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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 가는 길
ⓒ 장옥순
우리 반 승현이와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야기를 미디어다음 블로그에 실었다가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엄청난 댓글에 쏟아지던 비난과 격려, 누리꾼들끼리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오히려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3월 첫날부터 지금까지 그 아이로 인해 겪었던 어려움으로 병원에 가기도 하고 두드러기까지 발병한 요즈음이다. 적지않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체벌을 범죄시 했던 나의 교육관을 송두리째 뿌리뽑게 만든 그 아이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내 생애의 아이'임에 분명하다.

4권의 교단일기를 쓰며 아이들과 살아가는 내 일상을 참 감사하게 살아왔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거라는 자부심으로 아이들만을 보고 살아온 내 삶속에서 교실을 빼놓으면 남는 게 별로 없을만큼.

나를 거쳐간 어떤 아이들에 비해 유별난 아이를 만나 날마다 홍역을 치르는 일상을 보낸 지 벌써 4개월째이다. 아직도 그 아이는 뛰고 달리고 친구를 때리며 소리지르고 울며 안하무인이다.

'칭찬 스티커'를 사용하며 달래기도 하고 좋은 말로 꾸지람도 해보지만 순간에 그치고 다시 반복하는 아이. 일분만 교실을 비워도 금세 난리를 피워서 친구들과 싸우고 때리던 모습은 조금 나아진 요즈음이다.

아무리 1학년이라고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달라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다반사이니, 제대로 수업을 진행시키는 것조차 힘들다. 특히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몇분도 그리지 못하고 색칠을 엉망으로 하거나 하기 싫어서 짜증을 부리며 옆 친구들을 괴롭히곤 한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점심을 먹는 시간까지도 속을 썩인다. 1시간이 다 되도록 식판을 비우지 못하고 물컵만 괴롭히며 음식투정이다. 그렇다고 그 아이만 봐주면 다른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니 날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점심 시간마저도 밥맛을 잃을 정도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칭찬과 꾸중, 벌주기와 격려하기를 반복하던 일상이 바뀐 것은 녀석이 수학 책을 밟으며 내게 반항하는 순간 나도 지지 않고 책을 찢어버린 일이 발생한 후부터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인 녀석은 깊이 생각하거나 문장을 차분히 읽지 않고 대충 흘린다.

늘 먼저 시작하고 틀려서 고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틀리거나 고치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그 아이의 글자를 지도하기 위해 우리 반에서는 국어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글씨를 예쁘게 쓰면 200점을 주고 있다. 보너스로 100점을 더 주는 것이니 그 시간만이라도 글씨를 더 잘 써보려고 지우개를 자주 쓰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찢은 일이 생긴 후부터 녀석은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것 같다. 좋은 말로 타이르던 선생님이 아니란 걸 안 모양이다. 내게 친절하기도 하고 곁에 다가오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침에 등교하고서도 아침독서를 하고 있으면 얼른 들어오지 않고 쭈뼛거리며 망설이던 오늘 아침의 모습.

다른 때 같으면 등교하면 온 교실을 시끄럽게 하는 아이라서 조용히 독서를 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난폭한 행동이 줄어들었으니 선생님에게 대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그 아이와 나 사이에도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기를 빌어보는 밤이다. 나는 이제 그 아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나를 성숙시키려 한다. 그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인내하며 긴 호흡으로 한발 늦춰서 그에게 다가서리라.

덧붙이는 글 | <한교닷컴> <에세이> <미디어다음> <샘터일기장>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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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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