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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5월 28일 강원도 원주 민예총 문화위원회 판부 문화의 집이 주관하는 역사문화기행에 참가해서 찾아간 곳 중의 하나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대관대리 횡성댐 망향의 동산입니다.

원주를 비롯한 섬강 하류의 생활용수와 전력을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할 목적으로 2000년 11월 준공된 횡성댐은 조상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왔던 다섯 마을을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고향을 잃고 떠나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망향의 동산 망향탑 비문에 담았습니다.

"중금, 부동, 화전, 구방, 포동 다섯 동네가 오순도순 둥지를 틀었던 그 아늑하던 산, 들, 내는 우리들 어머니의 품이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요, 이 땅에 터 잡아 누대를 살아오며 때로는 기쁨에 절로 즐거웠고 더러는 슬픔을 함께 나누던 우리네 얼과 혼이 깃든 삶의 터전입니다.

내 할아버지가 그랬듯 내 아버지가 대를 이어 오곡백과를 가꾸며 작은 역사를 만들어 온 이 터의 품에 안겨 다시는 그 뜨거운 숨결을 들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끼 낀 전설처럼 사라져간 우리네 삶의 모습을 이 비에 간직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한을 이 동산에 묻을 따름입니다. 훗날 우리들 아들과 손자들이 고향을 찾고 싶을 때, 조상의 그리움이 사무칠 때, 가쁜 숨 몰아쉬고 아픈 가슴 달래며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횡성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있습니다. 분단의 철책 너머에 고향을 두고 온 이들도 통일이란 희망을 품고 고향을 다시 찾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이 물 속에 잠겨버린 이들은 돌아갈 고향도 없고, 고향을 다시 찾을 희망도 없습니다.

ⓒ 이기원
“저 물 속이 예전엔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어.”
“정말요?”
“그 마을은 어디로 갔어요?”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들어 저 물 속에 잠겨버렸단다.”
“사람들도 빠져 죽었어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살아.”
“그게 어딘데요?”
“한 곳으로 간 게 아니라 사방으로 흩어졌어.”

눈 동그랗게 뜨고 설명을 듣는 아이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원한 바람과 잔잔한 물결이 마냥 좋을 뿐입니다. 수영복 입고 들어가 수영하고 싶다는 녀석도 있고, 아빠와 함께 왔으면 낚시했으면 좋겠다는 녀석도 있습니다. 저 호수 속에 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있었다는 걸 녀석들은 알지 못합니다.

ⓒ 이기원
“이 탑은 저 물 속에 있었던 건데 물에 잠기기 전에 이리로 옮겨왔어.”
“저렇게 큰 걸 어떻게 옮겨요?”
“탑을 분해해서 옮긴 뒤 다시 복원한 거야.”
“그럼 로봇처럼 조립한 거네요?”
“나도 탑 조립해봤으면 좋겠다.”
“바보야. 돌이 무거워 넌 못해.”

ⓒ 이기원
역사기행이란 무엇일까요? 위대한 조상들의 거룩한 삶의 흔적을 찾아 그 위대함에 젖어 감동하는 것만이 역사기행은 아니겠지요. 세상에 제 이름 석 자 남길만한 힘은 없었지만 어느 땅 한 구석에서 애잔한 삶의 흔적을 남긴 이들의 삶도 또한 기행을 통해 느껴볼 가치가 있겠지요. 망향의 탑 비문에서는 고향을 잃고 떠나는 이들의 애달픈 마음이 비명처럼 담겨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고 있습니다.

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 강인하게 살아온 선열들만이 아니리라. 삶의 보금자리였던 초가삼간, 꿈을 키우던 학교, 늘 푸르던 문전옥답, 앞산의 진달래, 강가에 조약돌 무엇 하나 잊어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그리움입니다. 아, 우리는 뒤뜰 장독대에 피었던 봉숭아 한 포기, 하늘 높이 맴돌던 고추잠자리 한 마리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고향이 살아 있듯이…….

ⓒ 이기원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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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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