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당새아가 탁자 위에 접시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재미있게 송하령과 말을 하던 서가화가 문득 이상한 생각에 아미를 치켜세웠다.

“너는 처음 보는 아이로구나...”

느닷없는 일이었다. 살짝 미소를 띠우는 듯 보이던 당새아의 소매에서 요서보검이 빠져나오며 송하령의 복부를 아래로 찔렀다. 배가 불러오는 터라 의자에 등을 비스듬히 기댄 채 편안히 앉아있던 송하령은 복부를 관통하는 지독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악.....!”

비명과 함께 서가화의 손에 검이 잡힌 것은 동시였다. 검날이 허공을 갈랐다.

슈아악----!

당새아가 급히 몸을 숙였다. 서가화의 검날은 당새아의 뺨을 지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베어 내고 있었다. 한 웅큼의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흩뿌리려지며 떨어져 내렸다. 허나 서가화의 공격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곧 바로 검을 뉘이며 당새아의 허리를 수평으로 베어갔다. 당새아가 송하령의 바로 곁에 붙어있어 매우 조심스럽고 정교한 공격이었는지라 위력은 그리 크지 못했다.

째 쨍---

당새아는 요서보검을 뽑아들며 서가화의 검을 막았다. 동시에 그 탄력으로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이상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급히 삼검을 휘둘러 서가화를 공격하는 듯 하더니, 서가화가 주춤하자 그 틈을 타 빠르게 방문을 박차며 신형을 날렸다. 방문이 부서져나갔다.

“오호호호홋홋----”

그녀의 요사스런 웃음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서가화는 급히 당새아를 뒤쫓으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우선은 송하령의 안전이었다. 그녀는 급히 송하령에게 다가갔다.

“아...아기....내...아기.....”

송하령의 복부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고, 정신이 있는 듯 했다. 혈도를 눌러 지혈을 시키고 천으로 송하령의 복부를 감쌌다. 뱃속의 아이 때문에 너무 옥죌 수가 없어 아직도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그녀의 뇌리 속으로 한 인물이 떠올랐다.

“갈대인.....”

손가장에 마침 갈대인이 있었다. 그녀는 급히 방문을 나섰다. 그녀의 눈에 혈도가 짚힌 채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두 명의 시비가 보였다.

--------------
“형님이라 부르리까?”

모용화궁의 말에 손불이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이라도.... 자네가 이렇게..... 와주니.... 고맙군. 그렇지...않아도....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었...어..... 나를 모용가의.... 선산 귀퉁이에라도 묻어줄....수.... 있겠나.....?”

이미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불이는 힘겹게 자신의 빈 잔을 들었다.

“한 잔..... 주게. 육십이...... 넘어 살면서..... 처음으로..... 형제에게.... 잔을.... 받아보고... 싶네......”

“형님....!”

모용화궁이 애써 모용화천을 형제라고 인정하지 않은 것은 가문 때문이었고, 조부와 부친의 유명 때문이었다. 부친은 그에게만큼은 손불이가 자신의 자식임을 밝히면서도, 가문에 들이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 역시 가문의 명예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 뿐. 다른 무림인들의 추궁에도, 자식인 모용수가 모용화천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체 한 이유였다. 그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불이의 잔에 술을 따랐다. 따르는 모용화궁의 손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서가화가 화들짝 들어왔다. 그리고는 담천의를 보고 달려들었다.

“이 인간..... 왔으면 언니를 먼저 찾았어야 할게 아니야....”

반 울음이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담천의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령에게 무슨 일이 있소?”

“멍청한 인간...... 결국.... 당신 때문이야.....흑....”

담천의의 얼굴색이 홱 변했다. 두 사람은 급히 방을 나섰다. 그곳 앞에는 구양휘와 형제들 그리고 섭장천 등 많은 인물들이 보였다. 서가화의 재촉에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그는 정고헌으로 달려갔다.

-------------
“하령..... 하령..... 나요.... 내가 왔소......”

아직 혼절하지는 않았다. 가쁘게 숨을 쉬는 송하령의 모습은 애처롭다. 하얗게 탈색된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려 한다.

“당.... 당신,,,이군....요.... 정.... 말.... 당신이 왔....군...요.”

그녀는 털썩 주저앉은 담천의의 품에 안겨 힘겹게 왼손을 들어올려 담천의의 뺨을 어루만졌다. 얼마나 보고 싶던 사람인가? 꿈에서라도 보이라 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이 사람 발자국 소리인 양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놀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령......!”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담천의같은 사내의 눈물은 피보다 진하다.

“살고..... 싶어요.....아직..... 당신과..... 사랑도 시작하지..... 못....했는데......나.... 죽기... 싫어요..... 제발..... 살려....줘요..... 당신......당신을....사랑.... 하며... 당신의....사랑을....받으며...”

눈은 이미 반쯤 감겨있다. 애써 웃으려 해도 복부에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살고 싶었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시작하려 하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기 싫었다.

“갈대인.... 도와주십시오. 댓가로 제 목숨을 달라 하셔도 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하령을 살려주십시오.”

말은 짐승의 포효가 섞인 울음이었다. 갈유는 먼저 당도해 이미 송하령의 상태를 살펴 본 터. 갈유는 담천의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하네..... 나는.... 능력이 없네. 독기어린 검이 이미 그녀의 복부를 뚫고 들어가 자궁에 까지 미쳤다네.”

탄식과 같은 말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대라신선이 온다 해도 살려낼 수 없는 상태.

“우리.... 아기....... 우리..... 아기와.....함께.... 살고....싶어....요......”

인간의 힘은 이렇듯 보잘 것이 없다. 특히 생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애처롭게 살고 싶다고 외쳐도 아무도 살려낼 수 없다. 그리고 한 순간 송하령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창백한 얼굴이 굳어들고 있다. 너무 허무한 죽음.

“하령....! 하령....! 으.....흐흐흐......”

그의 입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다. 그것도 영원한 이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에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송하령을 꽉 부둥켜안고 하령을 부르는 담천의의 음성은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질식할 듯 숨이 막혀오고 오장육부가 마디마디 끊어지고 있었다. 보고 있던 갈유와 서가화의 목울대도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담천의에게서 사랑을 앗아간 단장애사(斷腸哀史)는 영락 7년 초가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영락 18년에 산동성(山東省)에서 당새아란 여인을 중심으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당새아는 농민이었던 임삼(林三)의 처였는데, 젊어서부터 요서보검(妖書寶劍)을 들고 불경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여 많은 농민들을 현혹시켰다.

백련교에 따른 의식을 행하고, 따르는 농민들의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였다. 재물을 모아 따르는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주술과 요술을 행했기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불모(佛母)라 하여 따랐다.

산동의 익도(益都)에서 일어난 당새아의 난은 결국 안원후(安遠侯) 유승(柳升)에 의해 진압 당했는데, 이 때 당새아도 사로잡혀 옥에 갇혔다. 허나 괴이한 사술을 부린 것인지 탈옥하였고, 농민들 사이에 섞인 채 사라져 그 후에 그녀를 본 사람이 없었다.
(斷腸記 大尾)

덧붙이는 글 | 단장기 후기와 새 연재계획에 대해서는 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게시판은 여러분들과 저와의 의사소통 공간입니다. 게시판을 찾으시려면 오마이뉴스 첫 화면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보시면 단장기 <메뉴바>가 있습니다. 또한 <연재기사란> 쪽에서 단장기를 찾으셔서 클릭하시면 단장기 연재분이 보입니다. 그 아래로 내리시면 게시판을 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연재하기 전까지 여러분들과 저와의 교감은 게시판에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