허 속에 묻힌 낙산사의 암울한 모습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고 짙은 송림을 따라 걸어 올라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낙산사 전소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유스호스텔을 지나고부터는 지난해 시뻘건 화마가 날름거리며, 지나간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소나무의 기둥들은 그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달아날 수도 없는,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수많은 나무들의 뼈아픈 흔적이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모든 사찰이 그렇듯이 낙산사의 입구는 일주문으로 시작됩니다. 낙산사도 일주문이 있지만 또 다른 입구가 있는데 바로 유형문화재 33호로 지정된 홍예문입니다.

조선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했다가 강원도 26개 고을의 석재를 하나씩 가져다가 쌓았다고 하는 홍예문도 화마가 비켜가진 못했습니다. 홍예문 위에 누각은 지난 화재로 전소되고 홍예문도 위험에 처했는지 지지대로 받쳐져 있습니다.

원통보전을 새로 만들기 위해 양양인근에서 가져온 나무들입니다.
원통보전을 새로 만들기 위해 양양인근에서 가져온 나무들입니다. ⓒ 문일식
홍예문을 들어서니 큰 목공소 건물처럼 꾸며놓은 곳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쌓여있었고, 나무들을 가공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무척 바빠 보였습니다. 아마도 낙산사를 재건하기 위한 부재인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낙산사에는 세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는 사천왕문을 지나 원통보전에 이르는 그다지 예스럽지는 않지만 고요하고 정갈한 길입니다. 두 번째는 원통보전 옆 쪽문을 지나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숲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의상대를 지나 청명한 바다를 끼고 홍련암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낙산사의 화재로 내가 가졌던 낙산사의 아름다움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원통보전 가는 길. 작은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곳은 이제 황량하기만 합니다.
원통보전 가는 길. 작은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곳은 이제 황량하기만 합니다. ⓒ 문일식
사천왕문을 들어서서 조계문과 대성문을 거쳐 들어가야 했던 원통보전과 문과 문 사이사이에 있던 특이한 전각의 이름을 가진 고향실, 보물을 품고 있던 범종각 등은 모두 불타버리고 문과 문이 막고 있던 시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넓게 열려 있었습니다.

원통보전이 있던 옛 자리로 가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안타까움이 짙게 베었습니다. 자연은 정말 위대한 걸까요? 산불 하나에 속수무책이었던 인간들의 발버둥이 '낙산사 전소'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으니 말입니다.

화재로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도 소실됐습니다.
화재로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도 소실됐습니다. ⓒ 문일식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동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세등등했던 보물안내 표지석만이 삐딱하게 서 있었습니다.

원통보전 구역을 둘러싸고 있던 숲도 황폐해지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원통보전 구역에서는 해수관음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보물표지석 위로 멀리 해수관음상이 쓸쓸하게 서 있었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원통보전이 있던 자리. 원통보전은 온데간데 없고 주변을 두른 담장만이 을씨년스럽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원통보전이 있던 자리. 원통보전은 온데간데 없고 주변을 두른 담장만이 을씨년스럽습니다. ⓒ 문일식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은 뜨거운 아픔을 이겨내고 굳건히 서 있는 듯 했지만, 일부는 쓰러지고 담장의 내부가 보일정도로 허물어 졌습니다.

담장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인데, 이 원장은 암기와와 흙을 차례로 쌓아 만들고 원형의 화강석을 중간 중간에 배치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담장으로 유형문화재 34호입니다.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본 불타버린 숲길. 숲길 아래로 온전히 남은 보타전이 보입니다.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본 불타버린 숲길. 숲길 아래로 온전히 남은 보타전이 보입니다. ⓒ 문일식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숲길에 들어서자 황량함과 안타까움이 극대화됩니다. 울창한 숲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게 되는 오솔길을 지난 뒤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보일 때의 감탄사를 이제는 뱉을 수 없게 됐습니다.

푸르름은 전혀 찾을 수 없고, 해수관음상이 있는 하얀 공간만이 더없이 넓게 보였습니다.

낙산사가 불타는 모습을 그대로 보았을 해수관음상.
낙산사가 불타는 모습을 그대로 보았을 해수관음상. ⓒ 문일식
세상의 소리를 듣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은 화재로 사라진 낙산사와 안타까움에 울부짖는 뭇 중생들의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기분 때문인지 해수관음상의 얼굴은 그다지 맑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넓게 트인 동해바다는 청량하기보다 처연하고 쓸쓸해보였습니다.

의상대와 홍련암 가는 길, 보타전과 보타락은 희한하게도 화재피해가 없어 마치 낙산사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다행히 화마가 비켜갔지만, 가까운 곳의 전각과 큰 소나무들이 희생됐습니다. 껍질까지 벗겨져 버린 소나무는 거즈를 덧댄 채 아직까지 신음을 하고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기록되어있는 의상대는 다행히 화재를 면했습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기록되어있는 의상대는 다행히 화재를 면했습니다. ⓒ 문일식
다행히 의상대와 홍련암 앞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유난히도 울울하고 장중한 염불소리가 홍련암으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낙산사 재건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기도는 그날도 계속 되었습니다.

한 연인이 기와불사 하면서 남긴 글, '낙산사 홧팅'
한 연인이 기와불사 하면서 남긴 글, '낙산사 홧팅' ⓒ 문일식
낙산사를 다녀간 한 연인이 원통보전 기와불사를 하고 난 뒤 기와에 쓴 '낙산사 홧팅'이란 문구가 낙산사를 돌아보며 느꼈던 안타깝고 스산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환하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나무의 밑둥이 던져주는 안타까움은 언제고 다시 잊혀질까요?
처참하게 일그러진 나무의 밑둥이 던져주는 안타까움은 언제고 다시 잊혀질까요? ⓒ 문일식
낙산사가 전소된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지 어느덧 1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지금 낙산사는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원통보전 재건을 위해 들여온 양양 인근의 거대한 나무들은 튼튼한 기둥이 될 것이고 재건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 호소문은 낙산사를 방문한 사람들과 낙산사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재건에 동참하게 할 겁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숲도 서서히 푸르른 새 생명들이 올라오고 충격적인 슬픔과 아픔은 조금씩 치유되고 잊혀 갈 겁니다.

비록 예스러움을 잃은 낙산사가 될지언정 수백년 뒤 우리 후대에는 고고한 기품을 지닌 낙산사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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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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