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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입맛을 되돌리는 데 그만인 김치찌개
지친 입맛을 되돌리는 데 그만인 김치찌개 ⓒ 이효연
지난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연속적으로 여러 가지 일정이 겹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겸한 가족 모임에다가, 때 아닌 심한 몸살에 목감기에 알러지성 결막염까지 겹쳐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보는 남편마저, '거의 괴력을 발휘하는 수준이군'이라 할 정도로 빡빡한 하루하루였지요.

그 일정 가운데에는 잡지 요리 촬영도 있었는데, 이 또한 저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평소 자주 식탁에 올렸던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닌 데다가 인터뷰며 촬영하는 일에 능숙하고 세련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종종거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도무지 그런 쪽으로는 경험도 없고 문외한인지라 마음만 급하고 몸은 더디 움직일 수밖에 없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간 요리촬영을 하면서 약 40여 가지 음실을 만들다 보니 집안과 냉장고에 이것저것 재료도 많고 만들어 놓은 것도 꽤 되는데 이상스럽게도 그 중의 어느 것도 손 하나 대기 싫다는 것입니다. 비싼 재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육해공을 섭렵하는 갖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들인데도 말이지요. 한마디로 '질려' 버린 것입니다.

요리책을 내고 잡지 촬영을 하면서 주변에서 꼭 묻는 말이 있어요. "남편분이 늘 맛있는 요리를 드실 수 있어 참 행복하시겠어요. 따님도 그렇구요"라고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남편 말을 빌자면 "오히려 잘 얻어먹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촬영이 끝나는 저녁쯤, 퇴근길 남편과 나누는 통화내용은 항상 "어디에 나가서 무얼 먹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십여 가지 요리를 하다 보면 정말이지 집에서는 물 한모금도 먹고 싶지가 않더군요. 그러니 모처럼 '집 밥' 먹고 싶은 남편도 하는 수 없이 저에게 끌려 나가 냉면이나 감자탕, 떡볶이 같은 것을 먹어 줘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이게 요즘 저의 생활 모습입니다. 그게 바로 한동안 요리 연재 기사가 뜸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도통 무얼 해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요리책을 내고 나서 처음 만난 신문사 기자가 던졌던 질문 하나가 생각납니다. "이제 앞으로 요리 쪽으로 쭈욱 일을 해 나갈 계획이신가요?"란 물음에 전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니요, 계속 이쪽 일을 해 나갈 정도로 요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그렇다고 해도 전 그냥 이 일을 취미로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고 나면 그 때부터는 부담이 되고 짜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 즐기면서 요리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요.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고요.

학창시절, 아마추어로서 '즐겼던' 학교 방송국 생활은 대부분 너무나 행복했고 달콤한 추억으로 남았지만 정작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어 프로로 일했던 기간 중에는 야근이며 당직으로 바빴던 고된 기억들과 매너리즘과 슬럼프에 빠져서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 있거든요. 방송이 하기 싫은 날에도 웃으면서 재미있어 좋아죽겠다는 시늉으로 방송을 해야 했으니까요.

아직 요리책이 대박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유명인도 아니니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아마 잡지촬영을 하는 일도 슬슬 줄어들 겁니다.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요즘에야 반짝인 거고요. 그렇게 된다면 한 편 조금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한편 조금은 욕심을 부려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면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내가 즐기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즐길 수 있는 일'을 갖기 위해서는 너무 달려들지 말고 한 발짝 물러서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사람 사이의 사랑도 너무 가까이에서, 너무 질리도록, 너무 많이 집착하고 가지려하는 것보다는 그저 가까운 거리에서 두고 볼 때가 더 좋은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쓸쓸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수 년 전,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했을 때만 해도 어떻게든 유명해지는 것이 좋았고, 잡지나 신문에 인터뷰 기사 한 번 나가면 온 세상이 나를 알아줄 듯 반갑고 들뜨고 했던 그 마음, 일 하나가 생기면 바짝 들러붙어서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며 물 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던 나의 열정담긴 욕심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어르신들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늙었나?'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내가 떠난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문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사가 생각나네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들면서 더욱더 좋아지는 노래입니다. 초록비 내리는 오월의 아침, 바쁜 일정에 지쳐서 혹은 너무나 뜨겁게 솟아오르는 열정 때문에 마음 한자락 여유를 잃어버린 분들과 이 노래가사를 함께 되뇌면서 한 숨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만들어 볼 요리는 신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예요.

며칠 전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하느라 지친 입맛을 찾아 준 고마운 요리입니다. 그동안 냉장고에서 푹푹 시어가고 있던 김장김치가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될 줄 정말 몰랐어요. 일부 식당에서는 김치찌개의 새콤한 맛을 돋우기 위해 일부러 식초도 조금씩 넣는다고 하던데 이번 김치찌개는 육수에 약간의 간만 했을 뿐인데도 새콤매콤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어떤 요리도 그렇듯이 제대로 된 재료 하나만 있으면 누가 만들어도 기본맛은 나온다는 말이 역시 맞는 말 같습니다. 반대로 원재료가 맛이 없으면 그 누가 어떤 비싼 재료를 다 넣어 만들어도 맛이 없는 것이고요. 생각 같아서는 커다란 냄비에 가득 만들어서 삼시 세 끼를 먹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조그마한 냄비에 한 끼 분량만 끓여봤습니다.

김치찌개 역시 한꺼번에 많이 먹어버리면 곧 질려서 '즐기면서 먹기'가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히려 한 발자국 멀리 두는 것처럼 김치찌개 역시 조금은 아쉽지만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입맛을 잃었을 때 찾아먹는 보양식으로 아껴두렵니다.

재료

한 입 크기로 썬 신김치 2컵
멸치 육수 5컵
소금, 국간장 약간
두부 반 모
청양고추 3~4개
양파 1/2개


1. 냄비에 한 입 크기로 썬 신김치와 약간의 육수, 굵게 채 썬 양파를 넣어 양파가 투명하도록 볶습니다.

약불에서 뚜껑을 덮고 은근히 오래 끓여야 국물 맛이 좋습니다.
약불에서 뚜껑을 덮고 은근히 오래 끓여야 국물 맛이 좋습니다. ⓒ 이효연
2. 멸치, 다시마 등을 넣어 만든 육수를 넣고 한 번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어 약한 불에서 김치가 나른해지고 육수가 잘 우러나도록 한동안 끓여줍니다.

돼지고기를 넣을 때에는 미리 김치국물에 볶아서 간이 스며들도록 한 후에 넣어야 맛이 좋아요. 그리고 두부를 처음부터 넣어 같이 끓이면 부서져서 모양이 안 좋으므로 맨 나중에 넣어 살짝 끓여냅니다.
돼지고기를 넣을 때에는 미리 김치국물에 볶아서 간이 스며들도록 한 후에 넣어야 맛이 좋아요. 그리고 두부를 처음부터 넣어 같이 끓이면 부서져서 모양이 안 좋으므로 맨 나중에 넣어 살짝 끓여냅니다. ⓒ 이효연
3.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한 입 크기로 썬 두부와 청양고추를 넣은 후 다시 한 번 끓어오르면 완성.

덧붙이는 글 |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
김치찌개, 두부김치, 김치볶음은 정말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뉴지요. 김치찌개 하루에 두 끼 먹었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거의 못 본 것만 봐도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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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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