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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메마을로 가는길, 아름다운 섬진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 오릅니다.
진메마을로 가는길, 아름다운 섬진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 오릅니다. ⓒ 서재후

먹장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한껏 부어 있습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섬진강 물줄기를 쫓아 지리산 자락을 포근히 보듬고 갑니다. 옅은 초록의 신록과 함께 강을 따라 길을 걷는데, 길은 적적함을 달래며 안개 속으로 안내합니다.

지리산 실상사를 지키고 서있는 돌장승입니다. 모자를 쓰고 코가큰것이 해학적인 모습입니다.
지리산 실상사를 지키고 서있는 돌장승입니다. 모자를 쓰고 코가큰것이 해학적인 모습입니다. ⓒ 서재후
저 넓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어찌 날짐승과 물짐승에게만 허락된 곳이겠습니까? 답답한 회색빛 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남원의 돌장승과 섬진강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실상사 해탈교를 앞을 지키고 서있는 돌장승 입니다.
실상사 해탈교를 앞을 지키고 서있는 돌장승 입니다. ⓒ 서재후
좀처럼 풀리지 않던 정체는 천안을 지나서야 시원스레 풀리면서 차가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전북 남원. 멀기도 합니다. 지리산 IC를 빠져 나와서야 회색 빛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옅은 초록색으로 바뀌어 갑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국도를 타고 40여분이 못 걸려 대정 삼거리를 지나 도착한 실상사는 너른 평지 위에 주변 마을과 함께 있습니다. 실상사 돌장승은 모두 4개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소박하고 소탈한지 모릅니다.

돌장승은 실상사로 들어가는 해탈교 건너기 전에 한 개, 건넌 후에 두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는 두 개씩이었으나 한 개는 오래 전 홍수로 소실되어 지금은 모두 세 개만 남아 방문객을 맞습니다.

다른 곳의 장승이 남녀를 각각 만들어 놓은 것과 달리 이곳의 장승은 모두 남성을 상징한다는 게 특이한 점입니다.

실상사는 깊은 산중이 아닌 평지에 있는 절이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화려함도, 여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권위도, 위엄도 없습니다. 그저 평민들과 함께 울고 웃던, 그렇게 실상사를 지키는 돌장승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실상사를 나설 때쯤에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온 대지를 구석구석 적시며 고찰의 고즈넉함을 연출합니다. 우리는 실상사 돌장승의 미소를 뒤로하고 서천리로 발길을 돌려 차를 몰았습니다.

서천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여자 돌장승입니다.
서천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여자 돌장승입니다. ⓒ 서재후
한 시간쯤 차를 몰아 도착한 마을입구에는 마을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 당산의 돌장승에는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의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이란 글이 새겨져있습니다.

마을 입구를 중심으로 남쪽의 돌장승은 남자, 북쪽은 여자입니다. 여자돌장승은 귀가 없고 입술이 두껍고, 표정이 수수한 노인의 모습입니다.

돌장승은 보통 지역간의 경계나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합니다. 북천리 돌장승 역시 마찬가지로 마을 입구에 두 개의 돌장승이 세워져 있습니다. 눈이 큰 것과 여자 돌장승에 귀가 없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인 북천리 돌장승의 표정은 약간은 단호하고 당당한 모습입니다.

서천리와 지척이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을 입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두 마을 돌장승들의 표정을 통해 당시 서민의 소박한 삶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의 돌장승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바삐 만복사지로 차를 향했습니다.

고려 문종 때 세워지고 조선 중기까지 번창하던 만복사(만복사지)는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현재 만복사지 입구에는 높이 4∼5미터의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행사를 치를 때 문 앞에 내걸던 깃발의 깃대를 받치는 버팀 기둥입니다.

오랜세월 홀로 절터를 지켜온 만복사지 5층석탑입니다.
오랜세월 홀로 절터를 지켜온 만복사지 5층석탑입니다. ⓒ 서재후
지금은 오랜 세월 버텨온 석탑과 돌 유물 몇 개가 절터를 지키고 있지만 이처럼 큰 규모의 당간지주를 볼 때, 그 옛날의 웅장했던 절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시습의 소설 <금호신화>에 실린 만덕사저포기의 무대로 잘 알려진 이곳에 비가 내린 탓인지 절터는 물기를 가득 담은 스펀지 마냥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기를 신발로 옮겨놓습니다.

물기 닿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습니다. 우뚝 솟은 석탑만 남은 텅 빈 절터를 뒤로하고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로 향했습니다.

섬진강 강변 길은 신록의 옅은 초록빛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아름답습니다. 길을 나설 때부터 잔뜩 흐려 있던 것이 지리산 자락을 에돌아 들자 강변 길은 옅은 안개로 자욱합니다.

안개 속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이리저리 감아 도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저 멀리 달아납니다. 천담마을에서 진메마을까지, 어느 한 모퉁이도 빠지지 않는 수려한 풍경을 자랑합니다.

길과 강, 산 그리고 안개는 그렇게 유유히 한 폭, 한 폭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안개가 짙어 가는 섬진강 변을 걷는 내내 아무런 대화가 필요 없었습니다. 섬진강 변은 마법에 걸린 세계처럼 모든 것이 멈춰져 있고 강물만이 흘러갑니다.

강은 안개를 짓고, 안개는 산 자락을 품 습니다.
강은 안개를 짓고, 안개는 산 자락을 품 습니다. ⓒ 서재후
우리는 돌장승의 소박한 미소를 보았고, 지리산 자락을 에둘러 흐르며 굽이마다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낸 애절한 섬진강을 보았습니다. 산 설고 물 설은 게 여행의 참맛이라 했는가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모두 흔한 것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조합을 이루어 풍경이 되었을 때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집니다.

마법의 세계처럼 모든것이 멈춰있는듯 합니다.
마법의 세계처럼 모든것이 멈춰있는듯 합니다. ⓒ 서재후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 함께 떠나지 않으시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글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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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잊고 살았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기 위해서라면 어떨지요...지금은 프리렌서로 EAI,JAVA,웹프로그램,시스템관리자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 하고싶었던일은 기자였습니다. 자신있게 구라를 풀수 있는 분야는 지금 몸담고 있는 IT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글은 잘 쓰지못합니다. 열심히 활동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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