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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학가에서 만들어진 민중가요 책.
80년대 대학가에서 만들어진 민중가요 책. ⓒ 유성호
노래가 사라졌다. 시대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마모된 기억과 함께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노래는 지금도 우리 곁에 웅얼거리며 머물고 있었고 이제는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부서지는 것들 마냥 노래는 다른 모양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노래는 사라지고 부서지는 것들과 함께 존재하고 노동과 삶 속에 불려진다. 화려한 조명과 방송 카메라 앞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에서 불려지는 삶의 애환과 저항을 담은 노래. 우리는 그것을 민초들의 노래, 민중가요라고 부른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비합법의 시대. 유신과 80년대는 은유도 직설도 통하지 않는 사방이 '벽'으로 막힌 세계였다. 그 높은 사방사위 담장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온몸 부서지는 저항의 몸짓과 노래뿐이었다.

벽을 깨지 못하면 물러나서 노래를 불렀다. 담장을 넘어 멀리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크고 또렷하게 불렀다. 목이 쉬어 쇳소리가 나도 좋았다. 부르다 지치면 춤을 췄고, 그리고 다시 벽을 향해 달려갔다. 몸짓과 노래는 같았다. 그 때의 노래는 '소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위'였다.

노래에 따라붙은 농무, 여럿이 추니 군무

악보를 손으로 그렸던 시절의 <농민가>
악보를 손으로 그렸던 시절의 <농민가> ⓒ 유성호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던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밝은 태양 솟아오르는 우리 새 역사
삼천리 방방곡곡 농민의 깃발이여
찬란한 승리의 그날이 오길
춤추며 싸우는 형제들 있다

-농민가(작자미상)


7·80년대 학번이라면 가장 먼저 배웠을 노래다. 운동권이건 비운동권이건 <농민가>는 대학생활의 오브제였다. 그리고 <해방가>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배웠다. <농민가>와 <해방가>에는 춤이 따라 붙었다.

농무(農舞)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네 흥과 추임새를 고스란히 담은 흥겨운 춤이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여럿이 어울리면 군무(群舞)가 된다. 옆 친구의 호흡과 체취를 맡을 수 있는 정겨운 율동이다. 이제는 향수만 남긴 채 거의 사라졌지만.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다. 춤사위도 아스라해지고 노랫말도 꼬이고 뒤범벅되니 말이다. 기억과 작별할 시간이 온 것뿐이라고 애써 외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리에 꽂히는 서늘한 쇳소리를 들었다. 오랜 기억이 잠에서 깨며 진저리를 쳤다.

안치환의 목소리에 실린 70년대의 노래들이 귓전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 다만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이야"하며 기억의 짧은 유효기간을 나무라고 스쳐갔다. 그의 새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는 70년대부터 불려져 80년대 이념의 회오리 속에서 무수히 회자되던 민중가요의 고전을 담았다.

절반은 지은이조차 알려지지 않은 노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대의 정서와 교감만으로도 충분했다. 평택 대추리가 눈에 보이면 이상화의 시에 변규백이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가락이 겹친다.

이번 음반은 클래식 기타, 어쿠스틱 기타, 대금, 북이 어울리며 '가리마같은 봄 길'로 노래가 걸어간다. <땅의 사람들>이 <희망가>를 노래했고 <찔레꽃> 핀 <까치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석양으로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보여준다.

피땀 흘려 일군 땅 위에 빈 <코카콜라> 병이 뒹굴고 <이 세상 사는 동안> 오로지 땅을 일구고 산 죄 밖에 없는 <민중의 아버지>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부수기 위해 <농민가>를 부르며 출정한다(※< >안은 이번 음반에 실린 노래 제목이다).

빼앗긴 봄에서 민중의 아버지가 출정한다

민중가수 안치환의 새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
민중가수 안치환의 새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 ⓒ 유성호
"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안타깝다"(지난해 연말공연 장면)
"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안타깝다"(지난해 연말공연 장면) ⓒ 유성호
음반은 지난 1997년 발표한 <노스탤지어>와 함께 2개의 CD로 엮어졌다. LP판 모양으로 CD 자켓을 꾸며 여러모로 향수를 자극한다. 미끈한 가성이 아닌 껄끄러운 금속성 목소리에서 번지는 여운이 깊고도 길다. 한 우물을 판 장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만큼 소리가 여물었다.

안치환은 말한다.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세상의 모든 노래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노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뿌리를 이루어 준 고마운 노래들이 있었다. 그 시절 노래들은 처절하고 엄숙했으며 정직하고 깨끗했다.

때로는 기쁘게 다가오기도 했고 때로는 눈물로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가슴으로 불렀던 것이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시대는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노래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다. 아니 버림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두었던 노래를 이제야 불러 본다. 그 기억으로부터, 그 순수함으로부터…"


노래 가락에 실린 몸은 어느새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싱그러운 5월 햇살이 온전히 내리쬐는 자유의 땅, 사방사위 철조망과 벽이 무너져 내린 해방의 땅.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이웃들이 어깨를 겯고 한판 대동 춤을 추는 평화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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