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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뚜레를 낀 소가 얌전하다.
코뚜레를 낀 소가 얌전하다. ⓒ 시골아이고향
며칠간 묵갈림 소(소작으로 먹이던 소)가 외양간을 떠나 내 마음은 무척이나 허전했다. 휑하니 비어 있는 빈자리가 어찌나 컸던지 사람 한 명 없어진 것보다 공허함이 더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나흗날과 아흐렛날에 서는 장날 하루 전, 막둥이 아들을 위한 건지 어른들은 빳빳한 것과 꼬깃꼬깃한 돈을 침을 묻혀가며 어두운 호롱불 밑에서 세고 계셨다.

“엄니, 뭔 돈인가? 또 논 살라고?”
“아녀.”
“송아치가 없응께 나간 집구석 같쟎냐.”
“워메 글면 송아치 산다요?”
“그려.”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새벽밥을 드시고 집을 나섰다. 세 뭉치가 더 되는 돈을 가지런히 펴서 돈 냄새가 나지 않도록 신문지로 싸고 보자기로 둘둘 말아 허리춤에 복대처럼 단단히 묶는다.

“허먼 댕겨오싯쇼.”
“알았구만. 걱정 말더라고.”
“오실 쩍에 차 조심 허구라우.”
“알았단 마시.”


녹슨 소빗이 처량하다. 요즘 농가에서도 이 쇠빗으로 정성들여 기를까?
녹슨 소빗이 처량하다. 요즘 농가에서도 이 쇠빗으로 정성들여 기를까? ⓒ 시골아이고향
삼십 리가 넘는 곡성 옥과장 쇠전에서 아버지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오셨던 건 지난 초겨울이었다. 나락을 수매한 데다 형들이 보낸 돈을 조금 보탰다.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송아지 등에 올라타 보기도 하고 쇠 빗으로 조심조심 쓰다듬듯 털을 빗겨주었다. 송아지를 어루만지면서 강아지보다 더 귀여워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무를 하러 가신 아버지가 노간주나무 두 개를 베어 오셨다. 노간주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양지바르고, 석회암지대의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 가시를 덕지덕지 매달고 사시사철 늘 푸른 상록수였다. 하지만 평상시엔 손에 찔려 땔감으로도 하등 필요가 없는 나무다.

간혹 베어왔을 때는 ‘싸르르’ 소리를 대단히 크게 내면서 타들어가는 나무일 뿐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요긴하게 쓰였던 바, 그 쓰임새는 바로 ‘코뚜레’다.

노간주나무는 겉은 삼나무나 편백나무, 또는 주목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나무가 빼곡히 찬 그늘 아래서는 콩나물이 자라듯 쭉쭉 위로만 크니 옆으로 난 가지가 많지 않다.

이것이 송아지를 길들이는데 최고의 걸작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먼저 침엽(針葉)을 다 제거하고 꼿꼿이 선 원줄기만 가져와 껍질을 아래에서 위로 벗겨주면 물기를 가득 머금은 노간주나무가 헐벗듯 매꼼하게(말끔하게) 된다. 때로 나는 아버지 곁에서 껍질을 벗겨낸 노랗고 하얀 나무줄기를 핥아먹기도 했다. 단단하기도 이를 데 없다.

“아야, 막둥아~ 가서 짚 주어줌 각고 오니라.”
“알았어라우.”


왼쪽 사진은 겨울 노간주나무다. 오른쪽은 '창에'라고 하는 강원도 인제지역 사냥 기구로 눈밭에 신고 다니는 '설피'와 만드는 과정이 거의 비슷해 관련 사진으로 넣었다.
왼쪽 사진은 겨울 노간주나무다. 오른쪽은 '창에'라고 하는 강원도 인제지역 사냥 기구로 눈밭에 신고 다니는 '설피'와 만드는 과정이 거의 비슷해 관련 사진으로 넣었다. ⓒ 시골아이고향
2, 3년에 한 번은 봐왔던 터라 아버지의 다음 일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지포라이터를 켜서 불을 피워 껍질 벗긴 나무를 불에 구우려는 거다. 짚불만 붙이면 뽀르르 타고 마는지라, 아래에 머룬 솔가지를 덧댔다.

아버지는 잘든 낫으로 줄기에 난 가지와 옹이를 깔끔하게 다듬더니, 끝부분을 약간 벗기지 않은 채 들고 있던 나무를 좌우로 앞뒤로 슬슬 구워나간다. 대 뿌리를 잘 다듬어 매로 쓰던 선생님들의 실력보다 한 수 위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몇 번을 오갔을까.

꽝이 배긴 거친 손도 뜨거우신 듯 아버지는 들고 있던 나무를 슬슬 굴리다가 불을 한쪽으로 밀쳐버리고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공중에서 살살 구부려 보더니 약간 부족하였던지 다시 불에 살짝 올려 굽고는 품에 안 듯 감싸 살살 구부린다. 꼿꼿하게 직선이던 나무가 생각지도 않게 타원형이었다가 차차 둥근 원을 그렸다.

두꺼운 쪽을 다시 불에 쬐어 오므리니, 정확히 둥근 달 모양이 되었다. 곧바로 아버지는 나무가 펴질세라 끝에 남은 나무껍질로 동여매 형태를 유지하도록 하여 닷새 가량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그늘에 걸어두신다. 그날 그렇게 두 개를 만들어 놓으셨다. 행여 하나가 부러지면 대체용으로 쓸 셈이었던 모양이다.

못자리를 보고 오신 아버지는 날을 잡으신 듯 오후에 우리들에게도 멀리 가지 말라고 하셨다. 어느새 송아지를 사온 지 벌써 넉 달째에 접어들었으니, 송아지가 나대기 시작함은 물론 목줄만 가지고 외양간 구유 위에 묶어 뒀다가는 언제 뛰쳐나갈지 몰라 손을 쓸 때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아무 데도 끼대 가지 말고 집에 있그라와.”
“뭔 일 있간디요?”
“쇠양치(송아지) 코뚜레 혀야 됭께 해르막에 집에 붙어 있어. 맛난 깔도 좀 벼 놓고….”
“알았어라우.”


코뚜레와 주둥망을 한 황소. 용인 한국민속촌에 가면 볼 수 있다.
코뚜레와 주둥망을 한 황소. 용인 한국민속촌에 가면 볼 수 있다. ⓒ 시골아이고향
아버지는 코뚜레 때 지혈도 돕고 영양도 보충하기 위해 쑥과 열매를 머금은 풀을 섞어서 베어놓고 작두로 썰어 놓았다. 소접을 붙이는 일은 어른들 몫이지만, 염소, 돼지 불붙이기와 송아지 코뚜레를 끼우는 일엔 간간히 반드시 어린 우리도 한 몫 거들어야 했다.

째깍째깍 시간이 임박해왔다. 아버지는 나일론 줄을 처매 기둥에 매달아 놓은 나무꼬챙이를 챙기셨다. 나무꼬챙이는 칼자루보다 두껍고 낫자루보다 긴 참나무를 잘 다듬어 끝을 송곳보다 날카로웠다. 그 무렵 어머니는 된장독에서 된장을 두어 숟가락 퍼낸다.

드디어 아버지는 살금살금 외양간으로 다가간다. 망아지처럼 나대는 송아지의 목줄을 잡아끌어 붙들고는 그대로 구유 부근 외양간 빗장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우린 송아지 뒷발에 차이지 않게 양쪽으로 몸을 기댔다. 어머니는 두릅 새싹처럼 돋은 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이제 만반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짠 내가 가득한 된장 냄새가 솔솔 풍겼다. 송아지는 몇 번이나 움직이려 하지만 넷이서 포위하고 있으니 미동도 않고 커다란 눈알만 멀뚱멀뚱 돌려가며 몸을 맡기고 만다.

“단단히 잡아야혀. 뒷발 조심 허고.”
“예.”


찰나, 아버지는 송아지의 아가리 아귀를 꾹 짓누르더니 오른손에 들고 있던 꼬챙이에 된장을 쭉쭉 발라 왼쪽 코에 쑤욱 밀어 넣었다. 순간 송아지는 고개를 쳐들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벗어날 길이 없다.

아버지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막혀 있던 양쪽 코 사이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힘껏 힘을 주어 둘둘 돌려가며 쑤셔 굴을 뚫는다.

“메~”
“얀년아 카만히 있어.”


2분여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가 한두 번 더 종이 묶음을 송곳으로 후비듯 돌리자 콧구멍에서 빨간 피가 터졌다. 쓰라린 듯 연신 콧바람을 불어대는 송아지가 불쌍하지만 도리가 없다.

“코뚜리!”
“풀어놨어라우.”
“잘혔구먼.”
“어이, 남은 된장 좀 주소.”
“여깄소.”
“바가치를 뽀로 옆에 대봐.”


된장은 예나 지금이나 민간에선 긴요한 약이었다. 아버지는 된장을 주무르고 이겨서 손에 쥐고 코뚜레에 줄줄이 바르고 훑어나간다.

코뚜레를 하는 건 관리하기 편하기 위함인데 최종 목표는 논밭 갈이에 있었다.
코뚜레를 하는 건 관리하기 편하기 위함인데 최종 목표는 논밭 갈이에 있었다. ⓒ 시골아이고향
코뚜레의 얇은 쪽을 먼저 끼워 쭉쭉 밀어 넣자 신기하게도 반대편으로 나온다. 이제 조금 길이 넓게 나도록 살짝살짝 움직여 준다. 그러자 송아지는 짠 게 들어감에 따라 쓰라림에다 콩 비린내가 난 듯 연거푸 고개를 쳐들려 한다.

“철사줄.”

역시 옆에 대령해 있다. 철사를 두 겹으로 겹쳐서 코뚜레를 고정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공정은 딱 하나, 소꼬뺑이(소를 붙들어 매기 위해 매는 나일론 줄)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지난 장 때 성냥간(대장간)에서 사온 도르래에 끼워 매듭을 짓자 코뚜레를 매단 송아지는 어른이 된 듯 제법 의젓했다.

아파서 그런 건지, 오래 붙들려 있어서인지 발을 몇 번이나 동동 구르다가 고개를 쳐든다. 침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콧방귀를 두어 번 뀐다. 이 때 나는 송아지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몽글게 썰어놓은 꼴을 한 삼태기 구유에 부어줬다. 그렇게 호된 성인식을 치른 송아지가 무럭무럭 자랐다.

달포가 지나 상처 부위가 아물자 목줄을 둘러 정식으로 가닥가닥 이어주었다. 그러자 산만큼 높은 황소도 독안에 든 쥐처럼 온순해졌다. 우린 장에서 사온 호스를 잘라 만든 코뚜레를 만들어주지 않았으니 좋고, 옛 모습 그대로 코뚜레 만드는 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 좋고, 이듬해 논밭을 갈 때 자유자재로 소를 길들일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더러 요즘에도 속이 빈 하얀 호스로 코뚜레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전북 장수에서 담았다.
더러 요즘에도 속이 빈 하얀 호스로 코뚜레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전북 장수에서 담았다. ⓒ 시골아이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고향☜ 바로가기을 만들고 있습니다. 포근한 고향 이야기가 그립거든 놀러 오세요. 

이 글은 SBS유포터뉴스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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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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