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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의 입구인 북문 공북루 전경. 반달 모양의 옹성이 둘러서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입구인 북문 공북루 전경. 반달 모양의 옹성이 둘러서 있습니다. ⓒ 문일식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읍성이다 보니 동·서·북문에 각각 옹성이 있고 6개의 구역에 치가 설치됐으며 해자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창읍성은 축성된 이래 군사전략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고창읍성은 모양성(牟陽城)이라 불리는데, 이는 백제 시절 지명인 모량부리에서 유래한 듯합니다. 모양성제라는 성밟기 풍습도 있습니다. 머리에 돌을 인 채 성을 밟고 도는 것인데 한 번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번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번 돌면 극락에 이른다고 하여 생겨난 풍습입니다.

원래는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시점인 윤달, 특히 윤삼월에 시행했다고 합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다가 날이 풀리면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머리에 돌을 이고 성밟기를 함으로써 성을 다지려는 뜻과 함께 돌을 유사시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입니다. 지금도 성밟기 행사는 매년 9월 9일을 전후해 성대하게 거행됩니다.

대나무숲에서 <왕의 남자> 느끼고 '성밟기'로 극락 가고

북문인 공북루를 통과하면 고창읍성 안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 복원은 1976년에 시작됐습니다. 동헌, 객사, 내아, 성황사 등 내부 건물과 공북루, 풍화루, 진서루, 등양루 등 성곽 부분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공북루에는 옹성이 있습니다. 옹성은 성문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성문 앞에 둥글거나 네모난 모양으로 한 겹 더 성벽을 쌓은 구조물입니다. 돌출된 성곽이자 일종의 이중성곽인 옹성은 진입하려는 적을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입니다.

공북루를 지나면 대원군 때 만들어진 척화비가 서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 울창한 숲길을 따라 고창읍성 산책에 나섰습니다. 고창읍성 안쪽엔 읍성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노송군락이 펼쳐져 있고 맹종죽으로 이루어진 대나무 숲도 있습니다.

고창읍성에 있는 맹종죽림. 영화 <왕의 남자>의 촬영지입니다.
고창읍성에 있는 맹종죽림. 영화 <왕의 남자>의 촬영지입니다. ⓒ 문일식

이곳 맹종죽림은 얼마 전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를 촬영한 곳입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다보니 맹종죽림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줄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는 듯합니다. 대나무에 여행객들의 흔적들이 난무하고 잘려나간 죽순 흔적이 여기저기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고창읍성 내 객사 건물. 모양성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듯 '모양지관'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습니다.
고창읍성 내 객사 건물. 모양성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듯 '모양지관'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습니다. ⓒ 문일식

맹종죽림을 지나 성황사를 거쳐 객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창읍성 내 객사는 모양지관(牟陽之館)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습니다. 객사는 가운데 있는 주관(主館)과 좌우의 익사(翼舍)로 이뤄졌습니다. 본사인 주관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예를 올린 곳이고 좌우 익사는 사신이나 중앙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됐습니다.

고창읍성은 축성 당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할당하여 짓게 했습니다. 각 영역에는 해당 지역의 표지석이 있습니다.
고창읍성은 축성 당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할당하여 짓게 했습니다. 각 영역에는 해당 지역의 표지석이 있습니다. ⓒ 문일식

객사를 나와 읍성의 남문 쪽 성곽 위로 올라섰습니다. 고창읍성은 축성될 때 주변 고을에서 마을 주민들을 차출, 일정 영역을 할애하여 짓게 한 것 같습니다. 읍성 바깥쪽으로 네모진 돌기둥이 박혀 있는데 이 돌기둥에는 각 고을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읍성의 남쪽으로 올라 동문을 거쳐 북문인 공북루를 향했습니다.

읍성에는 성곽 바깥쪽으로 네모지게 돌출된 것이 있는데 이를 '치'(雉)라고 부릅니다. '치'는 옹성과 마찬가지로 성내로 진입하려는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꿩(雉)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엿보는 데 능하다는 데서 이름을 딴 것으로,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공격하는 적을 측면에서 제압하기 위한 구조물입니다.

고창읍성의 성곽을 따라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성곽을 따라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 문일식

읍성의 남쪽부터 동쪽 '치'가 있는 곳까지는 평탄한 길이지만 동쪽 '치'부터 동문까지는 내리막길로 고창읍내를 눈앞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동문인 진양문에도 옹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동북쪽 '치'부터 북문 공북루에 이르는 길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오르막이 힘든 여행객들에게는 읍성을 가로질러 객사를 거쳐 동남쪽 '치'부터 동문을 거쳐 공북루로 이르는 길을 추천합니다. 오르막이 없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성곽길을 거닐 수 있습니다.

무장읍성의 남문인 진무루의 전경.
무장읍성의 남문인 진무루의 전경. ⓒ 문일식

복원이 아쉬운 무장읍성... "고창 왔으면 무장읍성도 찾아주세요"

무장읍성을 만나려면 고창읍에서 약 30분 정도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봄이면 보리밭, 가을이면 메밀밭을 이루며 초록과 하얀색의 풍성함을 펼치는 학원농장으로 가는 길목인 무장면 성내리에 있습니다.

완벽하게 복원된 고창읍성과 달리 무장읍성의 복원 상태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남문인 진무루와 무장객사, 동헌이 산재해 있지만 안쪽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던 듯 운동장과 여러 동상들이 폐허가 된 채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옛 지명인 무송현과 장사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름지은 무장읍성은 조선 태종 때 병마사가 조성한 읍성으로 <세종실록지리지>나 <문종실록>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읍성이라고 하지만 읍성의 주체인 성곽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지어진 진무루를 통과해 들어가면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 흙더미들이 널려 있습니다.

무장읍성 안에 있는 객사 건물. 낮은 석축 위에 차분히 앉아있습니다.
무장읍성 안에 있는 객사 건물. 낮은 석축 위에 차분히 앉아있습니다. ⓒ 문일식

진무루와 가까운 곳에 무장객사가 웅장하면서도 낮은 자세로 서 있습니다. 객사 주변에는 옛 무장읍성을 구성했던 석물들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객사는 기다랗게 다듬은 돌을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만들어졌는데, 석축도 낮고 객사 건물도 낮아 보여 고창읍성의 객사만큼 웅장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장읍성 내 객사가 앉아 있는 석축에는 예쁜 꽃과 화병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장읍성 내 객사가 앉아 있는 석축에는 예쁜 꽃과 화병이 새겨져 있습니다. ⓒ 문일식

객사를 오르기 위해서는 낮은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계단의 난간석에는 태극무늬와 함께 형체를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화유산 해설가는 이를 사자라고 설명하지만, 사자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한편 석축의 잘 다듬어진 면 한쪽에는 화분에 담긴 꽃이 새겨져 있어 무척 특이했습니다.

객사 건물 옆 큰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는 그동안 이곳을 거친 수령,군수들의 공덕비, 영세불망비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객사 건물 옆 큰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는 그동안 이곳을 거친 수령,군수들의 공덕비, 영세불망비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 문일식

객사 왼편에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이곳을 줄곧 다스려온 수령이나 군수들의 공덕비, 영세불망비 등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대부분 석비인데 맨 끝에는 철로 만들어진 철비가 세워져 있어 이채롭습니다.

호랑이 동상 하나가 옛 무장초등학교 추억을 되새기는 듯 운동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동상 하나가 옛 무장초등학교 추억을 되새기는 듯 운동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 문일식

예전에는 이곳에 무장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인근에 새 건물을 짓고 옮겼습니다. 초등학교가 없어진 자리는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관리되지 않는 운동장도 그렇고, 이곳을 채웠던 여러 동상들도 깨지고 넘어진 채로 흉물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을 호랑이 동상 하나가 어지럽게 방치된 운동장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서글퍼 보였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조선 명종 때 지어진 동헌(전북 유형문화재 35호)이 있습니다.

고창에 있는 두 읍성(고창읍성과 무장읍성)은 조선 초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꽤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 중 무창읍성은 고창읍성보다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합니다(물론 고창읍성에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은 이유를 다른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겠지요).

이왕 고창까지 갔다면 무장읍성도 한번 들를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창읍성과 무장읍성은 각각 사적 145호, 34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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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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