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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 시인의 시집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만인사) 표지
박기섭 시인의 시집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만인사) 표지 ⓒ 김주석
예전에 어머니로부터 민가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은 잠이 들고 아내는 밤늦게까지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쥐 한 마리가 방안을 돌아다니더란다. 아내가 그것을 잡으려 하다가 그냥 놓아두었는데, 글쎄 그놈의 쥐가 남편의 코 속으로 쏙 들어가더란다.

그렇다면 잠잘 때 사람의 혼이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 혹은 이렇듯 놓여 돌아다니는 것이란 말인가? 혼은 변신의 귀재인가. 아니면 혼은 또 다른 생명체로의 전이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에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시로 담아낸 작품을 발견했다. 내 고향에서만 이런 이야기가 떠도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보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고 우리네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정신 세계도 소략하나마 가늠할 수 있다.

먼 그대 숨구멍 속을 은밀히 들락거리는, 눈에 안 보이는, 그러나 저리 선연한, 사련의 슬픈 넋이여 눈이 붉은 혼쥐여 ('혼쥐' 전문)

'혼쥐'는 인간 생명의 상징성이다. 사람의 보이지 않는 호흡이 '영혼'이라고 하면 틀린 것일까?

'영혼'과 '생명'은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생명'을 좀더 고상하게 표현하다 보니 '영혼'이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이 혼쥐 이야기로 말미암아 신비감이 감돈다. 아득하기도 하고 간절하기도 하고 은은하기도 하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끊어 읽어 그 율을 음미해야 제 맛이 살아난다. 율독해 보자.

먼 그대
숨구멍 속을
은밀히
들락거리는,

눈에
안보이는,
그러나
저리 선연한,

사련의
슬픈 넋이여
눈이 붉은
혼쥐여


'저리 선연한'은 힘을 주어 감정을 실어 읽어야 할 것이고, '사련'이라는 시어는 나도 모르게 사무친다. '사련(思戀)'. 이 시어는 그저 '그리움'을 뜻하는데 '그리워 슬픈 넋이여' 이것과는 사뭇 그 시감(詩感)이 달라진다.

'눈에 안보이면서도 저토록 선연하다면'은 말이 안 된다. 역설이다. 왜일까? 사람의 목숨이란 게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의 '숨'이란 게 그렇기 때문이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보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삶은 '그리움' 같은 것. '사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삶은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의미인 것을 어찌할 건가. '슬픈 넋'은 '혼쥐'는 오늘도 사람들의 영혼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리워하고 애태우고 후회하고 그러나 그 속에서 삶을 찾는다. 그것이 생명의 증거이고 생명의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사는 모습이 '사련'이다. 그리고 이 '사련'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영혼의 끈이랄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진정이랄 수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마다마다 그 속에 혼쥐가 있어 대화가 된다.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영혼은 내 속에 있다기보다는 내 밖을 나의 사방 먼 거리를 열심히 오가는 그런 것이다. 먼 사람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도 있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혼쥐'는 먼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의 사람 오늘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고 사랑의 행동이다.

시인은 '별것 아닌 것'에서 '별 것'을 찾는다. '개복숭아'에서 '별맛'을 찾는다. 이 '별맛'이란 서민적인 삶에서 접하게 되는 그 삶의 소중함과 진실됨이다.

"피거나 말거나 흥, 아무도 눈 주지 않네//개복사꽃 이운 자리 서너너덧 개복숭아//달기는, 고 망할 것이 달기는 또, 고로코롬"

'고로코롬'에 뭉쳐 있는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주목받고자 안달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생명 소박하게 일구어 피워내는 열매 바로 그것이다. '소외된 삶'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생각까지도 넘어서 있는 '자기 수용적 삶'이다. 중심을 꿈꾸지 않는다. 자기 서 있는 자리가 중심이라 여기는 생명이 이 시 속에 표현된 '개복숭아'의 삶이다.

'희한한 일'이라는 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금 간 막접시 재떨이'가 자연스럽게 링크(link)된다. 그 재떨이용 '막접시'에서 나온 물이 터앝을 꽃피우고 산그늘을 거느린다. '별것 아닌 것'이 '별 것'이다. '별 것 아닌 내'가 '별이(특별한 사람)'이다.

제주도 조천읍 신촌리 이용상 시인네 집에서는 금 간 막접시를 재떨이로 쓴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은 그 재떨이 씻은 물에 거 무슨 한련이 피고 금잔화가 피고 그런다는 사실

더러는 한라산 그늘이 와 깃들이고 그런다는 사실

- ‘희한한 일' 전문


박기섭 시인
박기섭 시인 ⓒ 김주석
1954년 대구광역시 달성 마비정에서 나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조시집으로 <덧니> <키작은 나귀타고> <묵언집> <비단 헝겊>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등이 있다. 오늘의 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리하여 춤추는 삶을 꿈꾸어 보자. 더불어 춤추는 세상을 그려보자.

"그대 앞에 나는 늘 새벽 여울입니다//그 여울 소리 끝에 불 켜든 단청입니다//다 삭은 풍경(風磬)입니다, 바람입니다, 춤입니다"('춤' 전문)

'새벽 여울', '단청', '풍경', '바람', '춤'의 삶의 의미를 가만가만 헤아려 보자.

하늘에 밑줄이나 긋고

박기섭 지음, 만인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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